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뉴스1

대법원이 27일 지방·고등법원장에 대한 정기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는 후보로 추천됐던 10명의 수석부장판사 중 8명이 법원장으로 기용됐다. 대다수가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석부장으로 임명했던 인물들이다. 법조계에서는 "결국 김 대법원장이 도입한 '법원장 후보추천제'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원장 후보추천제는 소속 법관들에게 자율적 방식으로 3명 이내 법원장 후보를 추천받는 제도를 말한다. 민주적 절차로 법원장을 임명하겠다는 취지로 지난 2019년 처음 시행됐다.

다만 우려했던 김 대법원장의 '퇴임 전 알박기'식 인사는 예상보다 심하지 않았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지난해 12월 김 대법원장의 측근인 송경근 서울중앙지법 민사1수석부장판사가 서울중앙지법원장과 청주지법원장에 '겹치기' 입후보를 하며 논란이 되자, 측근들을 법원장으로 대거 기용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비판 인식한 것처럼 보여"... 수석부장 대거 원장행

대법원은 이날 지방·고등법원장 25명과 고등법원 부장판사 27명 등 올해 첫 정기인사를 단행했다. 오는 9월 퇴임을 앞둔 김 대법원장의 마지막 정기인사다. 상당수 판사들이 법원을 떠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 가운데, 이번 인사에도 법조계의 관심이 쏠렸다.

이번 인사에서 서울남부지법원장으로 임명된 황정수 서울남부지법 수석부장판사는 김명수식 '코드인사'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평가 받는다. 문재인 정부에서 법원의 주류로 부상한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기 때문이다. 황 수석부장은 지난해 8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당의 비대위 전환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해 '사법의 정치화'라며 비판 받은 바 있다.

다만 황 수석부장을 제외하면 당초 우려했던 김 대법원장의 '측근 알박기' 인사라고 볼 만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작년 12월 송경근 수석부장이 2개 법원의 법원장 최종 후보가 됐을 당시, 법조계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자신의 측근 기용에 이용했다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결국 송 수석부장은 서울중앙지법원장 후보에서 사퇴했으며 청주지법원장 후보에선 탈락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김 대법원장이 그간의 비판을 의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에 법원장이 된 법관 중에는 실력과 능력을 두루 인정받은 사람들도 적지 않고,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행정처에 있었던 인물도 요직에 배치됐다"면서 이번 인사가 우려와 달리 편향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에 서울북부지법원장으로 보임된 박형순 부장판사는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지난 2020년 전광훈 목사의 광화문 집회를 허용하는 판단을 내린 인물이다. 당시 결정문을 두고 '박형순법'으로 불릴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한편, 후보로 추천된 10명의 수석부장판사 중 8명이 법원장에 임명된 데 대해서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 대법원장이 임명한 수석부장판사들이 법원장으로 사실상 '승진'한 것이 "민주적 절차로 법원장 후보를 추천하겠다"던 법원장 후보 추천제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원장에 임명되기 위해 일선 판사들에게 잘해주고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것은 예전부터 큰 문제로 지적돼왔다"며 "이 때문에 재판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수석부장은 통상 일선 판사들과의 접점이 많은데, 이를 정상적인 후보 추천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몸값 좋을 때 사직하는 법관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는

이번 인사에서는 판사들의 대규모 퇴직도 논란이 됐다. 매년 인사가 있을 때마다 법관들의 줄사직이 문제가 돼왔는데, 올해도 고등법원에서 부장판사 1명과 고법판사 15명이 퇴직한다. 고법 판사들은 연수원 20기 후반에서 30대 기수로 법원의 '허리'역할을 담당하는 법관들이기에 대형 로펌들이 선호하면서 '몸값'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특히 서울고법에서만 14명이 법복을 벗었다. 수원고법과 부산고법에서도 각각 1명씩 사직원을 제출했다. 작년과 비슷한 규모지만 소폭 증가했다. 법관의 사직이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와 직결돼 있는 만큼, 대법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 없이 나오고 있다.

일선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 시스템을 잘 아는 이들이 법원을 떠나는 만큼, 재판에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구성원들이 수십명씩 나가더라도 법원은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이 상황을 타개할만한 뾰족한 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