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몰래 녹음한 내용이 재판에 증거로 제출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범죄 혐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가 모두 증거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몰래 녹음’의 경우 재판에서 증거로 쓰일 수 없다는 법 조항까지 있다. 통신비밀보호법 3조와 4조에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내용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은 불륜 사건, 아동학대 사건, 함정수사 사건 등에 제출된 ‘몰래 녹음’을 증거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사안별로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

DALL-E3 제작

◇법원 “스파이앱으로 녹음한 남편·상간녀 대화, 증거 안돼”

‘스파이앱’을 다른 사람 휴대전화에 깔아두면 통화 기록, 문자 메시지뿐 아니라 통화 내용까지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불륜이 의심되는 배우자 휴대전화에 스파이앱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A씨도 남편이던 B씨가 C씨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의심해 B씨 휴대전화에 스파이앱을 설치했다. 이를 통해 B씨와 C씨의 통화 내용을 몰래 녹음했다. 대법원은 “제3자인 A씨가 B씨와 C씨 사이의 대화를 녹음했으므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통신비밀보호법 3조와 4조를 적용한 것이다.

반면 제3자가 아닌 대화 당사자가 제출한 몰래 녹음은 증거로 인정될 수 있다. D씨는 남편 E씨의 불륜을 의심해 남편 휴대전화에 자동 녹음 기능을 활성화했고, E씨가 모르는 사이 3년간의 통화 내용이 녹음됐다. 몰래 녹음은 E씨의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됐다.

대법원은 “D씨는 전화 통화의 일방 당사자로서 E씨와 직접 대화하며 그의 발언을 직접 들었으므로 내용이 녹음됐다고 하더라도 E씨의 사생활 비밀, 통신의 비밀, 대화의 비밀 등이 침해됐다고 평가하기 어렵고 음성권 등 인격적 이익의 침해 정도도 비교적 경미하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아동학대 사건 ‘교사 발언 몰래 녹음’ 법원 판단 엇갈려

교사의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경우 부모가 아이 옷이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교사의 수업 중 발언을 몰래 녹음하는 경우도 있다. 대법원은 이런 몰래 녹음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교사가 교실에서 수업 시간 중 한 발언도 ‘공개되지 않은 대화’여서 통신비밀보호법의 보호대상”이라는 것이다. 부모는 제3자이기 때문에 타인인 교사의 말을 녹음한 내용을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법리다.

하지만 하급심에서는 다른 판단도 나오고 있다. 유명 웹툰작가의 아동학대 사건에서 1심을 심리한 수원지법 형사9단독은 “자폐성 장애로 인지능력과 표현력이 또래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피해자가 학대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없었던 점, 녹음 외에 피해자 법익을 방어하기 위한 유효·적절한 수단을 강구하기 어려워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3자 녹음의 위법성이 없어진다”면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봤다.

◇법원 “경찰의 성매매 현장 몰래 녹음,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수사 기관이 범죄 현장을 몰래 녹음하기도 한다. 최근 대법원이 성매매 알선 과정을 몰래 녹음한 자료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사건이 있었다. 경찰관이 손님으로 위장한 뒤 업주와 종업원과의 대화를 몰래 녹음했다. 업주는 성매매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자 몰래 녹음은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증거보전의 필요성 및 긴급성,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방법, 범행이 행해지고 있거나 행해진 직후 등 요건이 갖춰진 경우 영장 없이 녹음이 이뤄졌다고 해서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와 같은 대법원 판단은 수사 기관이 적법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범죄를 수사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