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이 지난 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린 '순환성' 심포지움에 참석해 연사 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혼 소송 중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이 최 회장 동거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대표를 상대로 위자료 30억원을 청구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노 관장 측은 이날 법무법인 평안 박수정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하고 서울가정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노 관장 측 변호인단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김 대표가 노 관장과 최 회장의 혼인 생활에 파탄을 초래했고, 그로 인해 노 관장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이 같이 밝혔다.

변호인단은 “김 대표는 유부녀였음에도 상담 등을 빌미로 최 회장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했으며, 부정행위의 정도가 심하고 장기간에 걸쳐 지속돼왔다”면서 “노 관장이 유방암으로 절제술을 받고 림프절 전이 판정까지 받는 등 투병 중인데다 아들이 소아당뇨로 투병해 (최 회장의)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절실한 시기였음에도 최 회장과 부정행위를 지속하고 혼외자까지 출산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변호인단은 “김 대표는 노 관장이 이혼을 거부하고 가정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동안에도 공식석상에 최 회장과 동행하며 배우자인 양 행세했고, 부정행위를 언론과 SNS를 통해 대중에게 보란듯 공개하고 부정행위를 미화해왔다”고 덧붙였다.

그 외에도 노 관장 측 변호인단은 김 대표가 최 회장과 자신의 이름 영문 이니셜을 딴 재단(티앤씨재단)을 설립해 최 회장으로부터 백억원 이상을 지원 받고 SK그룹 계열사로부터 빌라를 저가 매수해 되팔아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뒀다고 폭로했다.

변호인단은 “간통죄가 폐지돼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외에는 유책배우자에게 가정 파탄 및 배우자와 자녀들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이 소송 제기는 최소한의 권리 행사”라며 “김 대표가 공개적으로 부정행위를 지속하고 막대한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이익을 취득해온 점 등을 고려해 위자료 30억원을 청구했다”고 설명했다.

SK그룹 측은 “특별히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이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이혼 소송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사건은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김시철 부장판사, 강상욱·이동현 고법판사)에 배당됐고, 석명준비명령이 송달돼 현재 서면공방을 앞두고 있다.

노 관장이 김 대표에게 손배소를 청구한 데는 항소심을 앞두고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이 최 회장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1심에서 사실상 패소한 만큼, 노 관장 입장에선 항소심에서 판세를 뒤집을 필요가 있다.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일부 계열사 주식, 부동산, 퇴직금, 예금 등과 노 관장의 재산만을 분할대상으로 삼고 665억원을 분할하라고 판결했다. 청구액(1조3000억원)에 크게 못 미치는 금액이다. 재판부는 SK(주) 주식을 특유재산(부부 중 한쪽이 혼인 전부터 자기 명의로 갖고 있었거나 결혼할 때 혹은 혼인 기간 중에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 판단하고 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1심 판결이 나온 뒤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조선비즈에 “대법원에서는 재산 분할 대상이나 비율을 하급심과 다르게 판단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항소심이 노 관장에겐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며 “궁지에 몰린 노 관장 입장에선 새로운 변수를 만들어 승부수를 띄울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노 관장이 김씨에게 손배소를 청구한 것은 이 같은 ‘승부수’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이번 손배소에 대한 법조계의 시각은 갈리는 분위기다. 한 변호사는 “노 관장의 소 제기는 최 회장의 외도를 안 날로부터 이미 3년이 훨씬 지나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봐야 한다”며 “최 회장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혼 전문 변호사는 “2014년에 나온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혼인관계 파탄 이후의 부정행위에 대해선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한다”며 “파탄 시점을 정확히 언제라고 봐야 할 진 애매하지만, 당시 대법원에서는 소 제기 시점엔 이미 파탄이 난 상태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 관장의 경우도 반소 제기 이후의 부정행위에 대해선 손해배상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간자에 대한 손배소는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다. 민법 제766조에 따라 부정행위 사실 및 상간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부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 안에 제기하지 않으면 청구권이 소멸된다. 두 날짜 중 먼저 도래한 날을 기준으로 소멸시효를 판단한다.

노 관장이 최 회장의 외도 사실을 언제 처음 알았는 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아무리 늦어도 최 회장이 편지를 통해 고백한 2015년 12월에는 인지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소 제기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시각도 있다. 한 가사소송 전문 변호사는 “부정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10년이라는 건, 행위를 한 번 저질렀을 때 해당되는 얘기”라며 “지금 최 회장은 부정행위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다르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혼 전문 변호사도 “소멸시효를 설정하는 목적은 법률 관계를 조속하게 확정해 불완전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것인데, (최 회장의 사례처럼) 불법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면 굳이 확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