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왕 찰스 1세. /조선DB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19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윤 전 대통령 측은 '대통령이 어떻게 내란을 일으키냐'는 취지의 주장을 해왔는데, 재판부는 내란 혐의를 인정하기 위해 377년 전 영국 국왕이 처형된 판결을 인용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는 이날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선고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군(軍)을 국회에 보내 봉쇄하는 등 윤 전 대통령의 당시 행위가 형법상 내란죄의 성립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에 부합한다고 봤다. 비상계엄 선포 자체가 내란죄에 해당할 수는 없지만, 헌법기관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목적이라면 내란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군을 국회로 보낸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해 자리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중세 시대 때는 왕은 내란죄를 저지를 수 없다는 인식 퍼져"

형법은 제87조에서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 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는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 제91조에서 국헌문란에 대해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형법 제91조와 관련한 법리를 설명하기 위해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지 부장판사는 "로마 시대에는 국가의 기본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내란죄로 처벌했다"면서 "황제 시대에 이르러서 국가와 황제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황제에 대한 반역 행위까지 내란죄로 처벌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유럽의) 중세 시대에도 이러한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서 주군 개인에 대한 배신 행위 등을 반역죄로 처벌하게 됐다"면서 "점차 왕이나 군주 자체는 반역죄, 내란죄를 저지를 수 없다는 인식이 중세 시대 때는 강하게 퍼졌던 것으로 재판부에서 확인을 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지귀연 부장판사가 1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2·3 비상계엄 관련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판결 선고 주문을 낭독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찰스 1세 판결서 '왕이 국가에 대해 반역했다'는 사실 인정"

지 부장판사는 "(인식이 바뀐) 계기가 된 사건은 잉글랜드의 왕 찰스 1세 사건이었다"라고 했다. 이어 "영국에서 의회가 생기고, 왕과 의회 사이에 세금 징수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는 일이 생기게 되다가 결국 잉글랜드 왕 찰스 1세는 의회가 자신의 잘못 200가지를 시정해 달라는 취지의 결의문을 내자 이에 분노해서 직접 군대를 이끌고 의사당에 난입해 그 자리에서 의회를 강제로 해산시키는 일이 있었다"면서 "이런 내전을 통해 결국 찰스 1세는 반역죄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죽게 되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지 부장판사는 "이때 판결을 살펴보면, 왕이 국가에 대해 반역을 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정했다"면서 "이때부터 왕에 대한 범죄라는 생각이 점차 바뀌어서,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의회를 공격하는 것이 왕이라 하더라도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 되어 반역죄가 성립한다는 개념이 널리 퍼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후부터는 18~19세기를 거쳐 내란죄는 국가 존립을 침해하는 죄로 각국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형법 제91조 제2호가 적용되는 이른바 국헌문란 목적 내란죄는 대통령도 저지를 수 있다"면서 "대표적인 사례가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 강제로 의회를 점령하거나 의원들을 체포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리버 크롬웰. /조선DB

◇찰스 1세, 왕권신수설 신봉… 크롬웰이 처형한 후 공화정 세워

찰스 1세는 국왕의 권한을 신에게서 직접 부여받았다는 왕권신수설을 신봉했다. 왕권은 세속적인 의회나 법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봤다. 잉글랜드 의회가 1628년 세금 징수에 앞서 권리청원으로 의회 동의 없는 과세 금지를 요구하자 일단 승인했다. 그러나 1629년 권리청원을 무시하고 의회를 해산한 후 1640년까지 의회 동의 없이 통치하고 세금을 징수했다.

찰스1세와 의회 충돌로 1642년 잉글랜드 내전이 일어났고, 올리버 크롬웰이 군대를 조직해 왕당파와 전투를 벌였다. 내전이 의회파의 승리로 끝난 뒤 크롬웰은 1649년 찰스 1세를 처형한 후 공화정을 세웠다. 크롬웰은 이후 종신 호국경에 취임해 군사독재를 실시했다. 크롬웰 사후 찰스2세가 1660년 왕위에 올라 왕정이 복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