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6년 6월 10일 오후 2시 03분 조선비즈 RM리포트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서울의 한 휴대폰 판매 매장에 붙어있는 통신 3사 로고 /뉴스1

이동통신 3사의 번호이동 가입자 조정 행위가 공정거래법상 담합인지, 정부의 단말기 보조금 규제에 따른 시장 안정화 대응인지를 두고 법정 공방이 본격화하고 있다. 핵심 쟁점은 방송통신위원회(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시장 안정화 요구가 있었던 상황에서 사업자 간 조정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다.

서울고법 행정7부는 지난 4일 KT(030200)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취소소송 3차 변론을 열었다. KT는 번호이동 가입자 조정이 사업자 간 담합이 아니라 방통위의 단말기유통법 규제 집행에 맞춘 대응이었다는 취지로 다투고 있다. LG유플러스(032640) 사건은 지난달 21일 1차 변론기일이 열렸고, SK텔레콤(017670) 사건은 오는 10월 첫 변론기일이 열릴 예정이다.

◇ 공정위 "가입자 유치 경쟁 줄였다"…KT "규제 따랐을 뿐"

공정위는 지난해 3월 SK텔레콤·KT·LG유플러스가 2015년 1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번호이동 가입자 순증감이 특정 사업자에게 쏠리지 않도록 공동으로 조정했다고 발표했다. 특정 통신사가 가입자를 지나치게 많이 빼앗아 가거나 잃지 않도록 3사가 번호이동 유치 규모를 맞췄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 같은 행위가 이동통신 3사 간 가입자 유치 경쟁을 제한했다고 판단했다. 예컨대 SK텔레콤이 판매장려금을 40만원 올리면 KT와 LG유플러스가 각각 10만원, 30만원씩 장려금을 낮추는 방식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일평균 번호이동 건수는 2014년 2만8872건에서 꾸준히 줄어 2022년 7210건에 그쳤다. 공정위는 이를 통신 3사 간 경쟁이 상당히 제한됐다는 근거로 봤다.

공정위는 이에 따라 3사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후 의결서 발송 단계에서 과징금은 총 963억원으로 확정됐다. 회사별 과징금은 SK텔레콤 388억원, KT 299억원, LG유플러스 276억원이다.

KT는 이동통신 시장이 강한 행정규제를 받는 규제산업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동통신 시장에서는 단말기유통법에 따라 단말기 보조금과 판매장려금, 이용자 차별 행위 등이 규제 대상이 된다. KT는 특정 사업자 쏠림이 커지면 판매장려금과 보조금 경쟁이 과열되고, 그 결과 방통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입장이다.

KT 측 주장의 핵심은 3사가 자율적으로 경쟁을 줄이기로 합의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보조금 과열을 막으려는 규제기관의 정책 목표와 집행 환경에 맞춰 시장 안정화 차원에서 움직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조선DB

◇행정지도 따랐나, 별도 합의 있었나

이번 소송의 핵심은 행정지도와 담합의 경계다. 공정거래법상 담합은 사업자들이 가격, 거래조건, 거래량 등을 공동으로 정해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다. 그러나 정부 규제가 강한 산업에서는 사업자들이 규제기관의 요구나 행정지도에 따라 움직였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 법원은 행정지도가 실제로 있었는지, 그 지도가 법률상 근거를 갖췄는지, 내용이 얼마나 구체적이었는지, 사업자들에게 자율적 판단 여지가 있었는지 등을 따진다. 특히 규제기관의 요구를 넘어 사업자들이 별도로 경쟁 제한 합의를 했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법원은 통상 정부 규제가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업자들에게 자율적 재량이 있었는데 상호 협의해 결정했는지를 종합해 담합 여부를 판단한다"고 했다. 이어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단순 행정지도는 담합 책임을 배제하기 어렵고, 다만 정부의 관여나 유도가 있었다면 과징금 부과 단계에서 감경 사유로 참작될 수는 있다"고 했다.

한승혁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도 행정지도의 강도에 따라 법적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한 변호사는 "행정지도가 매우 강력해 사업자 간 의사 연락을 인정하기 어려운 정도라면 합의 자체가 부인될 수 있다"며 "통신처럼 규제가 강한 영역에서는 사업자가 행정지도를 거스르기 어렵다는 점이 책임 제한 사유로 고려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공정위 처분이 유지되려면 방통위 규제와 별개로 3사 간 독자적 합의가 있었다는 점이 뒷받침돼야 한다. 단순한 정보 공유를 넘어 번호이동 순증감 규모나 판매장려금 수준을 맞추기 위한 합의와 실행이 있었는지가 관건이다.

백 변호사는 "방통위가 정한 상한선 준수를 넘어 3사가 별도의 순증 수치를 맞추기 위한 합의를 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반대로 KT 등 통신사 측은 방통위의 요구가 단순 권고가 아니라 사실상 행정명령에 가까웠고, 사업자들이 독자적으로 경쟁할 여지가 제한돼 있었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통신 넘어 규제산업 전반에 파장

이번 소송은 통신업계에만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금융, 에너지, 플랫폼 등 정부 규제가 강한 산업에서는 시장 안정, 소비자 보호, 가격 급등 억제 등을 이유로 정부와 사업자 간 소통이 자주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사업자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거나 물량·가격·거래조건을 조정하면 공정거래법상 담합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백 변호사는 "정부의 행정지도를 거부하면 인허가나 사후 규제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이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소통하면 공정거래법 위반이 되는 모순적 상황에 직면하곤 한다"고 했다.

한 변호사도 단통법과 공정거래법의 규율 목적이 충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통법은 과도한 장려금 경쟁과 이용자 차별을 막기 위한 규제인 반면, 공정위 시각에서는 장려금 경쟁 제한이 담합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업자들이 두 규제 사이에서 법적 리스크를 떠안을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이번 사건은 번호이동 시장의 가입자 조정이 정부 규제에 따른 시장 안정화 조치였는지, 사업자 간 경쟁 회피 합의였는지를 가르는 소송이다. 통신 3사가 모두 공정위 처분에 불복한 만큼, 법원이 행정지도와 담합의 경계를 어떻게 그을지가 향후 규제산업의 공정거래 사건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