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뜨 제빵 기사들에게 민주노총 탈퇴를 종용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허영인 SPC 회장이 첫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함께 기소된 황재복 SPC 대표는 혐의를 대체로 인정하며 “허 회장 지시가 있었다는 점을 참작해달라”고 했다.

파리바게뜨 제빵 기사들에게 민주노총 탈퇴를 종용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허영인 SPC그룹 회장에 대한 1심 첫 공판 기일이 18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됐다. 사진은 허 회장이 2023년 12월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에 출석한 모습. /뉴스1 제공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조승우 부장판사)는 18일 오후 2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허 회장, 황 대표, 백모 홍보실장(전무) 등 SPC 관계자 18명에 대한 첫 공판 기일을 진행했다. 지난 4월 구속 수감된 허 회장은 이날 파란색 수의를 입고 마스크를 낀 채 재판에 출석했다.

허영인 회장 측 변호인은 “검사 측 공소 사실에 의하면 SPC가 근로자 권익을 침탈하는 반사회적 기업이며, (한국노총 소속인) PB파트너즈 노조가 회사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어용 노조라는 것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런 주장은 실체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PB파트너즈 노조는 검사 측이 (회사의) 탈퇴 종용이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시점인 2022년 2월 이전에도 이미 5000여명의 제조 기사들 중 80%에 이르는 4000여 명이 가입한 절대 다수 노조였다”며 “만약 PB파트너즈 노조가 어용 노조였다면 근로자의 80%가 가입하는 일은 애당초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변호인은 “한국노총 소속 대표 노조가 회사 이익만을 대변하는 어용 노조로 보는 것 자체가 너무 무리하다”며 “회사는 한국노총 소속 노조와 노사분규 없이 협력적인 노사 관계를 구축해 왔고, 이런 기업 문화가 피고인 회사와 PB 노조의 협력적인 노사 관계로 이어지게 됐다”고 했다. 이어 “복수 노조를 처음 경험하는 회사 입장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 뿐이며, 부당 노동 행위는 아니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허 회장 등이 PB파트너즈 조합원 모집 활동에 개입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공동의 이익 증진을 위한 노사 협력과 노조 탄압은 구분해야 한다”며 “회사와 PB파트너즈 노조의 공동이익 증진을 위한 협력을 노조 탄압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PB파트너즈 노조를 언론 대응 등에 활용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소수 노조인 파리바게뜨지회가 2021부터 대표 노조인 PB파트너즈 노조와 회사가 이뤄낸 임금인상 등 성과를 폄훼하는 기자회견을 했다”며 “회사도 PB파트너즈 노조와 입장이 같아 가능한 범위 내에서 협조하고 도움을 준 것인데 이것이 부당 노동 행위라고 할 수 있나”라고 했다.

허 회장 측 변호인은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의 탈퇴를 종용했다는 혐의도 부인했다. 변호인은 “PB파트너즈 노조 가입 권유 등 피고인들의 행동이 적절하지 않아 깊이 반성한다”면서도 “징계 등 불이익이나 이익 제공을 약속하는 등의 불법 방식을 수반하지 않았으므로 부당 노동 행위로 단정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변호인은 “이 사건 공소사실은 사안 전체를 보지 않고 일부 단면만을 보고 부당 노동 행위로 의율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황재복 대표 측 변호인은 이날 재판에서 “허 회장의 지시로 제조 기사들에게 민주노총 조합 탈퇴를 종용한 사실을 인정한다”고 했다.

황 대표 측은 “파리바게뜨지회의 시위로 회사 브랜드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SPC 그룹으로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강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도 “깊이 반성한다”고 했다.

황 대표 측 변호인은 “피고인은 20년간 허 회장을 보좌하면서 지금의 SPC 그룹을 만드는데 기여한 임직원 중 한 명으로서 검찰 조사 과정에서 허 회장을 보호하는 것이 그룹을 위한 길이라고 잘못 생각한 나머지 허 회장의 지시 사실을 부인한 적이 있었다”며 “그러나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이미 많은 증거들이 확보된 사실을 확인했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수많은 임직원들을 위해 피고인이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그룹의 추가적 불이익을 막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황 대표 변호인은 “SPC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범행에 실제로 관여한 당사자들이 처벌받고 잘못된 노사 관행을 바로잡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한다”며 “사실관계를 밝히고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반적인 공소 사실을 인정한다”고 했다.

앞서 허 회장과 황 대표 등은 PB파트너즈의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 570여명에게 노조 탈퇴를 종용한 혐의를 받아 기소됐다. PB파트너즈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채용과 인력 관리를 맡는 업체다. 이들은 민주노총 소속 직원에게 승진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주거나 한국노총 소속 PB파트너즈 노조의 조합원 모집을 지원하기도 한 혐의도 받는다. 또 이 과정에서 PB파트너즈 노조 측에 사측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 인터뷰 등을 하게 한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허 회장이 이 과정 전반을 보고 받고 최종 결정, 지시하며 범행을 주도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허 회장은 지난 4월, 황 대표는 지난 3월 각각 구속 기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