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시민들이 범죄도시2 포스터를 살펴보고 있다./뉴스1

데뷔 50주년을 맞은 ‘영원한 큰 형님’ 주윤발(저우룬파·67)이 최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이런 말을 했다. 홍콩영화 황금기를 이끈 주윤발은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창작의 자유’에서 나온다고 언급하면서 과거와 사뭇 다른 홍콩영화 제작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홍콩영화는 주윤발을 비롯해 유덕화, 양조위, 장국영, 왕조현 등과 함께 1980년대에 이르러 황금기를 맞았다. ‘패왕별희’, ‘천녀유혼’ 등 많은 영화가 홍콩을 넘어 국내로 흘러들어왔다. 다양한 장르, 배우와 감독의 개성이 빚어졌고 ‘동양의 할리우드’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하지만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기점으로 침체 늪으로 빠졌다. 내리막이 시작된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중국 정부의 간섭도 빼놓을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시나리오도 사전에 허락을 받도록 규제했다. 영화 제작자들은 중국 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보조를 맞춰야만 했다. 주윤발 역시 홍콩영화 침체 배경에 대한 질문에 “1997년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며 “검열이 많다 보니 영화를 만들려면 여러 부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영화 만들기 힘든 시기”라고 언급했다.

한국영화 역시 정부의 사전검열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검열의 역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지속됐다. 1962년 제정된 영화법에 의해 시나리오 검열은 물론 촬영이 끝난 작품에 대한 삭제, 상영금지도 이뤄졌다. 그러나 1996년, 헌법재판소는 영화를 사전검열하는 영화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영화인들 사이에서 우리 영화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준 결정으로 평가 받는다.

배우 송강호(왼쪽)가 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주윤발 진화련 부부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뉴스1

◇주윤발이 말한 ‘한국영화의 자유’…과거엔 홍콩처럼 검열

박정희 군사정권 초기인 1962년 제정된 ‘영화법’에 따라 영화 제작자들은 상영 전에 심의기관으로부터 시나리오 검열을 받아야 했다. 1984년 ‘검열’이라는 단어가 ‘심의’로 바뀌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검열과 심의의 차이를 찾을 수도 없었다. 1987년에서야 영화 시나리오에 대한 사전심의 제도가 폐지됐지만 촬영과 편집을 모두 끝낸 영화라도 심의 없이 상영할 수 없다는 영화법 제12조 제1, 2항은 표현의 자유에 족쇄를 채웠다. 여전히 심의받지 않은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족쇄를 끊으려는 시도는 1990년대에 일어났다. 영화 ‘오! 꿈의 나라’와 ‘닫힌 교문을 열며’ 제작사가 각각 1989년과 1992년 당시 영화 심의기구인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 없이 상영한 혐의로 기소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공연법’에 따라 1976년 설립된 공연윤리위원회는 무대 공연물·영화·가요 등을 심의했던 기관이다. 두 영화는 각각 광주 민주화 운동과 전교조 가입 교사 해직 문제를 다룬 영화로 심의를 거치면 창작자의 의도가 훼손될 가능성이 컸다.

영화 기생충 포스터.

◇헌재 “영화법, 표현의 자유 침해”…창작 자유와 함께 영화산업 융성

기소된 제작사들은 재판 과정에서 영화를 사전에 심의하는 영화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며 헌법재판소 판단을 받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오! 꿈의 나라로’ 제작자는 영화법 제12조 등에 헌법 소원을 청구했고, ‘닫힌 교문을 열며’ 제작자 뜻에 따라 법원은 1993년 10월 헌법재판소에 해당 법률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사건을 접수한 헌재는 3년간의 검토 끝에 영화법 제12조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사전심의는 사전검열 행위로, 언론·출판에 대한 사전검열을 금지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이어 “공연윤리위원회가 자율적인 기관이라고 하더라도 영화에 대한 사전검열제도를 채택하고 공연법에 의해 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해 행정권이 위원회 구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했으므로 위원회는 검열기관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후에도 ‘상영등급 분류보류’라는 등급으로 영화 상영에 일부 제약이 있었지만 헌재 판단은 ‘사전 규제’라는 커다란 족쇄를 끊어내는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헌재는 2001년 ‘상영등급 분류보류’ 내용을 담은 ‘영화진흥법’ 제21조 제4항의 ‘상영등급 분류보류’ 역시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제작자들은 자신의 메시지와 의미 등을 영화로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게 됐다.

헌재 판단으로 자유의 날개를 단 한국영화는 오늘날 ‘문화강국’이라는 꽃을 피웠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2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영화 규모는 1조7064억원으로 2021년 대비 66.7% 성장했다. 세계 극장시장에서 한국 매출 규모 7위에 올랐다. 2019년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고, OTT 플랫폼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국내외 흥행을 거두는 등 한국만의 멋과 소재를 담은 ‘K콘텐츠’가 세계 무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