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헌법재판관이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출근하고 있다./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이종석 헌법재판관(62·사법연수원 15기)을 차기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8일 오후 이 재판관을 신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했다고 밝혔다. 다음 달 10일 임기가 끝나는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후임이다. 이 재판관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숨진 근로자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등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합리적 판결을 하는 인물로 평가 받는다.

이 재판관은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파산수석부장판사 등을 거친 정통 법관이다. 법원 내에서는 원칙을 충실히 지키는 법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윤 대통령과는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다.

2018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추천으로 헌재 재판관이 됐다. 자유한국당은 추천 배경에 대해 "다양한 이해관계를 적절히 대변하고 사회 통합에 기여할 능력과 자질을 겸비했다"고 언급했다. 국회 선출안 표결에서는 찬성 201표, 반대 33표를 얻었다. 야당에서도 반대가 많지 않았던 만큼 이균용 전 후보자에 이어 또 한번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겠다는 청와대 의지가 반영된 인사로 보인다.

◇ 삼성 사업장서 일하다 숨진 근로자 '산업재해' 인정

이 재판관은 사회적 이목을 끈 재판 판결을 다수 맡았다. 지난 2014년 이 재판관은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일하다 숨진 근로자와 유가족 5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산업재해라는 점을 인정해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했다. 당시 판결은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세척·감광 공정을 맡았던 이들의 백혈병 발병과 근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작년 9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 공개 변론에서 민주당이 주도했던 입법 과정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검수완박법 통과에 앞서 민주당 소속이던 민형배 의원이 탈당해 무소속이 되면서 국회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의 여야 의원 비율이 변경된 '위장 탈당' 논란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이 재판관은 "(실제로는) 민주당 소속인 의원을 무소속으로 전제하고 안건조정위원으로 선임해 (검수완박법을) 가결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헌법상)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중요 원리인 다수결 원칙을 위배한 것 아니냐"고 했다.

지난 2018년 인사청문회에선 2011년 파생금융상품 키코와 관련해 불공정 상품이 아니라고 판결한 사실 등이 쟁점으로 부각됐다. 당시 이 재판관은 중장비 수출업체인 ㈜수산중공업이 환 헤지 통화옵션상품인 키코 계약으로 피해를 봤다며 판매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불공정 계약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판매사인 은행 측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외에 "동성애는 개인의 성적 취향 문제이므로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거나 "사형제 폐지와 관련해 국민 감정도 고려해야 한다" 등의 의견도 남겼다.

그는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논란으로 탄핵 소추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심판 사건의 주심을 맡기도 했다. 당시 이 재판관은 유남석·이은애·이영진·김형두 재판관과 함께 다수 의견으로 "피청구인(이 장관)은 재난과 안전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을 관장하는 행정안전부의 장이므로 사회 재난과 그에 따른 인명 피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사건의 쟁점인 이 장관의 △사전 예방조치 △사후 재난대응 △사후 발언 등을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던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헌법상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 이 후보자, 내년 10월 임기 끝나... 임기 연장 여부 '주목'

이 재판관이 신임 헌재소장으로 임명될 경우 '임기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헌재소장은 재판관 가운데 임명하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지만 임기에 대한 별도 규정은 없는 상태다. 재판관 임기가 내년 10월까지인 이 재판관이 헌재소장으로 임명될 경우 11개월만 재임하고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전 대통령처럼 윤 대통령 역시 임기 동안 2번의 헌재소장을 지명할 여지가 생겼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문 전 대통령도 2017년 취임 이후 임기가 10개월밖에 남지 않은 이진성 재판관을 헌재소장으로 임명했고, 2018년 9월 유 소장이 임명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6년 임기를 보장하기 위해 윤 대통령이 '임기 연장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예상도 내놓고 있다. 헌재소장은 연임 조항이 없지만 재판관은 연임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이 재판관의 재판관직을 연임시켜 소장 임기도 늘린다는 계산이다. 법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방안이지만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 만큼 야당 반발을 넘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전효숙 재판관의 헌재소장 임기를 보장하기 위해 재판관을 사퇴시켰다가 재임명한 바 있다. 당시 야당이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전 재판관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고 노 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지명을 철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