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진행된 영상 재판 시연회의 모습 /뉴스1

법원이 지난 2021년 말 확대 시행한 영상재판이 최근 석달 간 1만건 이뤄지면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계없이 활용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원 안팎에선 소송 당사자와 대리인의 수고를 줄일 수 있어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과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어 급격히 늘리는 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팽팽하다.

11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영상재판 실시건수는 올해 1월 742건에 불과했지만 꾸준히 증가해 6월 2000건을 돌파한 데 이어 10월에는 처음으로 3000건을 넘었다. 11월에도 3200여건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 영상재판은 1995년 원격영상재판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면서 도입됐지만, 증인·감정인 신문, 변론준비기일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그러나 2021년 민사·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민사재판의 경우 선고 외 모든 기일을, 형사재판은 공판준비기일, 피고인 구속 청문절차, 증인·감정인·통역인 신문을 영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법원행정처는 재판이 지연되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법정 출석이 어려운 도서 산간지역 주민 등을 배려하기 위해 영상재판을 전국 법원에 확대 도입했다. 도입 초기에는 변호사나 재판 당사자가 제도 자체를 알지 못해 신청이 많지 않았다. 최근 이용자가 많아진 것에 대해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한 번 경험해본 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본다”며 “법원의 노력과 당사자들의 참여로 확대됐다”고 전했다.

2021년 11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영상재판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 “영상재판, 재판 지연 해결책...진입장벽 낮추고 방해자 처벌해야”

법원 안팎에선 영상재판이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재판 지연을 해결하는 대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증인의 불출석으로 재판이 지연되는 경우가 빈번한데, 언제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는 영상재판을 이용하면 이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영상재판 진입 장벽은 낮추고 방해자는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민사소송법, 민사소송규칙상 영상재판은 재판 당사자가 신청해야 가능하다. 이 때 재판장이 상황을 판단해 허가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법원 일각에선 별도의 신청이 없어도 기본적으로 영상재판이 가능하도록 하고, 부정적인 사람이 거부 의견을 표명하는 식으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 실무상 간단한 보험사건이나 소액 등 당사자들의 주장을 법정에서 꼭 확인해야 할 정도가 아니라면, 영상재판으로 진행해 사건 적체,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하자는 취지”라며 “판사와 대리인, 당사자 모두가 편해야 영상재판이 활성화된다”고 강조했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영상재판을 활용해 본 사람만 계속 쓰다 보니 통계가 늘어난 영향도 있다”며 “저변 자체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3자 참여나 영상 녹화, 유출에 대한 처벌 조항을 만들어 법관들의 불안을 잠재울 필요도 있다. 영상으로 증인신문이 이뤄질 경우, 법률 브로커나 다른 사람이 출석하거나 녹화·녹음으로 법관을 공격할 우려가 있다. 한 부장판사는 “미국에서는 재판 영상을 재가공해 판사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경우 ‘법정 모독’으로 강하게 처벌한다”며 “영상재판 활용을 주저하는 이들을 위해 방어 장치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상재판 전문 법원을 만들자는 주장도 나온다. 물리적으로 법정에 출석해 재판하는 것이 아닌, 재판장과 당사자들이 인터넷으로 가상 법정에 접속해 재판을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박강민 서울동부지법 판사는 “법정에 출석할 시간·비용을 줄일 뿐 아니라, 사건이 접수된 법원 근처 변호사들을 선임할 필요도 없어 변호사 선임 비용도 줄일 수 있다”며 “서면이나 화상으로 주장을 말해도 충분히 법관을 대면한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진행된 영상 재판 시연회 중 공개된 법정 입구 모습. /뉴스1

◇ ”영상재판 확대, 국민 재판받을 권리 침해 가능성”

법원행정처는 아직 영상재판이 자리 잡는 단계이고, 당사자의 신청 없이도 영상재판이 가능하게 법 개정을 할 경우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될 소지도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일률적으로 영상재판을 진행하게 될 경우, 국민 편익 제고가 아닌 법원의 편의 추구로 비춰질 수 있다”며 “법관을 대면해 자신의 주장을 피력할 권리 등을 위해 재판 당사자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 법원 직권으로 영상재판을 선택하면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상재판 녹화·녹음으로 인한 문제는 아직 현실화 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법원에서 영상재판을 위해 사용하는 프로그램상 캡쳐나 녹음 등이 불가능하고, 증인신문 또한 법원의 중계시설 등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제3자가 개입할 우려가 없다는 것이다. 영상재판이 확대·시행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녹화·녹음으로 문제가 발생한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행정처도 영상재판 활성화를 위해 소송에 참여하는 통역사가 개인 노트북 등을 이용해 형사재판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 현재 통역사는 법원 등 관공서에 설치된 중계시설을 이용해야만 영상재판 참여가 가능하다. 영상재판 실무를 총괄하는 한 판사는 “지방의 법원에서는 전문 통역인이 없어서 이민 온 사람들이 통역하는 문제가 있는데, 이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영상재판 활성화를 위해 법관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