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위대의 그린워싱 시위. /연합뉴스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화두가 되자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친환경을 표방하고 나선 가운데, 가짜 친환경으로 불리는 ‘그린워싱’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그린워싱이란 실제로는 환경보호 효과가 없거나 심지어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그린워싱에 대한 구체적인 위반 사례 등을 규정한 ‘환경 관련 표시·광고 심사지침’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해마다 증가 중인 그린워싱 위반 의심 사례에 대한 효과적 규제와 방지를 위해서다.

그러나 세계 주요국이 그린워싱 제재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서도, 국내는 대부분 행정지도 처분에 그치고 있다. 최근 3년(총 4940건) 동안 4931건이 법적 강제력이나 불이익이 없는 행정지도 처분을 받았고, 시정명령을 받은 경우는 9건에 불과했다.

◇작년 그린워싱 위반 4458건…국내선 ‘제품’만 규제 가능

공정위 지침은 친환경 표시·광고 시 표현과 방법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해 소비자를 오인시킬 우려가 없어야 한다는 ‘명확성 원칙’과 소비자 구매·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누락·은폐·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완전성 원칙’이 신설된 게 특징이다. 일부 단계에서 환경성이 개선되더라도, 상품의 생애주기 전 과정을 종합해 효과가 상쇄·감소한 경우는 환경성이 개선된 것처럼 표시·광고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사업자가 환경과 관련한 목표나 계획을 표시·광고할 때는 이행 계획과 측정 가능 기한 등을 구체화해야 하는 내용도 담았다.

생애주기별 세부 심사 지침을 개편한 것도 돋보인다. 개정안에서는 상품의 생애주기를 ①원료나 자원의 구성 ②생산 및 사용 ③폐기 및 재활용 3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별로 금지 또는 법 위반 가능성이 큰 용어와 표현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시험검사 항목 중 한 항목만 미검출된 사항을 토대로 제품에 ‘무독성’이라고 표시·광고하는 경우, 소비자는 그 제품이 모든 독성물질을 노출하거나 포함하지 않는다고 소비자가 오인할 수 있기 때문에 ‘OO 미검출 제품’이라고 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위 심사 지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현행법상 그린워싱을 규제하는 법률은 공정거래위원회 관할의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환경부 관할의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지원법’, 금융투자상품 관련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한 법률’, 생활화학제품 관련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먹는샘물 및 정수기 등 관련 ‘먹는물관리법’ 등이 있다. 모두 개별 제품의 환경성과 관련된 부당한 표시나 광고를 금지하는 규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그린워싱 규제의 대상은 제조물(제품)에만 한정돼 범위는 물론, 처벌도 솜방망이다. 실제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 환경성 표시·광고 위반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제조업자 등이 친환경 제품인 것처럼 소비자를 속여서 판매한 ‘그린워싱’ 건수는 총 4558건으로, 2020년 110건과 비교해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모두 ‘생분해 물티슈’ ‘무독성 목욕완구’ 등 제품 광고에만 한정됐다.

그래픽=이은현

◇미국·영국·EU 선제적 그린워싱 입법…처벌도 강화

법조계에서는 외국처럼 국내에서도 구체적이고 명확한 친환경 성과를 증명할 것을 기업에 요구하고, 규제의 대상을 기업의 서비스 제공 과정 홍보와 사업 홍보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과 영국 등 전세계는 이미 그린워싱을 규제하는 입법이 늘고 있고, 당국의 규제도 강화하고 있다.

영국 경쟁당국인 CMA는 2021년 그린 클레임코드(Green Claims Code)를 제정한 이후, 2022년에는 업종별로 고객을 오인하게 하는 부당한 광고에 대한 조사를 개시하고 그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그린 클레임코드는 ‘모든 주장이 근거로 입증될 것’을 친환경 광고를 위한 요건 중 하나로 들고 있다. 최근 영국 광고표준위원회(ASA)는 석유기업인 쉘 에너지(Shell Energy)의 대부분 기업활동이 석유 및 가스투자임에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 및 저탄소제품 관련 광고를 강조해 소비자를 오인한다는 이유로 위법한 광고에 해당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유럽연합(EU)은 현재 환경성 관련 광고에 대한 별도의 규제가 없어 일반적인 광고 규제를 적용받고 있으나, 지난 5월 EU 의회에서 그린 클레임지침을 채택하는 결의가 이뤄져 회원국에 의한 입법을 기다리고 있다. 해당 지침은 친환경 광고를 하려는 기업은 전과정평가를 통해 친환경성을 입증해야 하고, 독립적인 제3자 기관으로부터 과학적 근거를 검증받아야 한다.

프랑스는 2021년 세계 최초로 그린워싱 벌금을 법제화했다. 기업의 제품·광고 등이 그린워싱으로 적발되면 허위 홍보 비용의 80%까지 벌금으로 부과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호주증권투자위원회(ASIC)는 지난해 10월 에너지 기업 ‘틀루에너지’에 그린워싱을 이유로 벌금 5만3280호주달러를 부과했다. 틀루에너지는 아프리카 보츠와나 등에서 에너지 개발과 전력 공급 사업을 하면서 탄소중립적인 전기를 생산한다고 홍보한 점이 문제가 됐다.

미국 경쟁당국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해 유통 체인 월마트의 ‘허위 친환경’ 활동을 적발해 그린워싱 사건으로는 사상 최고 액수 벌금인 300만달러를 부과했다. 월마트는 합성 레이온으로 만든 침대 시트·베개·욕실 매트를 독성 없고 깨끗한 ‘친환경 대나무’로 만들었다고 허위 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FTC는 월마트 단속을 계기로 2012년에 마지막으로 개정된 그린 가이드(Green Guides) 재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해외에서는 소비자들이 그린워싱 기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미국 델타항공은 ‘세계 최초의 탄소 중립 항공사’라는 표현을 써 광고를 하다가 지난 5월 소비자에게 소송을 당했다. 원고 측은 “델타가 탄소 배출을 줄인다는 이미지를 내걸며 항공권 가격을 올리는 바람에 소비자 권익을 침해당했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