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성추행에 시달리던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폐쇄적이고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군대 안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인사평가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2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군 관계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 당국 등에 따르면 군대 내 성희롱, 성추행 사건들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 21일 공군 A중사가 선임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은 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중사는 피해를 신고했으나 제대로 된 보호조치를 받지 못했으며 부대 상관들의 사건 은폐, 회유 등 조직적인 2차 가해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관에 의한 성폭력은 앞서서도 논란된 바 있다. 지난 2010년 해군에서는 성소수자인 부하 여성 장교를 간부 두명이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 간부 B씨는 지속적인 성희롱과 함께 2차례 성폭행을 한 혐의, 간부 C씨는 피해 사실을 알리고 구제를 요청하러 온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1심에서 징역형, 2심에선 무죄를 선고 받은 두 사람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2017년엔 해군 소속 한 대위가 상관에게 성폭행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 공군 하사가 여러 계급의 다수의 여군을 대상으로 불법촬영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2일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D하사는 여군 숙소에 몰래 들어가 불특정 다수의 여군의 신체와 속옷을 불법촬영한 뒤, 이동식저장장치(USB)에 피해자들의 이름이 제목으로 들어간 폴더를 만들어 불법촬영물을 저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센터 교육장에서 여군 숙소 침입, 불법 촬영 등이 적발된 공군 군사경찰 소속 부사관에 대한 폭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 소장 왼쪽은 김숙경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장. /연합뉴스

지난 3월엔 군 복무 중 여성 상관들을 지속적으로 성희롱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기도 했다. 그는 저녁 점호를 하러 온 여성 상관을 다수의 동료가 지켜보는 가운데 성적으로 모욕하고 희롱한 등의 혐의를 받는다.

조사 결과 이같은 군대 내 성폭력은 계속해서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일 군인권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센터가 지원한 상담 가운데 강간·준강간 관련 상담 건수는 2019년 3건에서 2020년 16건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성희롱 관련 상담 건수도 44건에서 55건으로 증가했다.

이에 국방부는 A중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군대 내 성폭력 피해를 파악하겠다며 3일부터 2주간을 ‘성폭력 피해 특별 신고 기간’으로 정했다. 앞서 국방부는 지난 2014년 군대 내 성추행 사건이 논란되자 이듬해 3월 성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국방부는 이전까지도 매년 7~8월, 12~1월 등 두 차례의 특별신고 기간을 운영해왔다.

최근 ‘여성징병제’가 화두에 오르고 있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는 여군 대상 성범죄 때문에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5~27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남성만 징병해야 한다’는 응답이 47%, ‘남성과 여성 모두 징병해야 한다’는 응답이 46%로 집계됐다. 그러나 여성이 안심하고 남성과 동등하게 병역의무를 수행하려면 먼저 고질적인 군대 내 성폭력 위험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군대 문화와 직속 상관에 의한 인사 평가 시스템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은경 젊은여군포럼 대표는 지난 2019년 군인권센터와 젊은여군포럼,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군의 특수성 중 하나는 집단주의 문화”라며 “군의 집단주의는 개인 구성원, 특히 소수자 여군에게 가늠할 수 없는 무게를 지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폭력 피해 여군들이 상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권력의 핵심에는 ‘인사 권한’이 있다”며 “중위와 하사 같은 어린 여군들이 성폭력 피해가 많은 이유는 이들이 군에서 직업 군인으로 인정 받는 1차 관문인 장기 복무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숙영 당시 국방부 성고충전문상담관도 “국방부의 성폭력 근절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제도가 현장에 접목되고 있지만, 조직의 성인지 감수성 향상은 제도 개선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더 이상 군 성폭력 피해자가 군을 떠나지 않고 당당한 구성원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바로잡습니다]

본보는 지난 6월 2일자 ‘여군 성추행에 불법촬영까지… 군대 내 성폭력 끊이지 않는 이유는’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2017년 해군에서는 성소수자인 부하 여성 장교 A씨를 간부 두명이 성폭행해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A씨가 아닌 또 다른 해군 소속 B대위가 2017년 상관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입은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확인돼 이를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