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태평양의 국제규제분쟁연구소장을 맡게 된 한창완 변호사가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태평양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우리 정부가 잇달아 국제중재 취소소송에 맞닥뜨리고 있다. 미국계 헤지펀드 운용사 엘리엇과의 중재판정에 불복한 데 이어, 사모펀드(PEF) 론스타와의 2차전까지 준비하고 있다.

국제중재는 이제 더 이상 대중에 낯선 개념이 아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국제투자분쟁(ISDS)으로 불리는 이 제도는 해외 투자자가 어떤 국가의 법령이나 정책 때문에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그 나라 정부를 상대로 제기하는 분쟁 해결 절차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태평양 본사에서 한창완 변호사를 만났다. 한 변호사는 지난 5년 간 법무부 국제분쟁대응과장으로 근무하다 올해 4월 친정인 태평양으로 복귀했다. 우리 정부와 론스타, 엘리엇, 메이슨, 그리고 쉰들러의 ISDS 실무를 총괄한 인물이다.

우리 정부가 엮인 주요 ISDS를 직접 진행한 경험자로서, 한 변호사는 론스타 같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익시드) 사건과 엘리엇 같은 국제상사중재모델법(UNCITRAL·운시트랄) 사건의 차이를 상세히 설명하고 국제중재 사건의 새로운 트렌드를 소개했다. 태평양의 국제규제분쟁연구소 설립을 앞두고 있는 만큼 연구소의 비전과 중장기적 목표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도 가졌다.

-5년 간 법무부에서 국제 분쟁 대응 실무를 총괄했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처음 내가 법무부에 입사해 국제법무과장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는 론스타 사건 밖에 없었는데, 그 이후 엘리엇, 메이슨, 쉰들러 등 일련의 ISDS 사건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대응할 인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는 새로운 과(국제분쟁대응과) 신설 및 인력 충원이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과에 이어 이번에는 국제 법무 전담 국까지 신설된다(8일 법무부 국제법무국이 새로 출범한다). 나는 국 신설 준비 초기 단계까지 맡다가 임기가 종료돼 법무부를 나오게 됐다.”

-법무부 국제법무국의 출범에는 어떤 의의가 있나.

“현재는 법무부에 국제 법무를 전담하는 실·국이 없어 국제법이나 분쟁에 관심 있는 사람이 승진할 수 있는 직급에 한계가 존재한다. 이번에 국제법무국이 새로 만들어짐에 따라, 원한다면 해당 업무를 계속 하며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정부가 최근 엘리엇을 상대로 국제중재 취소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론스타와의 취소소송도 준비 중이지 않나. 엘리엇 사건은 운시트랄에 따라 진행됐고 론스타 건은 익시드 사건인데, 둘은 실질적으로 어떻게 다른 건지 궁금하다.

“먼저 운시트랄은 중재 기관이 없어 중재지를 정해서 일반 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엘리엇의 경우 영국 런던이 중재지다. 반면 익시드는 중재판정을 내린 기관에 항소해야 한다.

익시드 사건의 경우 기존 중재판정을 존중하기 때문에 익시드 협약에서 규정하는 취소 사유가 있을 때만 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반면, 운시트랄은 특정 중재지의 법원이 관할 문제를 새로 판단한다. 취소 소송을 맡은 법원은 중재판정 결과를 존중해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이 사건이 중재판정부의 재판 대상이 되는지 등을 처음부터 다시 따져본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익시드 사건의 취소소송이 운시트랄 사건 취소소송보다 더 어려운 것 아닌가.

“꼭 그렇지는 않다. 다만 엘리엇 사건처럼 중재지가 영국이라면, 운시트랄 사건이 취소소송을 진행할 여지가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중재지마다 법원이 인정하는 취소 사유가 제각기 다른데, 그중 영국은 관할권 문제를 법에 폭넓게 명시하고 있어 취소소송을 걸 수 있는 사유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편이다. 즉,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할 수 있는 주장이 더 많다는 얘기다. 반면 프랑스 같은 나라는 법원이 인정하는 취소 사유의 범위가 좁은 편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한창완 변호사를 비롯한 국제규제 분쟁연구소 변호사들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중재판정의 효력은 즉시 발생하나.

“익시드 사건은 중재판정이 나오면 우리나라 법원이 따로 승인하지 않아도 바로 집행이 가능하다. 우리가 익시드 협약을 맺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반면 운시트랄로 진행한 사건은 중재판정 내용대로 집행하려면 우리 법원이 승인 집행 판결을 해줘야 한다. 그런 절차적 차이가 있다.”

