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친족 간에 벌어진 횡령, 절도 등 재산 범죄에 대해 처벌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 32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은 해당 법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해 적용을 중지시킨 상태에서 국회에 시간을 주고 합당한 내용으로 법을 개정하게 하는 내용이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김기현 출석정지' 권한쟁의심판 및 '친족상도례' 형법 328조 위헌소원 심판에 대한 선고를 위해 입장한 뒤 자리에 앉아있다. / 연합뉴스

헌재는 27일 형법 328조 1항에 대해 위헌 확인을 청구한 사건 4건에 대한 결정 선고에서 “해당 조항은 헌법에 합치하지 아니한다”면서 “법원 기타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는 2025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해당 조항의 적용을 중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25년 12월 31일까지 개선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해당 조항은 2026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한다”고 했다.

이날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형법 328조 1항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간의 제323조의 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는 내용이다. 헌법재판관 9명이 전원 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은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도입된 이후 71년 간 유지돼 왔다. 앞서 헌재는 지난 2012년 이 조항에 대해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친족상도례 조항은 가정 내부 문제에 국가 형벌권이 간섭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고려, 가정의 평온이 형사 처벌로 인해 깨지는 것을 막으려는 판단에 따라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이날 헌재는 형법 32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친족에 의한 재산 범죄의) 피해자가 (지적장애 등으로) 독립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무 처리 능력이 결여된 경우에 (가해자의 처벌을 면제하는) 해당 조항을 적용하는 것은 가족과 친족 사회 내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는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또 “해당 조항은 직계혈족·배우자는 실질적 유대나 동거 여부에 관계 없이 적용되고 8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은 동거를 요건으로 적용되고 그 각각의 배우자에 대해서도 적용된다”면서 “이처럼 넓은 범위의 친족에게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할 경우 형사 피해자인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헌재는 “해당 조항이 강도죄와 손괴죄를 제외한 다른 모든 재산 범죄(절도·사기·공갈·횡령·배임·장물 등)에 준용되는데 이런 재산 범죄의 불법성이 경미해 피해자가 참을 수 있는 범위에 속한다거나 피해 회복 및 친족간 관계 회복이 용이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50억원 이상 횡령으로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의 가중 처벌을 받게 되는 범죄 등에도 친족상도례를 적용해 처벌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어 헌재는 “해당 조항은 법관으로 하여금 형 면제 판결을 하도록 획일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면서 “(해당 조항이 적용되는) 거의 대부분의 사안에서 기소가 이뤄지지 않고 있고 예외적으로 기소가 되더라도 형 면제라는 결론이 정해져 있는 재판에서 피해자의 법원에 대한 적절한 형벌권 행사 요구는 실질적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친족상도례 규정을 두고 있는 대륙법계 국가들의 입법례를 살펴보더라도 일률적으로 광범위한 친족의 재산 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면서 “그 경우에도 대상 친족 및 재산 범죄의 범위 등이 우리 형법이 규정한 것보다 훨씬 좁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헌재는 “해당 조항은 형사 피해자가 법관에게 적절한 형벌권을 행사해 줄 것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바 이는 입법 재량을 명백히 일탈해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것으로 형사 피해자의 재판 절차 진술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