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나비엔 보일러 열교환기. 본 사진은 이 기사와 관련이 없는 사진임./경동나비엔 소셜미디어(SNS) 캡처

국내 보일러 기업 1등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인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가 특허 전쟁을 벌이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귀뚜라미가 특정 보일러 제품을 출시하면서 자사 열교환기 기술을 무단 도용했다고 소송을 냈다. 경동나비엔은 제품 출시 전 귀뚜라미로 단체 이직한 직원들이 기술을 유출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귀뚜라미는 사실 왜곡이라고 맞서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60부는 3일 오후 3시 경동나비엔이 귀뚜라미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권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심문을 진행했다. 지난 2월 이후 두 번째 심문이다. 이날 양측은 이해를 돕기 위해 재판부에 열교환기를 제출했다. 열교환기는 내부에서 발생하는 열을 흡수해 난방수를 데우는 역할을 하는 보일러 핵심 부품이다.

귀뚜라미는 2021년 8월 ‘ALL 스테인리스 일체형 열교환기’를 사용해 제품을 출시했다. ‘L11′라는 제품을 시작으로 S11, E11 등을 시장에 내놨다. ‘거꾸로 콘덴싱’으로 이름을 알린 제품들이다. 귀뚜라미는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재질에 열효율을 높여 가스비를 줄일 수 있다며 제품을 홍보했다. 여기에 ‘친환경’이라는 소비 행태에 발맞춰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였다고도 했다.

그런데 경동나비엔은 귀뚜라미가 L11 등을 출시하면서 자신들이 먼저 개발해 특허를 출원한 열교환기 기술을 무단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콘덴싱 보일러 핵심은 ‘열효율’이다. 열 배관 설계, 모양, 구성요소의 차이 등에 따라 열효율이 달라진다. 경동나비엔은 최적의 열효율을 낼 수 있는 ‘열교환기’를 개발했는데, 여기에 들어간 기술을 귀뚜라미가 베꼈다고 주장했다.

귀뚜라미는 열교환기 구조 등이 다르고 과거 기술을 승계·개발해 적용했다고 반박했다. 동시에 경동나비엔의 특허가 무효라는 주장도 폈다. 경동나비엔이 문제 삼은 특허 일부는 출원하기 이전부터 활용하고 있는 만큼 ‘신규성과 진보성’이 결여됐다고 했다. 특허는 이미 존재하는 기술과 대비해 새로워야 한다는 ‘신규성’과 기존 기술로부터 쉽게 발명해 낼 수 없을 만큼 진보해야 한다는 ‘진보성’이라는 요건을 갖춰야 한다. 유사 분쟁에서 신규성과 진보성이 인정되지 않아 특허를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있다.

귀뚜라미 측은 “단순 설계 변경에 불과하고 통상의 기술자라면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당연한 기술적 특징을 바탕으로 제품을 만든 것”이라며 “열교환 배관이나 구성 등을 침해했다는 경동나비엔 측의 전제부터 잘못됐다”고 언급했다.

이번 특허권 소송의 이면에는 경동나비엔 직원 8명의 귀뚜라미 집단 이직이 있다. 경동나비엔은 영업비밀 유출 우려 등을 이유로 2022년 말에 귀뚜라미를 고소했다. 현재 압수수색이 끝나고 압수물 확인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귀뚜라미는 법정 공방이 본격화되자 ‘L11′ 제품 생산·출시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판단, 각 대리점에 재고 확보에 힘쓰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경동나비엔 측은 “집단 이직에 관해 귀뚜라미 측이 소명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핵심 기술의 추가적·지속적 유출과 사용으로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많은 노력과 비용을 투자해 특허 발명을 포함한 기술을 개발했는데, 비용을 시장에서 정당하게 회수할 수 없게 됐다”며 가처분 신청 인용을 재판부에 촉구했다.

귀뚜라미 측은 ‘대규모 이직’에 관해 선을 그었다. 귀뚜라미 측은 “왜곡된 사실을 내세우며 왜곡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이직에 따른 기술 유출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다. 이어 “2021년 8월 제품이 출시된 이후 2년 반 가까이 지난 시점에 가처분 신청을 했다. 오랫동안 방임된 상태”라며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 본안 소송에서 억울함이 해소될 때까지 연간 최소 수백억원 이상의 손해가 발생한다”며 가처분 신청을 기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판부는 “5월 24일에 심문 종결하겠다”며 “6월 초에 (최종) 판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