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트리니티 제공

#A씨는 아내 B씨와 두 딸을 둔 가장이었다.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꾸렸던 그에게 어느 날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다. 가족을 두고 C와의 외도를 시작했다. 연인 C씨와 아들까지 낳고 동거했던 A씨가 2017년 세상을 떠나자, 이른바 ‘본처와 내연녀’ 간 소송전이 시작됐다. 양측이 다툰 대상은 A씨의 유해였다. C씨가 A씨 시신을 화장해 추모공원에 봉안했는데, B씨와 딸들이 이를 인도해 달라고 소를 제기한 것이다. C씨는 ‘장남’인 자신의 아들이 법적인 제사주재자라며 유해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맞섰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사연은 지난달 11일 결론이 났다. 이 문제는 단순히 A씨 가족 간 송사에 그치지 않았다. 대법원은 본처 B씨의 손을 들어주며 “장남이 아니어도 제사주재자가 될 수 있다”는 ‘세기의 판결’을 내렸다. 제사주재자를 정하는 데 있어 아들과 딸의 차별을 인정하지 않은 최초의 판례다.

제사주재자란 ‘제사용 재산을 승계받아 제사를 주재하기에 가장 적합한 상속인’을 뜻한다. 2005년 3월 31일 가족법 개정으로 호주제가 폐지되고 그에 따른 호주상속제도 사라지자, ‘호주’를 대체하는 법률 용어가 됐다. 실제로 제사를 지내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제사주재자가 민법 제1008조의3에 따라 제사용 재산인 분묘, 분묘가 위치한 1정보(3000평)의 임야, 600평 이내의 묘토인 농지, 그리고 족보를 단독으로 상속 받을 자격이 생긴다는 게 중요하다. 선산 처럼 종중에서 소유한 땅에 무덤을 썼을 때 해당되는 얘기다.

법무법인 트리니티의 김상훈(사법연수원 33기) 대표변호사는 이 사건 상고심부터 합류해 원고를 대리했다. 1, 2심 모두 원고 패소로 결론 난 사건에 구원투수로 합류해 무료로 변론했다. 원심에서 원고 측 대리를 맡았던 한국가정법률상담소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김 변호사는 2015년 ‘제사주재자의 결정방법에 관한 법제사적 고찰’을 주제로 법학과 박사과정 논문을 쓴 이 분야 전문가다.

지난 1일, 서울 삼성동 법무법인 트리니티 사무실에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이번 소송의 의의와 쟁점, 승소 전략 등에 대해 심도 있는 얘기를 나눴다.

-굉장한 화제가 된 판결이었는데.

“사실상 600년 만의 판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조선 초부터 최근까지 제사를 남성이 지낸다는 원칙은 변한 적이 없지 않나. 장남만 가능하냐, 차남도 되냐, 혹은 혼외자인 남성도 가능하냐만 쟁점이 됐을 뿐이다.

200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종손, 즉 적장자를 제사주재자라고 규정했던 적서 차별을 법적으로 철폐했다면, 이번 판결은 아들과 딸의 차별을 없앴다. 남녀를 불문하고 가장 나이 많은 자녀가 1순위 제사주재자가 된다는 게 이번 대법원 판결의 핵심이다.”

-무료로 변론한 이유는.

“원심에서 원고 측을 대리한 가정법률상담소가 무료로 변론했기 때문에 상담소의 의뢰를 받은 나도 그렇게 했다. 내 관심 분야이며 굉장히 의미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상고이유서 내용이 내 박사논문의 결론과 거의 비슷하다.”

-1, 2심에서 모두 원고 패소한 사건이다. 상고심에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뒀나.

“시대 상황의 변화가 포인트였다. 국민들의 법 감정 변화, 제사에 관한 인식의 변화 말이다. 제사용 재산에 관한 민법 규정 자체가 다분히 유교식 제사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 규정이 처음 생겼을 때와 지금은 시대가 너무 다르다. 그러니 기존 법리와는 다른 새로운 법리를 세워야 한다는 게 우리의 주장이었다.”

-실제 대법원 판결도 상고이유서 내용과 일치했나.

“결과적으론 우리(원고 측) 주장대로 됐지만, 엄밀히 말해 그 결론에 도달한 논리적 과정엔 차이가 있다. 상고이유서 내용은 이랬다. 제사주재자는 1차적으로 상속인들 간 협의로 정하되, 협의가 안 되면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체적 타당성을 따져서 법원이 결정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여러 사정’에는 나이, 피상속인(망자)과의 관계, 생활 관계가 포함될 수 있다. 미국에 사는 자녀가 어떻게 제사를 지내겠나. 제사를 지내고자 하는 의지도 사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종교도 고려할 요소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우리가 열거한 여러 사정 가운데 ‘나이’를 콕 집어 연장자가 1순위 제사주재자라고 못박은 것이다.”

-대법원은 왜 그런 결론을 냈다고 보는지.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해서 그때그때 법원이 정하도록 두면 법적 안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매번 소송으로 제사주재자를 정해야 할테니.”

-제사주재자를 정하는 게 어떤 측면에서 중요한가.

