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24조 폐지’를 골자로 한 윤석열표 공수처 대수술이 실현될지 법조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수처가 수사기관으로서 도태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법 개정을 놓고 172석의 민주당 동의를 받아내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이에 따라 당분간 현행 제도가 유지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윤 당선인도 ‘조건부 폐지’를 언급했던 만큼 항간의 비판을 불식시키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공수처가 윤 당선인이 정식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수사 성과를 내야만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당선인의 ‘사법분야 개혁 공약’에서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공수처의 지위를 규정한 ‘공수처법 24조 폐지’다. 이 조항은 공수처가 공수처 수사와 타 수사기관의 수사가 중복될 경우 가져올 수 있고, 타 기관이 고위공직자범죄를 인지할 경우 그 사실을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당초 고위공직자범죄 관련 수사 시 ‘정권 눈치보기’ 등 폐해를 막고자 만들어졌지만 공수처는 오히려 논란을 일으켰다.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수사 관련 이성윤 검사장과 이규원 부장검사의 사건을 검찰로부터 이첩받은 뒤 재이첩하면서 ‘유보부 이첩’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앞서 ‘이 검사장 황제 조사’ 의혹과 ‘청와대발 기획 사정(司正)’ 의혹도 결론을 내지 않고 다시 넘기면서 조항의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평가가 나왔다.

윤 당선인이 공약을 통해 ‘검·경도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 가능’이라는 내용을 담은 것도 이런 상황의 연장선이다.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의 우선권을 갖고 있음에도 공수처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법을 개정해 검찰과 경찰도 고위공직자범죄를 수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즉 수사기관 간 ‘경쟁’을 통해 고위공직자 범죄를 막겠다는 취지로 분석된다.

다만 해당 공약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게 법조계 다수의 시각이다. 현행 공수처 추진에 앞장섰고 국회 의석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법 개정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윤 당선인이 공약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정치적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도 법안 폐지 추진의 걸림돌로 꼽힌다.

공수처장 교체도 어려울 전망이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 2월 관훈포럼 토론회에서 “임기를 꼭 지킬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처장의 임기는 3년이다. 김 처장의 임기가 끝나는 2024년 1월까지 누구도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를 제외하면 교체할 수 없는 셈이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지난달 10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물론 윤 당선인이 공수처법 24조 폐지 공약을 강력하게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그는 후보 시절 사법공약을 발표하며 “공수처가 계속 정치화된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논란을 만든다면 책임을 묻는 것 뿐만 아니라 공수처 제도에 대한 국민의 근본적인 회의를 바탕으로 폐지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공수처를 지켜본 뒤 개선되지 않는다면 강경하게 나서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당분간 공수처의 현행 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큰 만큼 학계와 법조계는 ‘공수처의 성과’를 우선 강조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기관이 1년 넘도록 사건을 기소하지 못하면 문 닫아야 한다”며 “세간의 평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타당한 결과’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고발사주’ 의혹 수사 결과가 공수처에 대한 평가를 바꿀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던 사안인 데다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하는지에 따라 그간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 내부에서도 ‘수사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열린 공소심의위원회 회의에서는 “구속영장을 두 번이나 청구한 사건을 왜 기소하지 못하느냐”라는 지적이 있었고, 공수처 측은 “알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공수처는 손준성 검사를 상대로 구속영장을 두 차례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된 바 있다.

수사 성과 미비로 윤 당선인에게 공수처법 24조 폐지를 추진할 명분이 생긴다면, 공수처는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크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인력은 수사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로, 공수처는 인력 규모 등이 타 수사기관보다 현저히 적다”며 “같은 내용을 수사한들 다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수사기관으로서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폐지’보다는 공수처의 현실적 문제를 해소할 ‘근본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웅석 서경대 교수는 “인사권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면서 “수사기관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상황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