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지난해 10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 주식을 공개매수하던 중 카카오가 지분을 대량 매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이 ‘시세조종 혐의’를 살펴보고 있다고 밝힌 만큼, SM엔터 경영권을 둘러싼 하이브와 카카오 간 ‘쩐의 전쟁’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7일 조선비즈는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 7명을 대상으로 카카오의 지분 대량 매수에 법적 분쟁 소지가 없는지 물어봤다. 그 결과 이들의 의견은 찬반 양론으로 갈려 팽팽하게 대립했다. 시세 조종이나 시장 교란 행위로 볼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장내 매수이기 때문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반론도 나왔다.

◇ 하루만에 SM엔터 주식 105만주 매집…평단 12만3116원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쪽은 하이브였다. 하이브는 지난달 28일 금감원에 진정서를 내고 지난달 16일 이뤄진 SM엔터 지분 대량 매집이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이뤄진 시세조종 행위”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날 특정 계좌를 통해 SM엔터 주식 65만주(지분율 2.73%)에 대한 매수 주문이 체결됐으며, 종가는 13만1900원을 기록했다. 하이브가 제시한 공개매수 단가(12만원)보다 높은 가격이다.

하이브가 문제를 제기한 지분 대량 매집의 주체는 결국 카카오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7일 금감원에 제출한 SM엔터 공개매수신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3일까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함께 SM엔터 주식 116만7400주를 장내매수했다. 총 1443억원을 들여 지분 4.91%를 확보했다.

카카오는 특히 2월 28일 하루 동안 주당 12만3116원에 105만주 이상을 사들였는데, 이날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SM엔터 주가도 12만원선 밑에서 12만7600원으로 뛰었다. 이날 하루 SM엔터 주식의 전체 거래량이 348만주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카카오의 지분 매집이 주가 부양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금감원은 입장문을 통해 “누구라도 공개매수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주가를 공개매수 가격 이상으로 유지하려는 행위가 있었다면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행위로 처벌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신속하게 조사에 착수해 엄정 대응하겠다”는 경고도 내놓았다.

◇ “통정매매·자전거래 혐의 있다면 자본시장법 위반”

관건은 카카오의 지분 대량 매집이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자본시장법 제176조(시세조종행위 등의 금지) 3항은 “누구든지 상장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의 시세를 고정하거나 안정시킬 목적으로 그 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에 관한 일련의 매매 또는 그 위탁이나 수탁을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카카오가 SM엔터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 단가(12만원)보다 높게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시세를 끌어올렸는지, 이것이 법 위반의 소지가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카카오의 지분 대량 매집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는 쪽에서는 “주식의 장내 대량 매수는 일반적인 상황에선 허용되지만, 특정 법인이 공개매수를 하고 있는 도중에 이뤄지는 건 보기 드문 케이스”라며 거래량이 얼마나 되는지, 이로 인해 가격이 어떻게 등락했는지 등에 따라 위법이 될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보통 매수자 입장에선 주식을 싼 값에 매수하는 게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특정 호가로 주문을 계속 넣어서 주가 상승 효과를 발생시킨 혐의가 포착된다면 시세 조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카카오가 지분율을 4.9%까지만 끌어올린 것이 시세 조종 여부를 판가름하는 정황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분율이 5%를 넘으면 공시를 통해 지분 매매 목적을 밝혀야 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4.9%로 맞췄을 가능성이 크며, 이 점이 SM엔터 경영권 인수에 대한 카카오의 의지 및 공개매수 저지 필요성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카카오의 지분 매집의 위법성을 따지기 위해선 결국 매매 패턴이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공개매수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반드시 유지해달라며 매수 주문을 넣었는지, 통정매매나 자전거래의 혐의가 있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 “비싼 값에 장내 매매 무슨 문제?…기업 가치 고평가했다는 논리도 가능”

카카오의 지분 매집에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장외에서 대항 공개매수를 했는데 신고서를 내지 않은 경우라면 위법에 해당되겠지만, 카카오는 장내 매매를 했기 때문에 신고할 의무가 없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 변호사는 “자본시장에서 주식을 내 의지대로 비싸게 사겠다는 것 자체는 법적으로 금지되는 행위가 아니다”라며 “5% 미만의 지분을 대량 매집하는 것은 행동주의 펀드들이 흔하게 하고 있는 일인데, 카카오의 경우만 시세 조종이나 시장 교란 행위로 볼 법리적 근거가 애매하다”고 말했다.

SM엔터의 신주·전환사채(CB) 발행을 둘러싸고 법적 분쟁이 한창인 가운데 카카오가 위법 행위를 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두진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시세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다가 자칫하면 SM엔터 소액주주들에게 소송당할 위험도 있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거래를 했겠냐는 취지다.

또 다른 변호사는 “하이브 입장에서는 이달 말 주주총회 전까지 기관 투자자들과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끌어모아야 하는데, 이런 이슈를 공론화하고 금융당국이 ‘엄중하게 들여다보겠다’는 식의 메시지를 낸다면 여론이 하이브에 유리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가 결국 15만원에 공개매수하겠다고 밝힌 것이 카카오 측에 유리한 논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이브가 제시했던 공개매수 가격(12만원)보다 3만원이나 높은 15만원에 공개매수하겠다는 것은 카카오가 SM엔터의 기업가치를 애초에 높게 보고 있었다는 방증이며, 따라서 ‘12만원보다 약간 높은’ 시세를 의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주가를 적정하게 평가해 비싸게 산 것’이라는 논리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