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과 딜로이트안진(안진회계법인)이 2012~2014년 저지른 분식회계와 관련해 회사채 투자자인 정부와 공무원연금공단에 손해배상 하라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이대로 확정되면 약 180억원에 달하는 넘는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증권사와 소액주주와의 소송에서도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가운데 ‘분식회계’ 사건은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2-3부(부장판사 박형준 윤종구 권순형)는 정부와 공무원연금공단이 각각 한화오션과 딜로이트안진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한화오션·딜로이트안진 등은 정부와 공무원연금공단에 각각 110억원가량과 21억원가량을 배상해야 한다. 일부 배상금은 한화오션과 딜로이트안진이 공동으로 지급하며 한화오션이 2~2.5배 더 부담한다. 대우해양조선이 분식회계를 주도한 주체라서다.
대우해양조선은 한화그룹 품에 안기기 전인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프로젝트 예정원가를 임의로 축소해 매출액을 부풀렸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물론 자기자본을 과대 계상하는 방법을 동원했다. 손실이 났음에도 이익이 발생한 것처럼 재무제표를 작성했다. 이 시기 재무제표에 대해 회계 감사를 실시한 안진은 감사보고서에 ‘적정 의견’을 기재했다. 이 사건으로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대표, 김갑중 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우정사업본부와 공무원연금공단은 2014년 4월 대우해양조선 회사채를 사들였다. 당시 대우해양조선 신용등급이 A+ 내지 AA-였으므로 원리금 지급 확실성이 높다고 보고 투자를 진행했다. 하지만 분식회계가 없었더라도 실제 신용등급은 BBB에 불과했다. BBB는 채무상환능력은 있으나 장래 환경변화에 따라 저하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후 분식회계 사건이 알려지고 회사가 공중분해하면서 우정사업본부는 약 235억원, 공무원연금공단은 49억원가량의 손해를 입었다. 국민연금공단도 3000억원을 웃도는 금액을 투자해 큰 손실이 났다. 결국 우정사업본부를 운영하는 정부와 공무원연금공단은 잘못된 재무제표를 근거로 발행된 회사채에 투자해 피해를 봤다며 2017년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정부가 웃었다. 법원은 대우해양조선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중요한 사항에 관해 허위 기재가 있는 증권신고서와 각 보고서를 제출했고, 이를 믿고 회사채를 취득한 원고의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딜로이트안진 소속 회계사들은 대우해양조선이 재무제표를 분식한 사정을 잘 알 수 있었음에도 허위 기재 재무제표에 대해 ‘적정의견’을 제시했다”며 손해배상 책임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대우해양조선이 한화그룹에 인수돼 ‘한화오션’으로 재출범하면서 한화오션이 항소심을 이어받았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한화오션과 안진이 1심 패소 부분을 취소해달라는 항소를 기각했다. 정부와 공무원연금공단 역시 손해액 산정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피고들의 항소 이유가 1심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고 법원에 제출된 증거를 모두 살펴보더라도 1심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정부를 비롯해 이른바 ‘대우해양조선 분식회계’ 사건 투자 피해자들은 법원에서 연이어 승소하고 있다. 2022년 서울고법 민사18부는 대우해양조선이 국민연금공단에 322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1부도 하이투자증권과 현대차증권이 한화오션과 딜로이트안진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하며 “한화오션은 하이투자증권에 40억6000만원, 현대차증권에 11억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밝혔다.
한화그룹은 2조원을 투입해 ‘한화오션’을 출범시켰지만 과거 분식회계 사건으로 추가 비용 지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 사건들도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판결이 확정되면 한화오션과 안진은 정부와 공무원연금공단, 국민연금공단 등을 비롯해 증권사와 소액주주에게 600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금과 지연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