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 특허, 조세, 산업기술 유출 등 검사의 수사 영역에서 유독 전문성이 돋보이는 분야가 있다. 대검찰청은 일찌감치 전국 각 검찰청에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중점 검찰청'을 지정하고 수사 역량을 집중시켰다. 최근에는 각 중점청에 합수단 부활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력으로 무장하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중점청 검사'들을 총 7회에 걸쳐 만나본다. [편집자주]
전 세계가 최첨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경제 스파이법'을 수차례 개정, 국가 전략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면 간첩죄로 가중 처벌한다. 일본은 부정경쟁방지법을 고쳐 벌금을 대폭 인상하고, 범죄 수익에 대한 몰수 규정을 강화했다.
기술 유출 범죄는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발생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 국정원은 최근 5년 간 산업기술 유출 사건 99건을 적발했다. 국가안전보장과 국민경제 발전에 중요한 71개 국가 핵심기술 가운데 33개 기술에 대한 해외 유출이 시도됐다. 해외 유출 시 한국 경제가 입었을 피해 규모를 추정하면 22조원대에 달한다. 특허청에 따르면 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는 과거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인 20조원대에서 최근 3% 수준인 연간 최대 60조원대까지 커졌다.
◇"기술 탈취 수법 지능화… 거대 자본과의 싸움"
거액의 투자와 장기간의 연구를 통해 개발된 최첨단 기술을 유출하는 범죄는 기업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정보기술(IT) 등은 우리나라 무역수지 흑자를 주도하는 대표적 산업으로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도 반드시 보호해야 한다. 기술유출 범죄의 경우, 고도의 기술적 내용이 사건의 핵심이 된다는 점에서 수사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유관기관이나 전문가 집단과의 네트워크 구축도 필수적이다.
대검찰청은 2017년 12월 수원지검을 첨단산업보호 중점 검찰청으로 지정했다. 수원지검이 관할하는 지역에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SK하이닉스, 판교테크노밸리 등 세계적인 첨단기술 보유 기업들이 밀집해 있다. 기술 발전에 따라 발생하는 다양한 형사적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요충지다.
첨단산업보호 중점 검찰청으로 지정된 수원지검은 2019년 2월 산업기술범죄수사부를 신설했다. 이듬해 4월에는 특허청에서 심사관·심판관 업무를 경험한 서기관 2명을 기술수사자문관으로 파견 받았다. 이후 작년 1월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형사부로 명칭이 변경됐고, 올해 7월 현재의 이름인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가 됐다.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는 박진성(사법연수원 34기) 부장검사를 필두로 천재인(39기)·함재원(40기)·고건영(변호사시험 3회)·박성현(3회)·박형건(4회) 검사와 IT 수사관 3명 등 전문 인력으로 구성됐다.
고 검사는 서울대 원자핵공학(학사)·전기컴퓨터공학(석사)를 졸업하고 네이버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한 IT 전문가다. 박성현 검사는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를 졸업하고 변리사로 활동한 바 있다.
박 부장검사는 지난 22일 조선비즈와 만난 자리에서 "기술유출 범행이 과거보다 훨씬 지능화하고, 해외로 유출되는 경우가 늘었다"면서 "특히 우리나라가 선도적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의 분야 인력을 고액 급여를 미끼로 빼가는 방식으로 범행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은 기술 개발에 투입되는 수천억원의 비용을 날리게 되고, 중소기업은 핵심 기술을 유출당하게 되면 바로 도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기술유출 범죄는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브로커 등을 통해 피해 기업 직원을 빼내 채용하거나, 피해 기업의 직원이나 협력업체와 유착해 기술을 유출하는 등 범행이 은밀하고 계획적·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추세다.
대표적인 사건이 국내 S사의 반도체 세정 장비 기술을 중국 기업으로 유출한 범죄다. S사의 전 직원 A씨 등이 설립한 B사는 2020년 8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반도체 세정 장비 14대를 중국 반도체 연구소인 C사 등에 판매해 710억원 상당의 수익을 올렸다.
범행은 지능적으로 이뤄졌다. A씨는 회사를 퇴직한 뒤 2019년 3월 B사를 설립했다. 그 전후로 S사 전·현직 연구원들을 영입했다. 이들은 사내 보안 시스템 적발을 피하기 위해 ▲소지 중인 휴대폰에 메모 ▲현직 직원 포섭해 노트북 반출 ▲무관한 파일명으로 바꿔 이메일 전송하기 등의 수법을 동원해 기술 자료를 넘겨받았다.
B사는 세정 장비 제작에 필요한 설계 도면과 부품 리스트, 소프트웨어, 작업표준서 등 대부분의 기술을 빼낸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B사가 중국 현지 장비업체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세정 장비 기술 일부를 이전하고, 중국 연구소에 세정 장비를 납품하는 등의 대가로 합작법인 지분 20%와 2000억원 상당의 납품 계약을 따낸 것으로 판단했다.
