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가옥'을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 /서울한옥포털 웹진 '2020 북촌의 날 - 푸른 가옥의 시선: 이준구 가옥 탐방' 수록 사진

북촌 전망대에 올라 북동 방향을 내려다 보면 유독 눈길을 잡아끄는 집 한 채가 있다. 고색창연한 한옥 기와가 빼곡히 들어선 풍경 너머로 채도 높은 민트색 지붕을 얹은 양옥이 풍채 좋게 우뚝 서있다. 역설적이게도 북촌 한옥마을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건물’로 꼽는 ‘이준구 가옥’이다.

이준구 가옥은 우리나라 근현대 건축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산이다. 이경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2020 북촌의 날’ 웹진에 이준구 가옥이 1920년대~1940년대 초에 지어진 이른바 ‘문화주택(文化住宅)’에 대한 열풍 속에서 탄생했다고 썼다. 일본인들과 조선인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한 주거 문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사료다. 서울시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해 1991년 문화재(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했다.

그렇게 85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이준구 가옥이 세금 때문에 송사에 휘말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현재 가옥의 소유권은 고(故) 이준구 선생의 아들에게 있는데, 종로구가 건축물 가액이 9000만원을 초과한다며 ‘고급주택’으로 규정해 중과세를 부과한 것이다. 선뜻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 연로한 어머니에게서 직접 집을 양수한 아들은 취득세 1억9000만원을 내고도 추가로 5억6300만원을 더 납부해야 했다.

이준구 가옥이 고급주택이라는 점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씨는 서울시에 과세전적부심사청구를 했지만 불채택됐고, 결국 사건은 조세심판원에 청구됐다. 쟁점은 건축물 가액을 1억153만원으로 본 종로구청의 결정이 과연 타당했는지 여부다.

1941년작 영화 '반도의 봄' 속 이준구 가옥과 가회동 31번지 전경(왼쪽). 오늘날의 이준구 가옥과 가회동 31번지(오른쪽). /서울한옥포털 웹진 '2020 북촌의 날 - 푸른 가옥의 시선: 이준구 가옥 탐방' 수록 사진

◇“가액 9000만원 넘는 고급주택이니 취득세 5억6300만원 더 내라”

이씨가 아버지의 가옥을 사들인 것은 지난 2020년 12월의 일이다. 부친의 별세 후 홀로 남은 어머니가 집을 더 이상 관리·보호하기 힘든 상황에 놓이자, 일부는 증여를 받고 나머지를 40억원에 취득했다. 문화재보호법 및 서울시 문화재 보호 조례에 따르면 지정문화재의 소유자는 그 문화재에 대해 온전한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관리·보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형벌까지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제3자에게 매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5억6300만원의 취득세를 더 내라는 종로구청장의 통지가 날아왔다. 이미 납부한 취득세까지 더하면 총 7억5000여만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현행 지방세법은 도박장, 유흥주점 영업장, 특수목욕장, 회원제 골프장, 그리고 고급주택 등을 사치성 재산으로 보고 취득세와 재산세를 중과한다. 고급주택을 매수해 취득할 경우 일반세율 3.5%에 추가로 8.8%를 가산해 12.3%의 세율이 적용된다.

2020년 말 개정 전 지방세법에 따르면, 단독주택이 ▲건축물 연면적이 331㎡를 초과하고 ▲건축물 가액이 9000만원을 초과하고 ▲건축물과 부속 토지의 합산 가액이 6억원을 초과할 경우 고급주택에 해당됐다(이후 개정법에서는 ‘9000만원 초과’ 요건이 삭제된 상태다). 조사청이 산정한 이준구 가옥의 건축물 가액은 9000만원을 초과하는 1억153만3320원이었다.

이준구 가옥이 고급주택이 된 경위는 아래와 같다. 이 건물이 신축이라고 가정할 때 제곱미터(㎡) 당 기준액은 73만원이다. 여기에 용도지수를 곱하는데, 조사청은 ‘일반 단독주택’으로 보고 100%를 적용했다. 잔가율은 건물의 가치가 건축 당시의 가치에 비해 얼마나 남아있는지 계산하기 위해 적용하는 비율이다. 즉, 건물의 감가상각을 계산하는 기준이다. 이준구 가옥의 경우 ‘지은 지 40년이 넘은 석조건물’이기 때문에 20%의 잔가율이 적용됐다.

