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민법상 결혼할 수 없는 친족 범위를 8촌 이내에서 4촌 이내로 축소를 검토하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썩였다. ‘5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결혼이 뭐가 문제냐’는 의견과 ‘근친혼 범위가 한번 허물어지기 시작하면 가족제도가 파괴된다’는 반론이 팽팽하다.

근친혼과 더불어 시행된지 15년 이상된 혼외자, 유류분 관련 법률이 올해부터 줄줄이 개정되거나 위헌 심판 대상에 오른다. 급변하는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헌재)가 동성동본 금혼 법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한지 27년 만에 가족관계와 관련해 가장 큰 변화가 가시화되는 해가 될 전망이다.

그래픽=손민균

◇ 한국·북한 뿐인 ‘8촌 결혼 금지’...뒤늦게 알게 되면 혼외자 양산

우리 민법 제809조 제1항에선 8촌 이내 혈족 사이 혼인을 금지하고 있다. 직계혈족과 형제자매 사이 혼인을 금지하는 나라는 많다. 친족간 결혼은 ▲유전 질병 발병의 위험을 높이고 ▲가정의 안전을 해칠 수 있고 ▲무엇보다 본능적으로 도덕적인 거부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나라가 3·4촌까지 결혼을 금지하지, 8촌까지 막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나라와 북한 정도다. 8촌은 아버지 육촌형제의 자녀다. 유교 문화에서 친척이 사망했을 때 상복을 입는 범위가 8촌까지였다. 요즘은 ‘사돈의 8촌’이란 관용어가 말해주듯 먼 친척관계로 평생 누군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상대방과 8촌 관계인지 서류상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지난 2022년 헌재는 8촌 간 결혼을 금지한 민법 제809조 제1항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이 조항이 근친혼 발생을 억제하는 데 기여하는 만큼 입법목적 달성에 적합한 수단이라고 봤다. 오늘날 친족 관념과 가족의 기능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외국보다 혼인금지 범위가 넓긴 하지만 역사·종교·문화적 배경이나 생활양식의 차이로 국가 간 단순 비교가 어려운 점, 가족질서를 보호하고 유지한다는 공익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다만 8촌 간의 혼인은 무효가 된다는 민법 제815조 제2호는 헌법불합치로 결정했다. 결혼할 때는 몰랐지만 우연히 사후에 확인하게 될 경우 현행법상 혼인이 무효로 돌아가는데, 당사자나 자녀들에게 가혹한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혼인취소와 달리 혼인무효는 서류상 기록도 남지 않고 결혼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녀의 경우 갑자기 혼외자가 되어버린다. 이혼처럼 재산 분할도 안 된다.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법 조항의 효력이 올해 12월 31일까지만 인정돼 법무부는 법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혼인 금지 친족 범위를 8촌 이내에서 4촌 이내로 축소해야 한다는 연구용역 결과는 결론이 아니라 하나의 검토 대상이다. 국민적 공감대 없이 갑작스럽게 추진하기 어려운 사안인 만큼 결혼 가능한 친족 범위를 당장 확대하기보다, 혼인 무효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의 법 개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 혼외자, 엄마만 출생신고 허용하는 가족관계법...투명아동 양산

혼외자의 출생신고를 모(母)만 할 수 있게 한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 2항도 작년 3월 헌재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이 조항은 아이와 혈연관계가 바로 확인되는 모친에게 출생신고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부친은 생부가 맞는지 추가 확인이 필요할 수도 있고 출생사실 자체를 모를 수도 있어서다.

그러나 이 조항이 출생신고가 되지 않는 이른바 투명아동을 양산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모친이 소재불명이거나 생모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에만 생부가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즉 모친의 소재가 확인되고 특정 가능하지만 자녀 부양 의사가 없는 경우라면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아이는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고 주민등록이나 신분확인이 필요한 거래를 할 수도 없다.

작년 2000명이 넘는 아동 무적자(無籍者)가 발견되면서 출생신고를 어렵게 하는 현행법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작년 6월 경기도 수원시 한 아파트 냉동실에서 발견된 아기 2명이 출생신고가 되어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전수조사를 했더니 병원에서 태어났지만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영유아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2236명에 달했다.

◇ 불효자여도, 자녀 버린 부모여도 공평하게 상속? 위헌 심판

올해 가사·상속 전문 법조인들이 가장 주목하는 사건은 헌재의 유류분 위헌 심판이다. 유류분은 사망한 사람의 의사에 상관없이 유산 일정부분을 유족에게 상속하도록 한 제도다. 1979년 시행됐는데 당시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면서 여성 배우자와 딸들이 소외되는 일이 자꾸 발생하자 여성의 상속권을 보장하기 위해 법 조항이 마련됐다. 민법에 따라 자녀와 배우자에게 법정상속분의 절반을, 부모와 형제자매에겐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보장한다.

법 조항이 시행됐을 때와 비교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고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유류분의 존재 가치가 없어졌다는 지적이 학계와 법조계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2019년 걸그룹 카라의 구하라 씨가 사망하자, 20년 넘게 소식을 끊었던 친모가 딸의 유산을 받아가면서 유류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평생 부양의 의무를 지지 않고 각자 살아온 부모, 형제자매도 유류분 제도 덕분에 일정액을 상속받는다. 망인이 재산을 공익재단에 기부하고 싶어도 가족과 형제자매에게 무조건 줘야 해 그 나머지를 기부할 수 밖에 없다.

2021년 헌법소원을 청구한 사람은 법에서 일률적으로 유류분 비율을 정한 것도 문제삼았다. 그는 “유류분 제도는 당사자 사이의 형평과 상속 재산에 대한 기여 여부 등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형제자매까지 획일적·일률적으로 유류분 비율을 정해 매우 불합리하다”며 “유류분 상실 사유를 두지 않아 패륜적 상속인에게도 유류분반환 청구권을 인정할 뿐 아니라 자선단체에 대한 기부 등과 같은 공익적 증여까지 유류분반환 청구의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2010년과 2013년 총 세 차례에 걸쳐 유류분 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번 건에 대해선 헌재가 처음으로 공개변론까지 열고 양측의 의견을 들었다는 점에서 달라진 기류가 감지됐다. 2015년 간통죄 위헌 판결을 내리기 전에도 공개변론을 열었다. 한정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경우 기존의 가족제도와 상속 관행을 크게 흔드는 변화가 나타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