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일하던 경비원 최희석씨가 주민의 '갑질'로 인해 괴로움을 호소하다 지난해 5월 10일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최씨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폭언·폭행과 부당해고 등 갑질 문제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인천 서부경찰서는 지난 24일 폭행 및 재물손괴 혐의로 A(18)군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A군은 22일 밤 아파트 공용공간에서 음주, 흡연을 하던 중 이를 말리는 경비원 두 명에게 욕설하고 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난동을 부리는 과정에서 관리사무소 내 기물을 파손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일에는 경남 양산의 한 아파트에서 주차 문제를 두고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입주민 B씨가 자신의 차에 주차 위반 스티커가 부착돼있다며 경비실을 찾아와 행패를 부린 것이다. 피해 경비원은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고, 현장에 있던 또 다른 경비원 2명은 해당 입주민으로부터 폭언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비원이 입주민을 경찰에 신고하자, B씨는 오히려 재물손괴죄를 들며 경찰서에 진정을 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선 경비원 부당해고 논란이 번졌다. 이곳 경비원 44명 중 16명은 계약 갱신을 앞두고 지난달 새롭게 바뀐 경비용역업체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특히 용역업체가 경비원들에게 "애석하게도 같이 근무할 수 없음을 통보드립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알려져 공분이 일었다.
이처럼 아파트에서 입주민들의 갑질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데에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 현행법상 감시·단속직(감단직)으로 분류되는 아파트 경비는 경비 업무 이외에 분리수거와 택배 보관, 주차관리 등 의무가 없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감단직 승인을 받은 경비원은 전체의 93.7%다.
그러나 통상 아파트 경비원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직접 고용되지 않고 위탁업체를 통해 간접 고용되기 때문에 고용불안에 시달린 나머지 부당지시로 인한 피해를 입기 일쑤다. 여기다 고용주인 위탁업체로부터의 갑질 피해 역시 이들의 몫으로 남는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 따르면 전국 경비원의 90% 이상이 위탁관리 형태로 간접 고용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경비원 3명 중 1명(30.4%)이 1년 미만의 단기계약으로 인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4명 중 1명(24.4%)은 입주민으로부터 욕설과 구타 등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는 것으로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 정책연구팀은 "아파트 경비원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며 "감시·단속 업무만 강제해놓은 관련법과 다르게 아파트 경비원들은 택배 관리, 재활용 처리, 환경미화 등 주민편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입장이다. 아파트 경비원 문제는 업무 범위를 둘러싼 갈등과 이해관계자들 간의 위계 관계를 공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들은 잇따라 개선책을 내놓고 있다. 오세훈 서울지장은 지난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아파트 경비원의 고용안정 등에 관한 조치를 요청했다.
오 시장은 "정부는 현재 고용안정을 위해 일자리안정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며 "근로계약을 짧게 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요건에 근로계약기간을 1년 미만으로 하는 경우에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을 고쳤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내 근로자에 대한 괴롭힘을 방지하고, 경비원이 경비 이외의 업무에도 합법적으로 종사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고용노동부도 지난 2월 아파트 경비원이 경비 외에 업무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할 경우 감단직이 아닌 일반 근로자로 간주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감단직은 대기 시간이 많은 근로자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관련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노동부 개선안대로라면 경비원들은 감단직이 아닌 일반 근로자로서 합법적으로 경비 외 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은 오는 10월부터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