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메타, 넷플릭스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내고 있다. 세금·과징금 부과 등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여러 정부 부처와 법정에서 다투는 것이다. 소송 한 건에 수백억원이 걸려 있는 게 보통이다. 소송 액수 합계는 1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런 소송에서 법무부 국제법무지원과가 정부 측을 대리하고 있다. 국제법무지원과는 작년 8월 법무부 국제법무국 산하에 신설된 조직이다. 우리 정부가 다국적 기업들과 벌이는 소송을 지원하는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의 로펌’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국제법무지원과는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 영국 방산업체 블렌하임사가 한국 방위사업청을 상대로 ‘방산 자원을 구매하면서 국제 계약상 권리를 침해했다’며 낸 6900억원 규모 소송에서 지난 6월 최종 승소를 확정받은 것이다.

신동환(45·사법연수원 36기) 국제법무지원과장은 “구글이 약관 하나로 국민 대다수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처럼 다국적 기업들의 작은 결정은 국민 권익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그럼에도 정부가 분쟁 당사자가 되는 사건들은 그간 여러 부처에 산재해 개별 대응하거나, 부처에 따라 예산이나 인력 제약으로 대응이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 차원에서 다뤄야 할 주요 국제 사건들을 직접 관리하고 증거 수집부터 변론까지 수행하는 ‘정부의 로펌’ 역할을 국제법무지원과가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왼쪽부터) 국제법무지원과 소속 강윤성 법무관, 정정아 인턴, 고병윤 수습변호사, 윤은주 행정주사, 심인혜 사무관, 박다혜 사무관, 신승민 법무관, 황현준사무관, 신동환(사법연수원 36기) 국제법무지원과장, 정홍식(53) 국제법무국장, 이성직(변호사시험 2회) 검사./김민소 기자

아래는 정홍식 국제법무국장, 신동환 국제법무지원과장, 이성직 국제법무지원과 소속 검사와 조선비즈의 일문일답.

-국제법무지원과가 신설된 배경을 설명해달라.

“기업 법무실이 각 계열사의 법률 리스크를 검토하고 대응하는 것처럼, 정부도 콘트롤 타워가 있어야 한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정부 기관 산하 청이나 공공기관에서 국제사건 대응을 각각 하다 보니 보다 일관되고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각 기관별로 할당된 예산이 있고 많지 않은 예산 내에서 로펌을 선임하다 보니 사건들이 여러 로펌에 흩어져 있었다. 이런 산재한 사건들을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정부 내 노하우를 축적해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논의에서 출발해 국제법무지원과가 신설됐다. 국제법무지원과와 함께 법무부 산하의 국제 법무 대응을 총괄하는 국제법무국도 신설됐다.”

-정부 기관이 각각 사건을 대응하면 어떤 문제점이 있나.

“같은 기업을 상대하는데 정부 기관들이 관련 법령이나 사실관계를 달리 해석한다면 소송에서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구글의 경우 하나의 회사가 3개 이상의 정부 부처와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다. 구글 측은 이 세 사건을 모두 한 로펌에서 대리해 중앙 집권적 방식으로 소송 대응이 가능한데, 정부 측은 서로 다른 로펌이 대리해 서로 다른 주장을 하거나 법리 해석을 내놓는다면 불리한 상황에 놓일 것이다. 국제법무지원과에서 이런 사건들을 한곳에 모으면 일관된 소송 대응이 가능해 대응에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기존에 소송 대응을 하던 로펌들과 협업하는 구조인가.

“정부 기관이 선임한 로펌과 한 팀으로 일을 하는 구조다. 국제법무지원과도 소송수행자로 지정을 받아 로펌과 함께 소송 업무를 하는데, 차이가 있는 부분은 지원과에서는 직접 증거 수집을 한다는 점이다. 국제 사건들은 증거가 외국에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외국 정부 기관에서 증거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로펌에서 직접 증거를 요청하거나 수집하는데 한계가 있다. 지원과는 이런 범정부 차원의 자료를 수집해 글로벌 기업 상대 소송에서 활용한다.”

