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가공식품 코너 모습. /뉴스1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개선 등이 담긴 이른바 ‘킬러규제’를 철폐하라고 지시한 가운데, 정부·여당과 야당이 현저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당정은 변화한 유통 환경을 반영해 관련 규제를 손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법제처 해석과 대법원,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근거로 들며 전통시장과 노동자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맞서고 있는 양상이다.

◇현저한 당정 VS 야당 입장 차…12년 전 법제처 해석, 아직도 유효한가

12일 법조계 및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킬러규제 철폐를 지시한 다음 날 관계부처가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TF는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등 규제를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6일 “민간 투자를 가로막는 킬러규제를 하루빨리 걷어내야 한다”며 동조했다.

하지만 TF가 발족된 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현안질의에서 여야가 팽팽하게 대립했다. 현재 대형마트는 의무휴업일에 온라인 배송을 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여당은 이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보는 반면 야당은 현상 유지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산업부가 현재 대형마트 3사의 의무휴업일 온라인 배송을 추진하지만, 과거 ‘(의무휴업일엔) 온라인 배송도 해선 안된다’는 법제처의 해석이 있었다”며 “이는 법제처가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상생을 위해 제한을 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유통산업발전법에는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일에 온라인 배송을 해도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조항이 없다. 이 때문에 이 의원의 말처럼 법제처의 해석에 의존해 온라인 배송을 관행적으로 금지해온 것이다. 실제로 법제처는 지난 2012년 인터넷 쇼핑몰을 함께 운영하는 대규모 점포가 의무휴업일에 배송하면 “의무휴업 명령을 위반한 것”이라는 판단을 내놓은 바 있다. 대규모 점포를 등록한 자가 인터넷 쇼핑몰로 물건을 배송하면 점포를 열고 영업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게 돼, 의무휴업 제도에 반한다는 것이다.

당정은 과거 법제처 판단을 지금까지도 참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날 산자위 현안질의에서 이 장관은 이 의원에게 “법제처의 해석은 12년 전에 나온 것”이라며 “그동안 유통환경이나 소비자의 니즈가 바뀌었고, 온라인 배송이 늘어나는 등 변화한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도 “대·중소 유통 상생협력 같은 경우는 산자부, 중기부, 국무조정실이 모두 진일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온라인 배송 허용에 찬성 입장을 보였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뉴스1

◇野, 대법·헌재 판례 근거로 규제 지속 주장하지만…“변한 시대상 반영해야”

야당이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근거는 법제처의 해석 만이 아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지난 2015년 11월 이마트 등 대형마트 6개사가 “영업시간 제한 등 처분을 취소하라”며 서울 성동구와 동대문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취지로 파기환송했으며, “규제로 달성하려는 공익은 중대할 뿐만 아니라 보호할 필요도 큰 반면, 대형마트 영업의 자유나 소비자 선택권 등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임대업자의 이해관계나 소비자 선택권을 일부 제한하긴 하지만,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과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 중·소유통업과 상생 발전 등의 가치가 더 크다는 내용이다.

2018년 헌법재판소의 판례도 있다. 헌재는 유통산업발전법을 재판관 8대 1 의견으로 합헌 결정하며 “강한 자본력과 시장지배력을 가진 소수 대형유통업체 등의 독과점에 의한 유통 거래질서 왜곡을 방지하는 등 건전한 질서를 확립한다”고 판시했다. 또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경쟁을 방임하면, 결국 전통시장 등이 위축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처럼 유통산업발전법이 적법하다는 사법부와 헌재의 판단이 있었던 만큼,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가 계속돼야 한다는 게 ‘규제 찬성파’의 주장이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유통 환경이 변화된 점을 고려하면 과거 판례들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5년 대법원 판례와 2018년 헌재 판례 모두 과거의 시대상을 담고 있어 현재 규제 반대의 근거로 보기엔 부족하다는 취지다. 그동안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비대면 배달이 활성화됐고, 새벽 배송 업체 등 새로운 경쟁자들이 부상하는 등 유통 시장의 지형도는 많이 바뀐 상황이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의 한 부장판사는 “판례는 시대 상황을 반영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변경돼 왔다”며 “(유통산업발전법 관련 사항들이) 법적 분쟁으로 비화된다면 현 상황에 비춰 다시 심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전합은 지난 5월 제사 주재자는 장남 또는 장손자가 우선한다는 2008년 판례를, 최연장자가 우선한다고 15년 만에 바꾼 바 있다.

또 2018년 헌재 판례에서 나온 ‘반대의견’이 대형마트 규제 폐지의 근거로 언급된다. 당시 조용호 재판관은 반대의견에서 “대형마트 등에 대한 규제 이득은 의도와 달리 편의점·복합쇼핑몰·온라인쇼핑 등이 보고 있다”며 “대형마트 등의 운영 효율성 저하에 따른 비용 증가가 제품 판매가에 반영돼 물가를 상승시킨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소비자 선택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세수 감소까지 초래하는 중대한 공익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 상황을 반영한 개정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는 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이 전통시장이나 소상공인과의 경쟁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다양한 업체들이 등장하며 규모가 커졌고, 온라인 경쟁도 심해진 상황이어서 과거와 명백히 다르다”고 말했다. 2015년·2018년 상황과 2023년 온라인 시장 상황이 현격히 달라졌기 때문에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