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잉크젯 프린트 기술 관련한 엔젯 특허의 대표 도면, 오른쪽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찾은 잉크젯 프린트 기술 선행발명. /김앤장 제공

특허는 기업에 있어 '황금알'이자 '독약'이다. 특허권을 가진 쪽에서는 막대한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기업은 남의 특허를 실수로라도 무단 이용할 경우 천문학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기업들이 서로의 특허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끝 없이 '전쟁'을 치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허 전쟁은 특히 중소기업에게 더 큰 타격이 된다. 유력 대기업들은 '멀티 벤더(multi vendor·같은 부품을 놓고 2~3개 업체의 주문량을 수시로 조절해 품질 및 가격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그중 특허 분쟁에 휘말리는 협력사가 나오면 계약을 끊어버린다. 때문에 을(乙)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 협력사는 특허 전쟁에 늘 철저히 대비해야 하며, 소송이 걸리면 치열하게 싸워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

삼성전자의 협력사인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 참엔지니어링과 엔젯 간 특허 분쟁도 생사가 걸린 소송전이었다. 엔젯이 특허권을 주장하자 참엔지니어링이 이를 무효화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참엔지니어링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결국 엔젯이 주장하는 특허가 독점권을 받을 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법원 판단을 이끌어냈다.

◇경고장 날린 엔젯 "우리 특허...침해하지 말라"

사건의 발단은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엔젯이 참엔지니어링에 특허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취지의 경고장을 보낸 것이다. 경고장은 협상 전에 보내는 '선전포고'로 통용된다.

엔젯은 정전기력을 이용해 원하는 곳에 인쇄할 수 있는 3차원 형상 표면 인쇄장치를 만들었는데, 이 장치로 높낮이가 있는 판의 불량 패턴을 찾아내고 오류를 없애주는 기술에 대해 특허권을 주장했다. 참엔지니어링은 이 같은 잉크젯 리페어 기술로 장비를 제작해 원청 업체에 납품하고 있었다. 결국 법원에 특허무효 심판을 청구했다.

참엔지니어링은 엔젯이 등록한 특허가 일반적인 기술자라면 누구나 쉽게 발명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특허심판원은 참엔지니어링 측 청구를 기각했다. 엔젯의 발명에 진보성이 있기 때문에 특허로서의 가치가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특허법원서 등판한 김앤장 "모두 공개된 기술"

결국 참엔지니어링이 특허심판원의 결정에 불복하며 '특허 전쟁'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사건은 2심 격인 특허법원으로 넘어갔다.

엔젯 측은 해당 기술을 쉽게 발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공개됐던 잉크젯 방식(선행발명)보다 프린팅이 정교하다는 것이다. 기존 잉크젯 방식에선 노즐과 인쇄물의 거리만 조정할 수 있었지만, 자신들이 특허를 낸 기술로는 3차원 표면에서 스테이지를 통해 전기장의 분포까지 제어할 수 있고 굴곡이 있는 표면이라도 전기장을 이용해 액적(작은 물방울)을 원하는 곳에 떨어뜨리는 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특허법원 재판 단계에서 사건을 수임한 김앤장은 엔젯 측이 주장하는 특허가 "통상의 기술(주지관용의 기술)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허 명세서에 관련 효과가 기재되지 않았으므로 특허가 될 만한 근거가 없다고도 주장했다.

김봉섭 김앤장 변리사는 "엔젯 측 특허 명세서에는 접지(전기회로 또는 전기 장비의 한 부분을 이용해 표면과 연결하는 것)에 관한 설명이 없었다"며 "엔젯 측은 대중에 전혀 공개하지 않은 기술을 사후적으로 자신의 특허발명이라고 주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엔젯 측은 이외에도 선행발명 기술은 인쇄 대상이 금속성 물질로 한정되지만 자신들의 기술은 비금속 대상물에도 인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앤장은 "이런 해석 자체가 틀렸다"고 반박했다.

김성은 김앤장 변리사는 "선행발명은 '금속막을 형성한 식기' 외에 액세서리 등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적시돼 있었다"며 엔젯이 해석을 잘못했다고 말했다.

김앤장은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와 한국특허청, 특허법원, 미국특허청 등에 등록된 특허들을 분석했다. '스테이지에 접지하는 기술', '전압으로 액적의 속도를 조정하는 기술', '2차원 인쇄 정보를 3차원으로 변환하는 기술' 등이었다.

박민정 김앤장 변호사는 "선행 문헌을 찾아낼 인력이 300여명에 달했기에 가능했던 결과"라고 전했다.

왼쪽부터 박민정 변호사, 김봉섭 변리사, 김성은 변리사. /김앤장 제공

◇2심서 모두 뒤집힌 '乙의 전쟁'... 대법서 확정

특허법원 1부(문주형 부장판사)는 결국 지난 1월 참엔지니어링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엔젯 측에서 주장하는 특허가 잉크젯 프린트 분야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기술이기 때문에 선행발명 기술과 실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판결했다. 김앤장 측 주장이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특허법원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엔젯 측은 자신들의 특허를 정정하겠다는 소송도 냈다. 하지만 이 사건 또한 선행발명에 의해 진보성이 부정된다는 취지로 기각 결정(심결)을 받았다. 이후 두 사건은 병합됐다.

재판부는 "엔젯 측 특허는 스테이지에 전기적으로 접지하는 구성의 결합으로부터 예측되는 결과를 넘는 효과라고 보기 어렵다"며 "선행발명의 효과와 별다른 차이도 없어 보이고 새로운 기술적 방법을 추가했다는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어 "엔젯의 특허 명세서에는 기술적 의의만 기재돼 있을 뿐, 정밀하게 인쇄할 수 있다는 기재는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3년에 걸친 참엔지니어링과 엔젯의 특허 전쟁은 지난 1일 마무리됐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가 심리불속행 기각을 결정한 것이다. 하급심의 판단이 옳다는 판결이었다.

◇"치열한 을의 전쟁에서도 '시장 왜곡' 막아야"

김봉섭 변리사는 "특허는 특허성 있는 기술에 대해 독점적인 권리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좋은 제도"라면서도 "하지만 특허성이 없는 기술에 특허가 생겼을 때 시장을 왜곡하는 결과가 도출되는데, 그런 경우 공정한 경쟁을 막는 경우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허성 없는 기술에 기반해 기술의 공정성을 저해하는 것을 해소한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김성은 변리사는 "특허법에는 과학 발전의 측면도 담겨 있다"며 "만약 공개된 기술에 가치가 없다면, 독점권을 주는 것이 기술 발전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