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업 성패는 3040 세대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년 안팎의 경력을 토대로 사내 주요 업무를 견인하면서 전문성을 갈고 닦아 조직의 허리 역할을 하는 게 바로 3040 세대다. 국내 주요 로펌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선배들이 발굴하지 않은 전문 분야를 찾아내 탁월한 성과를 이루며 차세대 리더로 발돋움하는 3040세대 변호사들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로펌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인수조건 재협의를 제안한다.”

2020년 4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 측의 이 한마디는 2조5000억원 규모의 거래대금을 둘러싼 두 대기업 간 긴 싸움의 신호탄이었다. 아시아나항공과 주채권은행 산업은행은 “계약에 앞서 7주간 인수 실사를 진행 했다”며 재실사는 명분일 뿐 인수 의지가 없어진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결국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은 HDC현산과 컨소시엄을 이룬 미래에셋증권을 상대로 질권소멸확인·손해배상 등 청구소송에 나선다. 한 가족이 될 뻔 했던 두 기업이 한순간에 소송 상대방으로 갈라진 것이다.

2년 간 진행된 소송의 승기는 아시아나항공이 먼저 잡았다. 작년 1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부장판사 문성관)는 “HDC현산 컨소시엄이 납입한 계약금 2500억원을 아시아나항공이 반환할 필요가 없다”는 1심 판결을 내놨다. 동시에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이 청구한 계약 미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금액 각각 10억원, 5억원을 배상하라고도 했다. 재판부는 “아시아나항공이 계약조항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돼 HDC현산과 미래에셋증권에 거래 종결 의무가 발생했다”며 “계약금은 위약벌(違約罰·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벌금을 내는 것)로서 원고에게 귀속됐다”고 판단했다.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계류장에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이륙을 앞두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 뉴스1

기업 간 주식 양수도 계약을 둘러싼 소송전이 이례적인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국가기간산업 인수합병(M&A)이라는 점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도중에 이뤄진 딜 이라는 점에서 산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라는 돌발변수로 인한 업황 변화를 계약 해제 사유로 볼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 였다. 코로나 기간 이뤄진 수많은 M&A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계약금만 2500억원에 달하는 만큼 두 대기업의 신경전도 치열했다. 양측은 실사 과정에서 주고 받은 수천장에 달하는 자료를 법정에서 제시하고 회사 임원을 증인으로 세우며 치열하게 법리 싸움을 벌였다.

1심 재판부가 아시아나항공이 계약금을 돌려줄 의무가 없고 손해배상까지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상대방이 항소를 제기하며 소송은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을 대리한 법무법인 화우의 박영수(사법연수원 38기) 변호사는 아직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번 판결에는 승소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기간 진행된 M&A와 관련한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데,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대전제를 인정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화우에서 기업상사·기업형사 소송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1~2년 차 때부터 형사 사건을 담당하며 방대한 자료를 보는 데 익숙해지고 증인 심문 경험을 쌓은 것이 지금 사건을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2018년 노조 와해 혐의로 기소된 삼성전자서비스 임직원을 변호하면서 무려 6만페이지에 달하는 증거 기록을 검토했다. 1,2심 합쳐 진행된 재판 수만 63회에 달했다. 수많은 증거와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쟁점을 빠르게 파악하고 주1회 꼴로 진행된 재판에서 서면, 프레젠테이션(PT)를 제시해 재판부를 설득했다. 그 결과 화우가 변호한 피고인의 경우 파견법 위반 부분에 대해선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10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화우 본사에서 박영수 변호사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화우 제공

◇ “회사 정보 실사와 달랐다” 주장에 “모를 수가 없었다” 반박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결렬된 후 HDC현산과 미래에셋증권은 불발 원인이 아시아나항공 측 에 있다고 주장했다. HD현산 측은 “아시아나항공의 자산, 부채가 당초 제출한 것과 1000%이상 차이나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재무제표에 대한 재실사가 불가피했는데도 금호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계약금을 받은 아시아나항공과 금호건설은 2020년 11월 돈을 돌려줄 의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달란 ‘질권소멸 통지’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의 쟁점 중 하나는 HDC현산 측이 주장하는 ‘진술 및 보증조항 의무’ 위반이 있었는지 여부였다. 진술 및 보증조항이란 주식 양수도 계약을 체결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제가 된 진술과 그 진술이 진실하다는 것을 보증하는 조항을 말한다. 이 조항을 위반했다는 것은 매도인 측이 매수인에게 인수에 영향을 줄 만한 중요한 사실 중 일부를 숨겼거나 거짓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HDC현산은 인수계약의 기준이 되는 2019년 반기 재무제표 대비 부채와 차입금이 급증했고 당기순순손실이 큰 폭으로 증가한 점 등을 조항 위반 사유로 들었다. 또 2020년 들어 큰 규모의 추가자금 차입과 영구전환사채 신규발행이 매수인의 사전 동의 없이 진행된 점, 부실 계열회사에 대한 대규모의 자금지원이 실행된 점 등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 주장을 화우는 두 가지 측면을 들어 반박했다. 이미 계약 전 실사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상황에 대한 정보를 상대방에 충분히 공유한 점과 아시아나항공은 주권 상장 법인으로 모든 재무제표가 투명하게 공개가 돼 있다는 점이다. 박 변호사는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가치 변동이나 전체적인 상황에 대해선 이미 매수인 측에서 익히 잘 알고 있었고 막대한 자료들이 공유돼 있었다”며 “이 회사를 인수할 상대방 측의 자료 요청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에서 2020년 사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이 상승한 것은 그 사이 회계기준이 변경되면서 이전과 달리 부채로 잡히는 자산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도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부채비율이 확 상승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설명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 신입 때 형사 사건 맡아...증인 심문 하는 선배들 어깨 너머로 배워

그는 변호사 1~2년차 때 형사 사건을 주로 담당한 것이 기업 송무 분야에 필요한 서면, 구술변론, 증인신문 등 다양한 능력을 함께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엔 밤늦게까지 재판이 이뤄지기도 하고 준비할 것도 검토할 것도 많아 힘들었다”며 “하지만 선배들이 법정에서 준비된 심문 내용을 넘어 증인의 표정을 보며 내용을 수정하는 것을 보며 굉장히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사건은 삼성전자서비스 임직원을 변호해 승소로 이끈 일이다. 2014년 검찰이 삼성전자서비스의 고용형태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며 법인과 당시 대표이사를 파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한 사건이다. 형사재판 1심에서 파견법 위반이 유죄로 인정됐지만 2심에선 화우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무죄로 뒤집혔다. 2021년 대법원도 무죄를 확정했다. 이 사건은 화우가 수사단계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수행했다.

박 변호사는 기업 송무 변호사는 좋은 점수를 내는 골프선수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글을 써서 상대방과 판사를 설득해야 하고 법정에서 구두 변론과 증인 신문도 잘해야 한다”며 “한편으로 어떤 사안을 해결해야 할 때는 의뢰인 입장을 잘 들어주면서 법정에서 제시할 논리를 만드는 능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골프선수는 드라이버, 퍼터, 아이언 등 다양한 채를 잘 다뤄야 좋은 성적을 내지 않나”라며 “기업 송무 분야도 다양한 능력이 합쳐져야 하고 이게 바로 전문가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