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중견 의약품 판매대행사 경영진들이 10년간 가공거래로 약 225억원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 회사는 그동안 수 차례 세무조사를 받았지만 한번도 이런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다. 검찰은 이 회사 세무 대리인과 전현직 세무공무원이 뇌물을 받고 세무조사를 무력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보고, 함께 재판에 넘겼다.

비자금 조성 혐의로 기소된 중견 의약품 판매대행업체 사무실에서 나온 돈 다발. / 서울중앙지검 제공

9일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부장검사 이진용)는 중견 의약품 판매대행업체인 A사 대표와 본부장, 상무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배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조세, 허위세금계산서 교부 등)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의약품 판매대행업체들은 제약회사 의약품을 대신 도매 판매하는 역할을 한다. A사 경영진은 회사 설립 직후인 2014년부터 지난 3월까지 일부 거래업체와 공모해 의약품을 판매한 척 돈을 보낸 뒤 일부 금액을 돌려받는 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는다.

A사 경영진은 이렇게 비자금을 조성해 5년간 법인세 30억원을 포탈한 혐의도 받는다. 거래 상대방으로부터 가짜 거래에 대해 허위 세금계산서를 받고 이를 비용으로 계상한 뒤 법인세를 감면 받은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또 세무조사 때 거래 증빙자료를 조작한 위계 공무집행 방해, 증거위조교사, 위조증거사용교사 혐의도 있다.

A사의 범행 구조도. / 서울중앙지검 제공

이 회사는 무려 10년간 거래를 조작해 비자금을 만들었는데도 세무조사에서 단 한 차례도 적발되지 않았다. 검찰은 세무대리인인 공인회계사 B씨와 전현직 세무 공무원들의 역할이 컸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B씨를 A사의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2억9000만원을 수수한 후 8차례에 걸쳐 허위 증빙자료를 내는 식으로 세무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B씨는 또 본인이 부사장으로 재직 중인 코스닥 상장사 C사와의 가공거래를 통해 9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있다.

검찰에 따르면 B씨는 2020~2022년 전현직 세무공무원들에게 세무조사를 원만하게 종결해달라는 등의 청탁을 하면서 대가로 1억8900만원을 건넨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B씨 등에게 8000만원을 수수한 현직 지방국세청 팀장 C씨를 특가법 위반(뇌물)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세무공무원 출신 세무사 D씨도 54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A사 경영진과 B씨는 A사 거래 상대방이 가공거래 혐의로 기소되자, 검찰과 법원에 조작 증거를 제출하거나 위증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이에 A사 거래방은 2건의 형사 재판에서 1·2심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았다.

검찰은 A사와 가짜 거래를 하는 업체 한 곳에 대한 제보를 접수 받은 뒤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 관계자는 “대다수 세무공무원들은 묵묵히 본분을 다하고 있지만 A사 세무조사를 담당하거나 이를 알선한 일부 세무공무원들은 적극적으로 금품을 요구하거나 세무조사 대상자에게 내부 조사 정보를 유출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