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은현
"법관 지원할 시기가 되면 40세가 넘고 아이가 자라고 있을 텐데, 지금처럼 열정을 가지 법원에서 새 도전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1년 차 A재판연구원

'예비판사'로 불리는 재판연구원들의 인기가 식었다는 이야기가 법원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재판연구원은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 중에서 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법원이 선발해 일선 법원에 3년간 일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법원이 판사를 지망하는 외부 경력자에 요구하는 법조 재직기간이 지속적으로 늘어, 작년 임용된 재판연구원은 법원에서 3년을 일하고도 로펌에서 7년을 일해야 판사에 지원할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점차 우수 인력을 법관으로 채용하기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임용된 재판연구원은 129명으로 전년보다 30명 늘었다. 재판연구원은 전국 고등법원이나 지방법원에서 3년간 부장판사를 도와 새로 들어오는 사건 검토보고서, 판결문 초고 등을 작성한다. 법원행정처는 공식적으로 지원자 수와 경쟁률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채용 면접에 참여한 법원 고위 관계자는 "실제 경쟁률이 떨어진 걸 많이 느낀다"며 "예전엔 연구원을 하다가 바로 법관이 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 이점이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법조일원화'를 원인으로 꼽는다. 법조일원화는 사회 경험 없이 바로 법관으로 임용돼 발생하는 국민 법 감정과의 괴리를 줄이고,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갖춘 이들을 법관으로 선발하겠다며 2011년 도입됐다. 이에 따라 2013년부터 3년 이상, 2018년부터 5년 이상, 2025년부터 7년 이상, 2029년부터 10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법원조직법을 개정할 당시 10년이란 기간에 이견이 없었고, 당초 2026년부터 이를 시행할 계획이었으나 판사 수급 문제 등을 이유로 3년 유예됐다.

지난해 임용된 재판연구원들은 2029년 기준을 적용받아 법관 지원 자격으로 경력 10년 이상이 필요하다. 1년 차인 B재판연구원은 "재판연구원 임기를 마치더라도 7년간 변호사 생활을 더 해야 법관 지원 자격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97년생인 막내 동기가 법원에 다시 오더라도 30대 후반인데 육아나 급여 등 현실적인 여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재판연구원들끼리 10년은 너무 길고 나중에 돌아올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다는 대화를 나누곤 한다"고 덧붙였다.

일러스트=정다운

대형 법무법인도 서울 소재 법원 재판연구원 출신을 선호한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 인턴 기회를 부여하는 방법과 아울러 재판연구원을 지낸 변호사를 영입한다. 이들 중 근무 태도와 실적이 좋은 '허리 격'인 7년 차 변호사를 붙잡기 위해 해외연수나 파트너 변호사 승진 등을 제안한다. 의지와 신념이 뚜렷하거나 대형 법무법인이 자신과 안 맞는다고 판단한 변호사는 법관 등 공직 길에 들어서지만, 일반적으로 높은 연봉 등을 포기하고 법원으로 돌아올 동인이 부족하다.

법조일원화에 따른 재판연구원 수요 감소가 피부로 다가오자 법원 내부에서는 우수한 인력을 법관으로 채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한 현직 판사는 "7년 차 정도면 검사나 변호사로 자리 잡을 시점이고 10년 정도에 실력을 인정받으면 주요 부서로 가게 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실력이 있는 사람은 기존에 있던 조직에 남는 게 실익이 큰 데, 지방 근무와 연봉 삭감을 감수하고 법관을 지원하겠느냐"며 "앞으로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이 지원하게 되는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냈다.

통상 필기시험과 면접 등을 준비하기 위해 6개월가량 생업을 멈추고 법관을 준비한다.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법관이 일정한 수입 없이 공부만 해야 한다는 의미다. C재판연구원은 "40대 들어서 휴직한 뒤 시험 준비하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다"며 "급여보다 요구하는 경력이 너무 길어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국회가 나서 경력 기간을 단축하는 사안을 심도 있게 다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법원조직법을 손봐야 실타래를 풀 수 있어서다. 복수의 재판연구원들은 "5~7년 정도가 필요 경력 기간으로 적당하다고 본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법원 고위 관계자는 "법관 자질 문제로 재판 질이 떨어지면 큰 문제"라며 "지금은 드러나지 않지만 향후 재판 신뢰 문제로 불거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