-해외에 있는 증거들은 어떤 방식으로 수집하는가.

“구글과 메타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상대로 낸 1000억원대 과징금 처분 불복 소송 같은 경우 해외에도 유사 사건들이 있다. 영국의 공정거래위원회라 불리는 경쟁시장청(CMA)은 이미 구글의 막대한 개인정보 수집 실태와 인터넷 광고 시장 내에서의 구글의 독점적 지위, 실시간 경매(Real-time bidding)를 활용한 막대한 수익창출 등을 조사했다. 조사를 토대로 작성된 보고서를 검토, 분석해 재판부에 서면과 증거로 제출하고, 해당 보고서 작성을 담당한 영국 CMA 등 해외 조사 당국 담당자와 회의를 통해 관련 배경과 내용을 파악해 이를 재판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빅테크 기업과의 갈등이 이제 막 불거지는 만큼 국내에 기존 판례가 없을 것 같다.

“메타와의 국제소송에서 주요 쟁점 중 하나는 ‘이용자가 메타 가입 약관에 동의한 것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맞춤형 광고에 활용하도록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이런 쟁점은 국내에서 처음 다뤄지는 만큼 해외 유사 판결례 자료를 중점적으로 분석해 증거 자료로 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유럽정보보호이사회(EDPB) 등이 ‘맞춤형 광고는 이용자와의 계약 이행을 위해 필요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약관에 근거하여 맞춤형 광고를 위해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것은 유럽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사례들이 있고 이런 판결문 등을 법무부에 있는 전문 인력을 동원해 검토·분석한 후 수백 쪽에 달하는 핵심 자료를 번역해 제출하는 방식으로 소송에 활용하고 있다.”

-정부 편에 섰던 로펌이 이후 상대편에 있던 기업 측을 대리할 수도 있나.

“충분히 가능하다. 정부 대리인으로 들어간 로펌은 사건을 수행하는 동안 정부가 보안으로 취급하는 자료들을 제공받는다. 문제는 소송 대리를 끝낸 이후 로펌이 다른 사건에서 상대편에 있던 기업을 대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정부의 돈을 받고 국가 중요 자료를 제공받은 뒤에 이 자료로 정부를 역공하는 상황이 벌어질 우려가 있는 셈이다. 국가 주요 사건들에 대한 노하우를 정부가 아닌 개별 로펌이 더 많이 가져가게 되는 것은 정부 입장에서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정부 차원에서 로펌 역할을 하는 조직이 별도로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된다.”

-소송 대응 외에 국제법무지원과가 하는 업무가 있는가.

“법원에서 소송이나 중재를 직접 수행하는 사건은 현재 12건 정도다. 국외에서 진행 중인 정부 사건 50건도 관리하고 있다. 국외 사건은 화상 회의를 통해 소송에 들어가는 로펌들과 회의를 하고 서면을 직접 검토하거나 증거를 수집하고 의견서를 내는 방식으로 관여하고 있다. 이밖에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맞춤형 무료 법률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청년 법조인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도 한다. 장기적으로 국제 무대에서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다.”

-국제법무지원과에 사건을 맡기는 정부 기관들의 평가는 어떠한가.

“신설 초기에는 법무부가 관여하면 ‘시어머니가 하나 더 생기는 게 아닌가’라는 인식에 지원 요청을 주저하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로펌들이 선뜻 손대기 어려운 해외 자료 수집이나 외국 법제에 대한 분석이나 해석 같은 부분을 지원과에서 수행하는 것을 보고, 도움을 요청하는 부처가 늘고 있다. 특히나 비(非) 법조인이 소송 대응을 해오던 부처의 경우 로펌을 관리하면서도 로펌의 주장이 법률적으로 맞는지 판단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자문 요청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전문 인력이 있는 법무부의 지원을 받아 체계적인 대응이 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또 현재까지 지원과와 협업한 부처들은 협업 이후에 발생하는 소송들에서도 공동 대응을 하자고 요청하는 추세다. 지난 6월 지원과와 협력해 승소를 확정받은 방사청의 경우 추가 사건도 의뢰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백서 제작도 협업해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