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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기업 인수합병(M&A)을 ‘경영의 꽃’이라고 부른다. 기업의 주력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경쟁사나 유사한 속성의 회사를 인수(스케일 딜)하기도 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신산업에 대한 투자(스코프 딜)를 진행하기도 한다. 비상장 기업이 상장 회사를 인수해 우회적으로 상장 효과를 달성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은 물론 국내 대기업과 중소·중견 기업 등은 대부분의 성장 전략이나 축소 전략을 검토할 때 M&A를 통한 해법을 찾는다. M&A는 경제와 금융, 산업과 증권, 세무와 회계 등을 망라하는 종합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기업 법무의 종합예술’로 표현하기도 한다. 기업과 기업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상법과 노동법, 자본시장법과 공정거래법 등 다양한 법률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M&A 과정에서 벌어지는 법정 공방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진술 및 보장(Representations and Warranties) 위반에 따른 매각 무산의 책임을 묻는 형식으로 분쟁이 진행된다. 진술 및 보장은 매도인이 기업을 팔 때 일정한 사항이나 정보를 진술하고 그 진실성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영미법계의 M&A 계약에서 일반적으로 이용되던 것으로 최근 국내 기업 간 M&A 계약에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매수인이 기업을 인수한 이후 회사에 예상치 못한 우발 채무가 드러난 경우 진술 및 보장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나 계약 해지 소송을 제기한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M&A 과정에서도 다수의 진술 및 보장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서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제주항공 측은 “진술 및 보장 위반 사항을 조속히 시정하거나, 시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면 합당한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고, 이스타항공 측은 “대부분은 이미 해결된 것이거나, 실무적으로 쉽게 해결이 가능하다”며 주식매매 계약 해제는 불가능하다고 맞섰다.

◇”이스타, 진술 및 보증 위반” vs “계약 해제 사유 아냐”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주주(이스타홀딩스·대동 인베스트먼트·비디인터내셔널)는 2019년 12월~2020년 2월까지 M&A 협상을 진행한 뒤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후 제주항공이 대표매도인 이스타홀딩스에 115억원의 계약금을 지급했고, 이스타항공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자금으로 100억원을 대여한 뒤 제주항공 직원을 자금관리자로 파견했다.

제주항공 측은 이스타항공 실사 과정에서 부산-오사카, 부산-삿포로 등 4개 노선에 대한 폐지 및 슬롯 반납에 대한 내부 의사결정을 마치고, 부산지방항공청에 이미 슬롯 반납을 신청하고도 이런 사실을 숨긴 사실을 알아냈다. 또 전 직원에 대한 임금 중 40%만 지급하는 등 총 250억원의 임금이 미지급되면서 법령 준수, 소송, 근로관계에 관한 진술·보장 위반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제주항공은 2020년 6월 이스타홀딩스에 ‘주식매매 계약상 진술·보장을 다수 위반해 거래 종결의 선행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고, 이스타홀딩스는 이러한 위반 사항을 조속히 시정하거나, 시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는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이스타항공 측은 ‘이스타홀딩스가 이스타항공에 110억원을 증여하는 방법으로 250억원의 임금 미지급 건을 해결하고자 한다’는 취지의 회신을 보냈다.

그러나 제주항공이 진술·보장 위반 사항 전부를 해결해야 거래 종결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내자, 이스타항공 측은 ‘제주항공과의 협의 또는 요청하에 진행된 셧다운과 인력 구조조정에 따른 결과이므로 선행 조건 불충족을 이유로 거래 종결을 거부하거나 주식매매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맞섰다.

결국 제주항공은 거래 종결 시한인 2020년 6월 30일이 지나 주식매매 계약 해제를 통보한 뒤 같은 해 9월 계약금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냈고, 이스타항공 측도 계약금 외 잔금을 지급하라며 반소를 제기했다.

왼쪽부터 법무법인 광장 박재현·윤용준·김은아 변호사.

◇”제주항공이 시킨 대로 한 것”…광장, ‘제주항공 탓’ 프레임 격파

이번 재판에서는 진술·보장 위반 사유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 쟁점이 됐다. 이스타항공 측이 위반 사유 중 셧다운(슬롯 반납)과 인력 구조조정에 따른 분쟁은 제주항공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해서다. 이스타항공 측은 이에 대한 근거로 500장 이상의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했다. 거래 초기부터 제주항공과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던 과정을 전부 녹음한 것이다.

이스타항공 측은 또 제주항공이 위험을 부담하기로 약정한 코로나19로 인한 사업 부진으로 초래된 것이고, 주식매매 계약 수정 등 협상 진행 경과에 비춰볼 때 공개 목록에 기재된 금전 지급 의무 위반 금액은 그에 한정해 공개된 것이 아니라 이를 초과하는 것도 모두 포함해 공개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광장은 M&A의 절차와 방식은 계약서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므로, 문언을 충실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정공법을 택했다. 법무법인 광장의 박재현(사법연수원 31기) 변호사는 “이스타항공 측은 몇 달 동안 대화한 내용을 조각조각 떼서 유리한 부분을 증거로 제출한 뒤 ‘제주항공 탓’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며 “제주항공 측은 녹음한 게 하나도 없는 상태라 진위를 확인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광장은 슬롯 반납과 관련해 제주항공이 ‘변동비도 충당할 수 없으면 슬롯을 반납하는 것이 낫겠다’고 이스타항공 측에 조언했고, 이스타항공 측이 내부적 검토를 거쳐 ‘항공기 운항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한 사실을 재판부에 설명했다. 셧다운은 최종적으로 이스타항공 측이 결정을 내린 것이고, 매수인의 지위에 불과한 제주항공은 지시하거나 강제할 위치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주식매매 계약 체결 이후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은 인력 구조조정 과정에 대해 협의를 진행했는데, 이스타항공 측은 당시의 녹취록을 토대로 ‘제주항공이 인력을 감축하라고 강제로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광장은 ‘인력 구조조정안’ 파일의 생성 시기를 추적했다. 박 변호사는 “이스타항공의 파일이 만들어진 시기를 보니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하기 전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스타항공 측은 “제주항공에서 파견한 자금관리자가 자금 집행을 막는 등 제주항공에 완전히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했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측에 지시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광장은 ‘자금일보 수급현황’ 기록을 확보해 자금의 입출금 내역을 하나하나 분석했다. 김은아(변호사시험 6회) 변호사는 “예를 들어 이스타항공은 ‘유류대가 20억원이 필요한데 제주항공 측의 자금관리자가 비용 지출을 거절했다’고 했는데, 자금 내역을 살펴보니 당시 통장 잔고에 5000만원 뿐이었다”며 “자금관리자가 거부를 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돈이 없어서 줄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부장판사 강민성)는 지난 1월 19일 이스타항공 옛 지주사인 이스타홀딩스가 제주항공에 총 23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애초에 제주항공이 이스타 측에 지급한 계약금 115억원의 2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광장의 윤용준(31기)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계약금을 전부 돌려받는다는 생각보다는 잘잘못을 가리는 데 의의를 두고 진행한 것”이라며 “재판부가 배액을 상환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이스타 측이 매각 무산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