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설탕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3조원대 설탕 가격 담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CJ제일제당(097950)삼양사(145990) 전직 임직원들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법조계에선 반복되는 담합 범죄를 끊으려면 가담한 임직원에게 실형이 선고됐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류지미 판사는 23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상익 전 CJ제일제당 식품한국총괄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최낙현 전 삼양사 대표이사에겐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다른 피고인들에게도 벌금형과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죄질이 좋지 않고 CJ제일제당과 삼양사가 과거에도 담합 사건으로 적발됐음에도 범행을 저질러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했다. 다만 원당(설탕 원료) 가격 추이와 환율 등을 고려하면 폭리를 취했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들이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양형 이유로 들었다.

지난 2월 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나희석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서민경제 교란사범 집중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차피 집행유예" 인식… 검찰, 개인 처벌 필요성 강조

검찰은 지난 9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들에게 징역형을 구형하며 "이번 사건은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법인 대표까지 가담한 조직적 범행이고, 담합 범행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는 시장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이번 판결이 다소 아쉽다는 반응이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 판단을 존중하지만, 이 사건의 담합 규모와 유사 사건 처리 전례를 볼 때 공감하기 어렵다"며 "판결문을 확인해야겠지만 항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도 담합 사건과 관련해 개인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 2월 페이스북에 "조직적 담합을 근절하려면 미국처럼 담합을 계획하고 실행한 임직원과 배후자 등 개인에 대한 형사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담합에 가담한 기업들 사이에서 임직원 개인은 실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찰이 최근 담합 사건 집중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사내 회의 녹취록에는 "어차피 벌금으로 끝난다" "집행유예 선에서 정리된다" "회사가 책임질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선 담합하면 징역 최대 10년까지

해외에서는 담합 범죄에 책임이 있는 기업 임원이 실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한다. 미국 법무부는 2011년 1월 일본 자동차부품 업체 '야자키'에 가격 담합 혐의로 벌금 4억7000만달러(당시 환율로 약 5300억원)를 부과했다. 일본 국적의 야자키 임원 4명에겐 길게는 2년 동안 미국 감옥에서 복역하는 징역형이 내려졌다. 영국에서는 2008년 6월 해상용 호스 가격 담합을 한 기업 관계자 3명에게 징역 2년 6개월에서 3년형이 선고됐다.

미국 법무부 반독점국 차관보 마칸 델라힘은 2020년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쟁위원회 회의에서 "개인을 상대로 한 적극적인 형사 집행이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억지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고 했다.

담합에 대한 법정형 상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의 공정거래법은 담합 등 중대한 위반행위에 대한 개인 처벌 상한을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으로 두고 있다. 반면 미국은 최대 10년 징역 또는 100만달러(약 14억8310만원) 이하 벌금, 영국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무제한 벌금, 캐나다는 14년 이하 징역 또는 무제한 벌금이 가능하다.

박용철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처벌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선 임직원 개인의 처벌 강화가 직관적으로 편리한 방안"이라며 "다만 임직원 개인이 어느 정도 담합 행위에 권한이 있는지 여부도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