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골프존 스크린 연습장(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뉴스1

대법원이 골프 코스도 저작권법상 보호 대상인 '창작물'에 해당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놓으면서 스크린골프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파기환송심 결과에 따라 골프존 등 업계가 손해배상 책임을 질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줄소송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지난 26일 골프존을 상대로 국내 골프 코스 설계 기업들이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골프존이 승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미국 코스 설계 기업이 코스 설계 도면과 관련해 같은 취지로 골프존에 제기한 소송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

이들 기업은 2015년과 2018년 골프존이 자사가 설계한 골프 코스를 토대로 스크린골프 시뮬레이션을 제작해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골프 코스 창작성 인정한 대법

법조계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단의 의미에 대해 골프 코스의 창작성을 인정해준 것이라고 평가한다. 저작권법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저작물로 본다. 다만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창작성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원심은 골프 코스와 설계 도면에서 창작성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봤다. 티잉 그라운드, 페어웨이, 벙커, 워터 해저드, 그린 등 기본 구성 요소가 경기 규격에 따라 배치되는 만큼 설계자의 창작성이 발휘되기 어렵다고 봤다. 사실상 아이디어 영역에 가깝다는 취지였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뉴스1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설계자가 홀의 전체 구성과 각 요소의 배치, 조경과 주변 자연환경과의 조화 등을 선택·배치·조합하는 과정에서 창작성이 발현될 수 있다고 봤다. 이용자가 전략을 세워 공략하도록 유도하고, 경기 진행 과정에서 변화와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 역시 설계자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원고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대륙아주 최종선 변호사는 "사찰이나 궁궐처럼 외형이 유사해 보여도 세부 구조에서 각각의 개성이 담겨 고유한 심미감이 드러난다"며 "골프 코스 역시 각 홀의 구성과 난이도 조절 과정에 설계자의 개성이 담겨 있다"고 했다.

이해완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골프 코스는 자연환경과 조화시키는 과정에서 심미적 고려를 포함한 선택의 폭이 넓다"라며 "설계자의 창조적 개성이 발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권동영 한국골프코스설계가협회(KSGCA) 회장도 "코스 설계는 단순히 홀 나열이 아니라 출발부터 마지막 홀까지의 흐름을 기승전결 구조로 치밀하게 짜는 작업"이라고 했다. 협회는 원심 판결 직후 미국·유럽·호주·일본 등 해외 골프설계사 협회들로부터 의견서를 받아 이를 대법원에 참고자료로 제출했다고 한다.

◇"줄소송 불씨 남아"… 파기환송심이 분수령

스크린골프 업계는 파기환송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판 결과에 따라 골프존이 수억~수십억 원대 손해배상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다만 이번 판결이 곧바로 배상 책임을 확정한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창작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기준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 침해 여부는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심리해야 한다.

정상조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이번 대법원 판단은 창작성을 일부 인정한 것 외에는 미완성 상태"라며 "향후 골프존의 시뮬레이션 영상이 복제에 해당하는지, 복제에 해당하더라도 '파노라마의 자유'에 의해 허용될 수 있는지 등도 다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파노라마의 자유는 도로나 공원 등 일반에 개방된 장소에 걸린 건축물과 조형물을 촬영·영상화할 수 있도록 한 저작법상 예외 규정이다.

카카오 VX의 미국 합작법인 골프(GOLF) VX의 직영매장에서 현지 골퍼들이 스크린골프를 즐기는 모습. /카카오 VX

그럼에도 불씨는 남아 있다. 파기 환송심에서도 설계 기업에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유사 코스를 재현한 업체들을 상대로 추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서다. 한 설계 기업 관계자는 "이번엔 대표 업체인 골프존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다른 업체들에 대한 소송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말했다.

정연덕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저작권의 보호 대상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구체적 표현"이라며 "벙커와 자연물 배치 등 표현 요소를 그대로 재현했다면 침해가 성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사 사례가 다수 확인될 경우 소송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골프 코스 라이선스 체계가 재편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설계 업체와 별도 계약이 필요해질 경우 콘텐츠 사용료 인상으로 이어지고, 이는 이용 요금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골프존 측은 "이번 대법원 판결은 각 코스별 창작성에 대한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파기환송된 것"이라며 "향후 재판에서 쟁점에 대한 판단을 받겠다"고 밝혔다. 골프존은 전체 400여 개 코스 가운데 이번 소송이 제기된 28개 코스의 사용을 이미 중단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