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김기현 출석정지' 권한쟁의심판 및 '친족상도례' 형법 328조 위헌소원 심판에 대한 선고를 위해 입장한 뒤 자리에 앉아있다./연합뉴스

헌법재판소는 27일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 32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해당 조항은 “가족과 친족 사회 내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는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다”고 했다. 친족에 의한 재산 범죄의 피해자가 지적장애 등으로 독립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무 처리 능력이 결여된 경우에 가해자 처벌을 면제하는 게 옳지 않다는 뜻이다.

한 법조인은 “치매 걸린 부모를 상대로 자녀 일부가 다른 자녀들 몰래 재산을 가로채거나 실제로는 가족적 유대 관계가 없는 먼 친척이 불쑥 나타나 지적 장애가 있는 친척의 재산을 빼앗는 경우에는 형사 처벌을 해야 한다고 헌재가 선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헌재의 결정은 총 4건의 헌법소원에 대한 판단이었다. 청구인 가운데 한 명은 지적장애 3급 장애인 A씨다. 그는 1993~2014년 창원 돼지 농장에서 일하다, 아버지 사망 후 작은아버지 부부와 동거했다. 작은아버지 부부는 A씨와 4년간 동거하면서 퇴직금, 상속재산 등 2억3600만원을 빼앗았다. 부산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발달장애인지원센터 등은 A씨에게 공공후견인을 선임해 작은아버지 부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검찰은 A씨와 작은아버지 부부와 동거하지 않았던 기간인 2018년 1월부터 4월까지 빼앗긴 1400여만원에 대해서만 횡령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친족상도례상 ‘동거 친족’으로 인정돼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대해 A씨가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다른 청구인 B씨는 파킨슨병에 걸린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다른 자녀들이 재산을 횡령했다며 고소했지만 검찰이 친족상도례를 이유로 기소하지 않았다. 이어 기소를 해달라며 재정신청을 냈지만 기각됐다. 위헌법률심판 제청도 신청했지만 역시 기각당했다. 이런 법률적 방법들이 모두 막히면서 헌법소원을 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