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 든다는 A씨. 아버지와 다른 두 형제·자매가 부친 소유 부동산 등 재산을 놓고 명절 때마다 실랑이를 벌이기 때문이다. 둘째인 A씨 아버지가 재산을 동등하게 나누자고 주장하면 첫째는 장자라는 이유로, 막내는 현재 부친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자신들의 몫이 더 많아야 한다고 맞선다. 여기에 삼 형제 부친의 혼외자 B씨도 재산 상속을 받을 근거가 있다며 명절에 집을 찾는데, 이때마다 삼 형제는 B씨는 자격이 없다며 또 다른 싸움을 벌인다.
베이비붐 세대(1946~1965년 출생) 부모 세대들이 고령층에 접어들면서 명절 때 재산 상속을 두고 가족끼리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과거 혼외관계를 통해 자녀를 낳은 경우 혼외자에게도 재산 일부를 줘야 하는지를 두고 공방이 벌어지는 실정이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 민사본안(1심) 접수 건수는 1872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6년 1096건, 2017년 1233건, 2018년 1373건, 2019년 1512건, 2020년 1447건, 2021년 1702건으로 증가했다. 2020년 1444건으로 하락했으나 2021년 257건 증가했다.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은 사전증여·유증을 포함한 전체 상속재산을 산정하고 부족한 유류분을 다른 상속인에게 청구하는 소송이다.
상속재산분할 심판 청구 건수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전국 가정법원에 접수된 상속재산 분할 심판 청구 건수는 2776건으로 2016년(1233건) 보다 약 2배 이상 증가했다. 2017년 1403건, 2018년 1701건, 2019년 1887건, 2020년 2095건, 2021년 2380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상속재산 분할 심판 청구'는 공동상속인 사이에 분할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가정법원 심판으로 상속재산을 분할하는 절차다.
◇혼외자는 상속 자격 없다?…법 살펴보니
A씨 집안처럼 혼외자 상속에 대한 갈등은 몇 년 전부터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라고 한다. 한국의 축첩(蓄妾·국가나 사회가 첩을 두는 것을 허용하는 것) 제도는 1948년 제정된 헌법에 의해 부정됐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혼외관계를 맺고 자녀를 낳는 사람들이 있었다.
A씨 아버지 형제들 주장처럼 B씨는 상속 자격이 없을까. 결론적으로 B씨 역시 삼 형제와 같은 권리를 갖는다. 법적으로 혼외자는 직계비속에 해당해 상속인이 된다. 피상속인의 유언이 없는 경우에는 법정상속이 개시되는데, 직계비속은 법정 상속인 1순위이다. 혼인 중 출생자와 혼외자를 가리지 않는다. 친부와 법적 관계가 성립됐다면 직계존속으로 다른 형제자매와 동률로 법정상속을 받는다.
법률에 따라 법원 역시 혼외자의 유류분 반환 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9단독은 2020년 혼외자 C씨가 다른 형제들에게 제기한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에서 C씨 손을 들어줬다. 피상속인인 부친은 C씨를 제외한 자녀에게 합계 33억8600만원가량의 부동산을 증여하고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 부친 사망 후 C씨는 자신의 몫을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당시 다른 형제들은 C씨가 재산형성에 기여하지 않았고, 부친을 비롯해 가족과 유대관계가 없으므로 유류분 반환 청구는 신의성실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의 유류분 부족액은 2억2573만원"이라며 "피고들은 부동산 각 지분에 관해 유류분 반환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 이전 등기 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상속재산 기여분 불만에 상속재산분할 청구…"유언으로 분쟁 예방"
비교적 공평하게 재산 상속이 이뤄지더라도 상속재산 기여분에 불만을 품고 법원을 찾는 사람도 많다. 민법은 상속인들이 공평하게 상속받을 수 있도록 법정상속분을 정하고 있는데, 이를 부당하다고 여겨 상속재판분할 청구 심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얼마 전 배우자가 사망한 D씨는 3명의 자녀와 법정상속분에 따라 재산을 상속받았다. 상속 재산에서 D씨는 3/9, 나머지 3명의 자녀는 2/9씩을 받았다. 하지만 D씨는 1963년 배우자와 결혼한 후 57년간 함께 살았고, 치매와 파킨슨병 등으로 건강이 악화한 배우자를 자녀 E씨와 함께 간병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기여분을 70%로 높여달라는 상속재판분할 청구 심판을 냈다. E씨 기여분도 20%로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머지 자녀 2명은 각각 10%로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법원은 D씨 청구를 기각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4부는 "D·E씨가 1981년부터 피상속인 사망 시까지 피상속인과 함께 생활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공동상속인의 공평을 위해 상속분을 조정할 만큼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재산 유지 또는 증가해 특별히 기여하면 상속분 산정에 고려하지만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유효한 유언으로 재산 상속 갈등을 예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민법은 유언의 종류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 ▲녹음에 의한 유언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을 인정하고 있다. 유언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더라도 법이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무효가 된다.
대법원은 2007년 "민법 제1065조 등이 유언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며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유언자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