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민 전 부장검사가 김건희 여사에게 고가 미술품을 건네 공천을 청탁했다는 혐의가 항소심에서 유죄로 뒤집혔다. 1심은 그림이 김 여사에게 전달됐는지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지만, 항소심은 미술품 중개업자 진술과 그림 발견 경위 등을 근거로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인정했다.
서울고법 형사6-2부(박정제·민달기·김종우 고법판사)는 8일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 전 검사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4138만여원 추징을 명령했다.
김 전 검사는 2023년 2월 김 여사에게 1억4000만원 상당의 이우환 화백 그림 '점으로부터 No. 800298'을 전달하며 공직 인사와 총선 공천 등을 청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24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면서 사업가 김모씨로부터 선거용 차량 대여비와 보험금 등 4200만원 상당을 불법 기부받은 혐의도 받았다.
항소심의 판단을 가른 핵심은 그림 전달 여부였다. 1심은 미술품 중개업자 A씨가 법정에서 일부 진술을 번복한 점 등을 들어 그림이 김 여사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반면 항소심은 A씨 진술의 큰 줄기가 유지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수사 단계에서부터 피고인이 그림 구매를 부탁한 점, '엄청 좋아하셨어'라고 사투리로 말한 점 등을 일관되게 진술했고, 일부 진술 번복이 있다고 해도 전체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할 수 없다"며 "피고인이 A씨를 통해 그림을 매수하고 구매 대금을 지불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그림이 김 여사의 오빠 김진우씨 장모 자택에서 발견된 사정도 유죄 판단에 반영됐다. 재판부는 "그림이 김건희에게 제공됐다가 특검팀 수사가 본격화하자 김건희가 소유한 다른 물품들과 함께 김진우를 거쳐 그 장모에게 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전 검사가 김 여사를 직접 만나 그림을 건네고 반응을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봤다. 그림 제공과 대통령 직무 사이의 관련성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대통령의 여당 선거 직무, 고위공직자 임명 등 포괄적 직무권한과 관련해 김 여사에게 그림을 제공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림의 진품 여부도 항소심에서 다시 판단됐다. 재판부는 진품으로 본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의견과 위작으로 본 한국화랑협회 의견을 모두 검토한 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의견의 신빙성이 더 높다고 봤다. 이에 따라 그림 가격도 공소사실과 같은 1억4000만원으로 인정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1심과 같은 결론이 나왔다. 항소심은 김 전 검사가 총선 출마를 준비하면서 선거용 차량 비용 등을 사업가에게 대신 내도록 한 행위가 정치자금법상 기부 제한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전 검사의 신분과 행위의 성격을 양형에 무겁게 반영했다. 재판부는 "현직 부장검사 신분으로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해 대통령 배우자에게 고가 미술품을 제공해 국민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했다.
이어 "행정부 수반이자 국정 운영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공정성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에도 대통령 배우자를 통해 직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며 "그림 가액이 크고 죄질이 중해 상응하는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14년 넘게 검사로 재직한 법률 전문가로서 자기 행위의 법적 위반을 누구보다 잘 인식했을 것임에도 불법 기부를 요청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1심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김 전 검사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4100만여원 추징을 명령했다. 항소심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까지 유죄로 판단하면서 형량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