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뉴스1

삼성전자에서 14년 동안 근무하면서 극저주파 전자기장에 노출돼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전자 엔지니어가 1심 판단을 뒤집고 항소심에서 산재를 인정받았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4-1부(부장판사 이승련 이광만 정선재)는 전날 삼성전자 엔지니어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0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수원사업장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그는 디스플레이 패널 옆에서 작업하면서 극저주파 전자기장에 노출됐다. 고온 시험 시 TV 소프트웨어 결함 검사를 위해 가속수명시험(ALT) 시험실에도 출입했다. 약 14년 이 업무를 맡은 A씨는 2015년 2월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한 달 뒤 39세의 나이로 숨졌다.

A씨 유족은 업무상 재해라고 주장하며 2016년 5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과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2018년 5월 TV에서 발생하는 극저주파 전자기장은 백혈병과의 관련성이 명확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특히 노출 수준이 낮고, 고온작업에 의한 화학물질 노출 수준 역시 낮다는 이유로 유족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 법원은 유족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패소 판결을 뒤집고 A씨 사망과 업무상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A씨가 상당한 양의 극저주파 전자기장에 장기간 노출됐고, 극저주파 전자기장 노출 수준이 높을수록 골수성백혈병의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보고된 점 등을 근거로 A씨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판단했다. 시험실에서 고온 시험을 할 때마다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에 반복적으로 노출됐다는 점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백혈병이 생겼고 가족력도 없어 업무환경이 질병 발병과 악화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어 “노동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 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이며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질병 사이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해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과관계 판단 시 첨단산업의 불확실한 위험을 대비해 노동자의 희생을 보상하면서 첨단산업의 발전을 장려하는 산재보험의 사회적 기능을 규범적으로 조화롭게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