최근 가상화폐를 채굴하기 위해 '일반용' 전기 대신 가격이 저렴한 '산업용' 전기를 몰래 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행태가 적발이 돼도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어 재발을 막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한 가상화폐 채굴장(기사와는 무관). /조선DB

◇ 값싼 전기 속여 국가전력 낭비하는 업자들… 걸려도 형법 적용 안돼

9일 한국전력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한전은 이달 중 전력 사용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이번 전수조사는 가상화폐 광풍이 불었던 지난 2018년 이후 3년 만이다. 3년 전 당시 한국전력은 현장점검을 통해 산업용 전기를 몰래 쓴 가상화폐 채굴업체들을 대거 적발한 바 있다.

한국전력은 이번 현장조사를 통해 가상화폐 채굴을 위해 산업용 전력을 몰래 쓰는 업체가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확인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가상화폐 채굴이 법에 어긋나는 행위는 아니다. 다만 일반 전기요금보다 최대 60%까지 저렴한 산업용 전기를 사용해 채굴할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한전의 '전력 기본 공급약관 시행세칙(제38조1항)'에 따르면, 가상화폐 채굴은 '응용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업'으로 볼 수 있어 일반용 전력요금 적용 대상이다.

문제는 일반용 대신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을 내고 가상화폐를 채굴하다 단속에 걸려도 솜방망이 제재로만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단속 주체인 한전 측이 전력 기본공급약관을 위반한 채굴업자로부터 일반용 전력 정상요금의 2배를 위약금으로 받으면 크게 문제를 삼지 않기 때문이다. 가상화폐업계 한 관계자는 "단속에 걸려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걸리지만 않으면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전은 위약금을 납부하지 않거나, 상습적으로 동일 행위를 반복하는 경우 등에 대해 형사고소를 할 수 있다는 내부방침을 갖고는 있지만, 실제로 형사고소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이 채굴업자를 형사 고소하더라도 형법 적용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재판에서 절도죄나 사기죄 같은 일반 형법 적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기윤법률사무소의 김기윤 변호사는 "채굴업자가 한전과의 전력 기본 공급약관을 어긴 것에 불과해 형법 적용은 어렵다"면서 "민사상 전력공급 계약 위반을 이유로 위약금이나 손해배상 책임만 물을 수 있다"고 했다. 한국전력 관계자도 "실무자들이 형사고소 사례가 거의 없어 어떤 죄목으로 고소해야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 실무에서는 일반 형법 대신 다른 법률을 적용한 형사 제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지난 2018년 대구에서 경찰이 산업용 전기로 가상화폐를 채굴한 A씨를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관한법률(산업집적법 제38조와 제52조)' 위반 혐의를 적용해 붙잡았다. 당시 재판결과 A씨에게 300만원의 벌금형이 부과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법률은 산업단지에 입주하는 업체의 경우, 건물주 외에도 관리기관과 입주계약을 체결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산업단지에는 입주 가능한 업종이 한정돼 있는데, 채굴업은 포함돼 있지 않아 관리기관과 입주계약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경찰은 산업부가 지정한 관리기관의 승인 없이 몰래 산업단지에서 채굴행위를 한 업자들에게 일반 형법 대신 산업집적법을 적용한다. 이 법을 위반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부과된다.

중국 충칭의 비트코인 채굴 업체 '랜드마이너'에서 비트코인 채굴용 컴퓨터를 수리하고 있다(기사와는 무관). /뉴시스

◇ 전기 훔쳐 채굴하면 '절도죄'로 처벌 가능

반면 국공립 시설물이나 개인 소유 시설물에서 가상화폐 채굴을 위해 전기를 몰래 사용하다 적발되는 경우에는 형법 적용이 가능하다. 전기 역시 절도죄의 객체가 되는 '재물' 개념에 속하기 때문이다.

최근 예술의전당 전기실에서 일하는 30대 직원 B씨가 건물 지하에 가상화폐 채굴기를 설치해 채굴을 하다 덜미가 잡힌 일이 있었다. 경남의 한 대학에서는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대학원 연구생들이 연구실에 설치된 컴퓨터를 이용해 가상화폐를 채굴하다 발각된 적도 있었다.

이같은 행위는 모두 형법상 절도죄의 구성요건(타인의 재물을 절취)을 충족한다. 그러나 전기를 몰래 사용한 혐의로 절도죄로 형사처벌된 사례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김기윤 변호사는 "보통은 개인의 일탈로 전기를 훔친 경우 액수가 경미한 경우가 많아 기소가 유예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다만 국공립 시설에서의 전기 절취 행위의 경우에는 국민의 혈세로 운영된다는 점 때문에 액수 여부와 상관없이 기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