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정다운

이상진(가명)씨는 부친 사망 후인 지난 2022년 모친을 상대로 상속재산분할 심판을 청구했다. 아버지는 서울 동대문 시장에서 상가를 운영하면서 모은 돈으로 20억원 상당의 광진구 건물과 상가, 채권 등을 샀다. 상진씨는 아버지 생전에 일부 재산을 물려받았으나, 본인 몫은 그보다 더 많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6년간 부친과 일하며 급여를 받지 못했고 사업자금도 제공했기 때문이다.

심리를 시작한 가정법원은 우선 조정에 회부했다. 하지만 상진씨와 모친·형제 4명 간 이견으로 조정은 성립되지 않았다. 작년 재판부는 부동산과 각 채권 등 재산을 상진씨에게 0.128 지분, 모친에게는 0.290 지분, 형제 3명에게는 0.193 지분의 비율로 분할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분쟁의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상진씨는 다시 모친 등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상속분할 대상이 된 14억원 상당 건물에 모친이 살고 있는 것을 문제삼았다. 이 건물에는 법원이 판단한 만큼 본인에게 지분이 있는데, 모친이 그 지분만큼 무단 점유하고 있으니 반환해달라는 취지였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 같은 사례가 최근 상속재산분할 청구사건에서 쉽게 관측된다고 한다. 법원의 공평한 상속재산 분할이 오히려 분쟁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소송전을 치르면서 서로 감정이 악화된 가족들이 재산을 지분 공유하게 되면, 그 공유재산을 두고 분쟁이 재발하는 형태다. 법조계에서는 “분쟁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조정위원을 양성하거나 상속재산분할 사건에서는 가사·민사를 함께 심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일러스트=손민균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상속분할재산 청구 사건에서 상속분은 민법이 정한 비율에 상속인별 기여분을 고려한 뒤 특별수익(상속인이 살아있을 때 받은 증여나 유언을 통해 특정인에게 증여된 재산)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구한다. 상속인별 기여분은 심리 과정에서 판사가 양측의 의견과 각종 증거를 보고 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법원이 정한 재산분할 비율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이씨처럼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하거나 유류분 반환을 청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가사 전문 법관 출신 한 변호사는 “법원 판결 이후에 소송 제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상담하러 찾아오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라며 “예전에는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남겨줄 재산이 많지 않았지만 이제는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높아지면서 분할을 다툴 만한 여지가 생겼고, 유언장을 작성하는 문화도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산분할 결정 후 소송이 제기되자 앙심을 품고 범죄를 저지른 사례도 있다. 부모의 사망 이후 재산을 상속받은 한 남성이 2021년 동생의 후견인으로부터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을 당하자 동생에게 수면제를 먹여 재운 뒤 사망케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살인 혐의까지 인정해 징역 30년을 선고했지만, 2심에서는 살인 혐의가 무죄 판단되면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살인을 저지른 증거가 없다는 게 무죄의 이유였지만, 범행 동기는 인정됐다.

가사 전문 법관 출신인 전안나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는 “상속 분쟁 조정위원 양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속재산 분할 사건의 특성이나 부당이득 정산 등 가사·민사를 아우르는 전문성을 가진 이들을 통해 조정으로 갈등을 줄이자는 취지다. 이 변호사는 “종합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면 많은 가족들이 분쟁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