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제작

법원이 헌법재판소에 장기 미제 헌법소원 사건의 심리 지연 사유를 설명해 달라는 의견요청서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헌재 사건 처리가 늦어지면서 항소심 형사재판도 장기간 멈췄고, 이로 인해 피고인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이 침해될 수 있다는 취지다.

헌재 측은 의견요청서를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법원이 해당 헌법소원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상황에서 어떤 근거로 의견요청을 했는지 의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법조계에서는 재판소원 제도 도입 이후 누적된 두 기관의 불편한 기류가 공식 문서를 통해 표출된 장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50형사부(재판장 전보성 형사수석부장)는 지난 12일 헌재에 헌법재판 지연 사유에 관한 의견요청서를 보냈다. 법원은 이 의견요청서가 이날 헌재에 송달됐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헌법 제107조 제2항을 근거로 헌재의 심리 지연이 일종의 부작위에 해당하는지, 그로 인해 피고인의 기본권 침해 문제가 발생했는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헌재가 의견서를 내면 재판부는 그 내용을 토대로 헌재의 심리 지연이 항소심 피고인의 기본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살펴본 뒤 사건 진행 방향을 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 4년 멈춘 헌법소원… 법원 "피고인 불안정 지위"

법원이 문제 삼은 사건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항소심 사건이다. 피고인은 2020년 10월 기소됐고, 2022년 5월 1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6월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이 기각되자 헌법소원을 냈고, 해당 사건은 현재까지 헌재에서 계속 중이다.

법원은 이 헌법소원이 2022년 6월 접수돼 같은 해 7월 심판에 회부됐지만, 2026년 4월까지 약 4년 동안 실질적인 심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봤다. 지난 4월 22일에야 이해관계인인 통일부 장관에 대한 사실조회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항소심도 헌법소원 결론을 기다리며 멈춰 있었고, 피고인은 기소된 지 6년 가까이 확정되지 않은 지위에 놓였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조선DB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요청서를 받은 것은 맞다"면서도 답변서 제출 여부나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 관계자는 "재판소원 사건에서 법원은 피청구인이므로 당사자"라며 "그런데 이번 헌바 사건에서 법원은 당사자가 아니라 이해관계인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헌바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데, 이런 의견요청서 제출의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문제의 헌법 조항을 법원처럼 해석하는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헌바 사건'은 법원이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기각한 뒤 당사자가 헌재에 직접 제기하는 위헌소원 사건을 뜻한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의 심리 지연이 왜 재판의 전제가 되는지, 헌바 사건이라 재판이 정지되지 않는다면 법원이 재판을 진행하면 되는데 무엇을 문제 삼는 것인지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법원의 의견요청을 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재판소원 답변 요구한 헌재, 지연 사유 묻는 법원

이번 의견요청은 올해 재판소원 제도 도입 이후 이어진 법원과 헌재의 긴장과도 맞물려 있다. 재판소원은 확정된 법원의 재판이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헌재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절차다.

헌재에 따르면 정식 심판에 회부된 재판소원 사건은 이날 기준 총 8건이다. 헌재는 이들 8건에서 피청구인인 법원 측에 답변서 제출을 요청했지만, 아직 접수된 답변서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헌재의 장기 미제 사건을 문제 삼아 의견요청서를 보낸 것이다. 헌재가 법원 재판을 심사 대상으로 삼고 법원에 답변을 요구하자, 법원도 헌재의 심리 지연에 대해 설명을 요구한 모양새다.

◇법조계 "법적 구속력보다 공개 문제제기 성격"

다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의견요청의 법적 효과를 제한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법원이 판단한다고 해도 헌재가 구속될 것은 없어 법적 효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사실조회나 의견 요청에 가까운 것이지, 헌재를 상대로 판결을 하는 절차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위헌제청 신청이 기각된 뒤 제기된 헌법소원이라 항소심이 반드시 중단돼야 하는 구조로 보기도 어렵다"며 "그런 상황에서 헌재 심리 지연 때문에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단정하는 것은 논리상 거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법리적인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다른 맥락에서 해석해야 할 문제"라며 "재판소원과 관련해 법원 내부에 상당한 불만이 쌓여 있는데, 이런 분위기가 이번 사건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법원 재판도 4년 이상 지연되는 사건이 적지 않다"며 "헌재 측에서도 문제 삼을 소지가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안이 특정 헌법소원 사건의 지연 문제를 넘어, 재판소원 도입 이후 법원과 헌재가 서로의 재판 작동 방식을 문제 삼는 국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헌재가 법원 재판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법원도 헌재의 심리 지연이 기본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따져보겠다고 나선 셈이다. 사법기관 간 견제 논리가 강화될수록 재판 지연 책임을 둘러싼 논쟁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