“법적 제사주재자가 단독으로 상속하는 재산이 있다. 먼저 분묘가 있다. 그리고 분묘가 속한 1정보(3000평) 이내의 임야(산), 600평 이내의 묘토(농지)다. 제사를 지내는 데 쓰이는 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논밭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종중 선산의 소유자를 여럿으로 나누면 소유권이 복잡해지지 않나. 그래서 한 사람의 제사주재자를 정해 이 재산을 몰아주는 것이다.

또 분묘 굴이(掘移·무덤을 파서 옮기는 것)를 할 때 소송 당사자를 정하려면 제사주재자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묘가 있는 산이 수용돼 개발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려면 묘를 파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을 경우 임야의 소유자가 산소 임자(분묘 소유자)에게 굴이를 하라고 소송을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때 제사주재자가 피고가 된다. 즉, 제사주재자를 특정하지 못하면 소송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임야 개발에 따른 재산상의 이익도 중요하겠다.

“임야와 묘토가 ‘쓸모 있는 땅’으로 바뀌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선산이 개발돼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엄청난 보상금이 나온 사례가 많다. 그 보상금을 제사주재자가 모두 갖게 되니,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지난해 9월, 전북 전주 효자공원 묘지에서 아이들과 함께 조상 묘소를 찾은 한 시민이 절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뉴스1

-족보도 제사용 재산인가.

“그렇다. 그런데 사실 아직까지 우리 관념으로는 딸이 족보를 가져간다는 게 좀 이상할 수 있다. 만약 이 소송이 유골 인도 소송이 아니라 족보 인도 소송이었어도 같은 결론이 나왔을까 싶다.”

-정확히 ‘유골 인도 소송’을 해야만 나머지 제사용 재산의 소유권도 같이 결정되는 건가? 아니면 묘토나 임야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해도 되는 건지.

“어차피 같은 제사용 재산이기 때문에 묘토나 임야에 대해서도 소송을 걸 수 있다. 유골은 민법상 제사용 재산으로 명시되지 않았지만, 망자의 유해가 분묘 안에 있으니 재산이라고 본다.”

-유골을 재산으로 보는 게 타당한 건가.

“유골의 재산성을 따지자면 굉장히 철학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대법원 판례에선 유골이 분묘와 분리되지 않는다고 봤지만 그건 유교적 사상에 기반한다. 화장을 해서 납골당에 안치하는 경우엔 분묘와 유골이 분리되지 않나.

또 유골을 제사용 재산으로 보니 망자가 자기 몸을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한다는 딜레마도 발생한다. 제사용 재산에 포함되는 것들은 모두 제사주재자가 단독 상속한다. 망자가 맘대로 처분할 수 없다.

실제로 제사용 재산이 아닌 다른 재산은 유언법정주의에 의거해 망자의 유언에 따라 처분할 의무가 있지만, 자기 유해의 처분 방식에 대해선 유언으로 정하지 못한다. ‘나 죽으면 화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겨도, 이를 따르는 건 법적 의무가 아닌 도덕적 의무에 불과하다. 유골을 제사용 재산에서 배제해야 내 몸을 내가 처분할 권리도 생긴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유골에 관한 김선수 대법관의 보충의견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해가 ‘주검을 태우고 남은 뼛가루’ 형태로 유골함에 보관돼있으니, 원고와 피고들이 유해를 절반씩 나눠 각각 관리하며 추모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모든 사건에 있어 적합한 보충의견은 아니다. 유골이 뼛가루가 아닌 뼈의 형태로 남아있으면 어떻게 하겠나.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나눌 수도 없고. 그런데 김선수 대법관님은 유골을 재산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의견을 내신 것 같다. 제사용 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이 나눠서 소유할 수 있다고 보신 게 아닐까.”

-유골이 제사용 재산이 아니라는 전제에 있어선 김 대법관과 김 변호사의 의견이 같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유골을 나눠 가질 수 있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나의 대안을 제시해보자면, 유골을 동산(부동산 이외의 물건)과 같은 개념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그림은 일반 동산이기 때문에 공동 상속이 가능한데, 이걸 여러 명이 쪼개서 하나씩 나눠 갖진 않는다. 공동 상속한 일반 동산은 누가 갖고 있을지 서로 협의해 정한다. 협의가 안 되면 가정법원이 정해준다. 유골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대법원은 제사주재자의 자격 중 ‘나이’만 인정했다. 원고 측에서 주장한 ‘여러 사정’은 모두 고려하지 않았는데, 그 나머지 여러 사정들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다고 봐야 할까.

“유보했다기보다는 여러 사정을 ‘특별한 사정’의 요소로 판단한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자세히 보면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조리에 부합한다”고 명시돼있다.

다시 말해,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맏딸이지만 해외에 거주해 제사를 못 지내는 경우, 망자와 생전에 수십 년 간 연락 한 번 하지 않다 제사주재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적서 문제는 변수가 되지 않나. 본처 자녀의 권리가 우선시되는 게 상식 아닌지.

“이미 2008년 대법원 판례에서 적서 차별을 철폐했다. 적자와 서자를 나누지 않는 건 이미 강물의 흐름과 같은 변화다. 차별하는 게 옳다는 쪽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