이처럼 기술유출의 범위가 해외로 뻗어나가면서 수사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박형건 검사는 "S사 사건은 수사하는 데 10개월이 넘게 걸렸다. 중국에 소재한 기업을 압수수색해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증거를 수집하기가 어려웠다"며 "또 다른 사건을 수사할 당시에는 (증거 확보의 어려움을 알고) 조직적으로 진술을 거부하면서 조사에 불응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천재인 검사는 "기술유출 사건은 기본적으로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재판이 길어지는 성향이 있다. 보통 한 달 반에 1번 재판이 진행되기 때문에, 결국 피고인의 구속 기간인 6개월이 지나고 석방이 된다"면서 "검사가 보통 2년마다 인사이동을 한다는 점에서 한 사건만 꾸준히 담당하는 변호인 입장에서는 어찌보면 유리한 싸움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술을 유출한 기업이 국내 대기업 못지 않은 다국적 기업이나 거대 자본을 가진 회사이기 때문에 때로는 수사 과정에서 조사에 불응하는 상황도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는 다수의 기술유출 사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작년 10월에는 5G(세대) 이동통신 스몰셀 개발업체 연구소장이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후 개발 인력과 기술 자료를 유출해 해외로 수출을 시도한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소장과 범행에 가담한 연구원 총 8명을 재판에 넘겼고, 자동차 자율주행 첨단 기술을 무단 유출한 사건도 적발해 연구원 등 3명을 기소했다. 자동차 자율주행 기술을 유출한 연구원은 지난달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특허청에서 파견한 산업기술수사자문관의 비직제 문제는 해결해야 할 숙제다. 수원지검에는 현재 2명의 자문관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단기 파견 형태로 근무하고 있다.
고건영 검사는 "자문관들은 전기전자, 기계, 화학 등 자신들의 전문 분야와 관련한 자문을 진행하는데, 현재는 전자와 기계를 담당하는 2명뿐이라 화학 분야와 관련한 자문이 필요하면 대전으로 보내야 한다. 때문에 긴급하게 수사가 필요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안보 위협 방산비리, 범죄 수익 철저히 환수할 것"
수원지검에서 담당하고 있는 또 다른 영역인 방위사업 범죄는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중대 범죄다. 폐쇄적인 군 조직과 민간이 오랜 기간 결탁해 발생하고, 피해자가 국가인 탓에 적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막대한 국고 손실을 초래하고 군 기강 해이를 초래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국방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신속한 수사와 처벌이 필요하다.
박 부장검사는 "방위사업 범죄는 피해자가 국가이기 때문에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없어서 스스로 찾는 것이 아니면 발견하기 어려운 특징을 지녔다"면서 "군에서 군사기밀을 민간에 유출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민간에서는 뇌물을 제공하는 등 군과 민간이 오랜 기간 유착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또 범행에 따른 이익이 막대해서 범죄에 대한 유인이 높다"고 지적했다.
박 부장검사는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와 특수1부 검사로 근무하면서 대북확성기 사업 비리 사건, 평택 미군기지 공사 뇌물 비리 사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임원의 배임수재 사건을 수사한 방산비리 수사 전문가다.
방위사업 범죄는 군사법원에 재판권이 있는 군인과 일반법원에 재판권이 있는 민간인이 서로 결탁할 때 발생한다. 형사소송법과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군인, 군무원 등이 범한 죄 등의 사건이 군사법원 재판권에 속하는 경우, 검사는 군 검찰부로 사건을 송치해야 한다. 때문에 군 검찰과 민간 검찰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박 부장검사는 "방위사업 범죄 수사에서도 기술유출 범죄와 마찬가지로 증거 확보가 어렵다. 기술유출 사건에서는 증거가 해외에 존재한다면, 방위사업 범죄는 군에 증거가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군에서 압수수색을 하려면 국가 안보 등의 문제로 부대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군과 민간이 오랜 유착을 통해 벌어지는 범죄 특성상 진술 증거를 확보하는 것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수원지검은 국방부 수사팀으로부터 군 검사와 수사관을 파견받아 협력하고 있다. 링스헬기 정비사업과 관련해 몰래 협력업체를 차린 뒤 장비 납품대금 60여억원을 챙긴 혐의로 해군 중령과 항공사 협력업체 대표, 범행을 도운 해군 상사 등을 재판에 넘기기도 했다.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와 국방부 검찰단 수사팀이 협업한 첫 사건이다.
방위산업은 수조원의 돈이 오가는 사업이기 때문에 범행으로 인한 이익도 막대하다. "한 번 잘하면 평생 먹고 살 돈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범행이 계속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범죄 수익을 환수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박성현 검사는 "방위사업 범죄는 범행에 따른 이익이 막대하다. 전투기나 헬기를 개발하거나 수입할 때 들어가는 금액이 수조원이다. 이 말은 범행이 이뤄지면 그만큼 국가 예산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함재원 검사는 "모든 범죄자를 찾지는 못하겠지만 범행을 하면 언제든지 처벌을 받을 수 있고, 범행으로 인해 얻은 수익도 전부 몰수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주는 게 필요하다. 이래야 궁극적으로 범죄가 예방되고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박 부장검사는 "범죄자들의 악의적인 범행 의도와 목적, 동기, 범행 수법 등 범행 경위의 불량성을 입증하고, 엄벌이 필요한 이유를 적극적으로 설득해서 죄에 상응하는 형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범행으로 얻은 재산을 누구에게 팔거나 은닉하지 못하도록 재산을 동결하는 추징·보전 조치의 시점도 앞당길 생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