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과거사 사건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며 피해자나 유족에게 지급하는 '국가배상금'이 작년 1000억원대에서 올해 2200억원대로 급증했다고 13일 전해졌다. 주요 사건의 하급심에서 패소 판결이 나오자 정부가 항소나 상고를 포기하거나 취하하면서 생긴 일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피해자나 유족이 항소심까지 이겼다면 대법원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하루 빨리 배상금을 지급하는 게 옳다'는 취지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려면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는 게 맞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피해자나 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정부의 상소 취하·포기가 아니라 대법원 판결로 승소를 확정하는 게 궁극적 해법"라는 지적도 있다.

그래픽=손민균

◇ 올해 국가배상금 최소 2260억원...작년 1067억의 2배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1~9월 국가배상금 지급액과 지급 예정액을 합하면 2260억원이다. 이중 1290억원은 상반기에 이미 지급됐고, 나머지 970억원은 법무부가 형제복지원·선감학원 사건 상소를 포기하면서 배상이 확정된 금액이다.

작년 국가배상금은 1067억원이었는데 올해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올해 국가배상금은 최근 5년간 연평균 지급액(1377억원)도 넘어섰다.

형제복지원은 부산시와 위탁 계약을 맺고 설립된 사회복지법인으로 1975~1987년 3만8000여 명이 강제로 수용됐다. 이 곳에서 강제노역, 폭행 등으로 사망자가 수십명 발생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지난달까지 진행된 7건의 하급심에서 모두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확정 판결이 1건 나오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이재명 정부 들어 법무부는 ▲고(故) 김오랑 중령 사건 ▲삼청교육대 ▲서산개척단 ▲여수·순천 10·19 사건에 대해서도 상소를 포기했다. 이 사건들도 하급심에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올해 국가배상액은 이미 지급했거나 향후 지급이 확정된 금액인 2260억원을 넘어서게 됐다.

◇ 법조계 "국가 불법 행위, 대법원에서 확정받는 게 맞다"

정부의 상소 포기 방침에 대한 법조계의 시각은 엇갈린다. 상소 포기가 합리적이라고 보는 쪽은 1·2심에서 정부가 패소한 사건을 대법원까지 가져 가 최종 패소하면 지연이자가 붙어 국가배상금 자체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반면 국민 세금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는 만큼 대법원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옳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법조인은 "피해자 유족 입장에서도 국가의 불법 행위 여부를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정받는 게 옳다"고 했다.

법무부와 일선 검찰청 사이에 상소 포기를 두고 '엇박자'도 나타났다. 법무부는 9일 여수·순천 10·19 사건 상소를 포기한다고 했는데, 10일 검찰이 한 재심 사건에 대해 항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정성호 법무장관은 페이스북에 "법무부의 여순사건 항소포기 방침 공표 전, 일선 검찰청에서 소송수행청에 항소제기 지휘를 하면서 수행청에서 항소장을 제출한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 대해서도 항소를 취하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부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공무원의 불법 행위나 공적인 시설 하자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고 있다. 다만 피해자들이 법무부 배상심의회에서 배상 결정을 받거나, 법원에서 손해배상 확정 판결을 받아야 한다.

매년 평균 1000~2000건의 국가배상 소송이 접수되는데 이중 상당수를 과거사 사건 피해자나 그 유족들이 제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