총 건축물 가액은 ㎡당 기준액에 가감산율(시가표준액을 결정할 때 토지의 구체적 특성을 고려해 더하거나 빼고 계산하는 비율) 100%를 곱하고, 다시 면적을 곱한 값이다. 가감산율은 시장이나 도지사가 조정할 수 있는데 조사청은 100%를 적용했다.

이준구 가옥의 건축물 가액 계산식. /법무법인 율촌 제공

◇가감산율·용도지수·잔가율이 관건…이씨 측 “문화재 공익성 인정해야”

이씨 측과 종로구는 위 고급주택 계산식 중 몇개 부분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씨 측은 먼저 가감산율이 하향 조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씨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율촌의 이강민 변호사는 “문화재로 지정된 주택은 소유자가 완전한 소유권을 행사하는 다른 건축물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시가표준액을 산출해선 안된다”며 “쟁점 고시 규정을 보완해 과도하게 높은 시가표준액이 산출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시·도지사의 결정으로 가감산율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구(舊) 지방세법 시행령 제4조 제1항 제1호 ‘다’목은 쟁점 고시에 따라 계산된 건물 가액에 ‘건물의 규모·형태·특수한 설비 등의 유무 및 그 밖의 여건에 따른 가감산율’을 반영하도록 규정한다. 문화재나 내용연수가 오래된 건물에 대해 따로 적용하는 가감산율은 없지만, ‘가감산율의 적용이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시·도지사가 30% 범위 내에서 조정해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쟁점 고시에서 규정되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시·도지사의 결정에 따라 개별 건물의 특성을 반영한 가감산율을 적용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시는 가감산율을 시·도지사가 조정해 적용할 수 있다는 대목을 다르게 해석했다. 기존 감산율 기준표에 포함된 대상의 감산 비율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일 뿐, 감산율 적용의 대상 자체를 추가·변경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게 서울시의 판단이다.

이씨 측은 용도지수 비율을 100%로 적용한 시행청의 결정도 문제 삼고 있다. 쟁점 고시에 따르면, 고아원이나 노인 주거 복지 시설 등의 공익적 용도로 사용되는 주택은 60%의 용도지수를 적용 받을 수 있다. 이 변호사는 “이준구 가옥의 경우 지정문화재에 해당한다”며 “신청인의 모친은 지정문화재를 관리할 목적으로 관리 장소에 거주했던 것이기 때문에, 이 가옥이 주택 용도 외에 문화재 용도를 띤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화재의 공익성은 노인 주거 복지 시설 등의 공익성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낮은 용도지수를 적용하는 게 타당하다는 취지다.

서울시는 이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세 법규의 해석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문 대로 해석해야 하며, 합리적인 이유 없이 확장 해석하거나 유추 해석하는 건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특혜 규정으로 볼 수 있는 감면 요건은 특히 엄격하게 해석하는 게 조세공평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씨 측은 잔가율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현행 규정에 따라 석조건물은 준공 후 40년이 되면 일률적으로 잔가율 20%를 적용 받는데, 1938년에 지은 이준구 가옥의 경우 85년이나 됐기 때문에 동일한 잔가율을 적용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취지다.

◇조세심판원에 심판 청구…“이준구 가옥, 사치성 재산 아냐”

이 변호사는 “고급주택에 대해 취득세를 중과하는 건 사치성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고급주택의 취득으로 발현되는 높은 담세력(조세 부담 능력)을 근거로 하며, 이에 대한 중과세를 통해 사치 낭비 풍조를 억제하고 국가의 한정된 자원이 더 생산적인 분야에 투자되도록 유도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준구 가옥은 사치성 재산으로 볼 수 없고, 신청인이 관리 및 보호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를 취득했다고 해서 높은 담세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이 문제가 단지 이준구 가옥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고 본다. 쟁점 고시 규정의 미비를 해결하지 않으면, 다른 지정문화재의 소유주들도 동일한 문제를 겪을 수 있다.

결국 서울시로부터 과세전적부심사를 받지 못한 이씨 측은 작년 11월 초 조세심판원에 과세된 취득세를 취소해 달라는 심판 청구를 했다. 현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