-그렇게 들으니 정부나 기업 입장에서 운시트랄을 택할 만한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자동으로 집행되지도 않고, 번거롭게 중재지도 따로 정해야 하니 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따르면, 투자자는 익시드나 운시트랄 중 한 가지를 택할 수 있게 돼있다. 그런데 엘리엇 사건도 그렇고 메이슨, 쉰들러 사건 모두 운시트랄을 선택했다. 익시드를 고를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이 같은 선택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운시트랄의 경우 투자협정만 충족하면 되지만, 익시드는 투자협정뿐 아니라 익시드 협약까지 충족해야만 한다.

또 익시드가 투자자에 불리하다는 인식도 이런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익시드는 세계은행 산하 기구로서 중립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회원 ‘국가’들로 구성됐기 때문에 특정국 정부와 기업이 분쟁을 벌일 때 정부가 유리하다고 보는 시각이 있더라. 나는 개인적으로 틀린 시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경우 운시트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운시트랄이야말로 중립성을 지키기 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중재지를 어느 나라로 고르냐에 따라 취소소송 결과가 달라질 여지가 크지 않나.

“그래서 영국의 선호도가 높은 것이다. 영국 법원은 수십 년 동안 중립적인 판결을 해왔다는 트랙레코드가 있어 중재지로서 가장 인기가 많다. 싱가포르의 선호도가 높은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미국은 어떤가. 별로 선호하지 않는 중재지인가.

“전통적으로 영국이 강했는데 요즘은 뉴욕을 중재지로 고르는 경우가 조금씩 늘고 있다. 이 경우 취소소송은 뉴욕연방법원이 맡는다.”

-요즘 국제중재 사건의 트렌드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실무적으로는 ‘하이브리드’가 새로운 키워드로 떠올랐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모두 대면으로 만나서 중재를 했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화상으로 중재하는 게 보편화됐다.

또 ISDS를 할 때 정부의 정당한 정책권 행사를 과거보다 더 인정해주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19 등 공중 보건, 환경 보호 등 공공의 목적과 관련된 긴급한 현안이 있을 때는 그런 정책권 행사가 좀 더 존중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투자자가 정부의 권한 행사 때문에 어느 정도 손해를 봤다고 하더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판정이 최근 여러 건 나왔다.”

-중재지로서 한국의 매력은 어떤가. 한국의 지정학적 특징이 중재지로서의 선호도에 영향을 주진 않는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하면 중재지로서 우리나라의 매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얘기는 있다. 양측이 제3의 객관적인 중재지를 찾아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중국과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미국과는 동맹국이니 중재지로서 경쟁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중재지를 정할 때는 정치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고려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다.

또 현재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영국, 싱가포르, 홍콩 등은 모두 영미법계 국가이며 대륙법 국가는 얼마 없어, 우리가 틈새시장에서 치고 나갈 만한 잠재력이 크다. 국제중재 시장에서 우리의 입지를 더 높이려면 대한상사중재원의 국제중재 역량이 지금보다 강화돼야 한다.”

-아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중재지는 단연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어떻게 그 위치에 갈 수 있었던 건가.

“우선 홍콩이 중국 이슈 때문에 인기를 잃기도 했고, 싱가포르는 시설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좋은 수준이다. 외부에 개방도 많이 한다.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는 자국민이 아닌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재인을 모셔다 대표를 맡긴다. 상사중재법원의 판사를 외국인이 맡는 경우도 있다. 싱가포르가 중재지로서 중립적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더 그러는 경향이 있다.”

-태평양의 국제규제분쟁연구소가 발족을 앞두고 있다. 연구소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총 12명으로 구성된다. 박사급 연구원도 추가로 채용할 계획이다. 법무부에서 5년 간 근무하며 한국어로 쓰인 국제분쟁 관련 자료가 별로 없다는 게 늘 아쉬웠다. 중재를 잘 하려면 비교법 연구를 많이 해야 하는데 관련 서적도 별로 없다. 욕심을 좀 내보자면, 1년에 한 권이라도 국제분쟁 실무에 대한 책을 펴내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연구소의 중장기적 목표가 있다면.

“학부생이나 대학원생들이 연구소에 소속돼 실무 경험을 함으로써, 향후 국제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장기적인 프로젝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