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이 9일 오전 서초구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횡령·배임 혐의 관련 1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에서 2000억원 상당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에 대해 법원이 재판 지연 태도를 지적하고 분리 선고를 예고했다. 사건 병합으로 함께 재판을 받는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은 "신속하게 진행해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내기도 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지난 21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 회장의 공판 기일을 열고 "직접 심리 주의와 공판 중심 주의에 따라 우리가 판결을 선고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절대 안 되는 사정이 없는 한 우리 재판부에서 판결 받는다 생각하고 진행하라"고 밝혔다.

이날 재판부는 조 의장과 조경목 SK에너지 대표이사 등 4명 사건을 다음 달 18일까지 마무리하고, 최 회장 사건도 12월 내로 종결하기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변론 종결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진행하겠다"며 "횡령 사건의 성격상 증인보다 자료로 따지는 게 주요해 충분히 시간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지난 3월 개인 골프장 사업 추진과 가족 및 친인척 등에 대한 허위 급여 지급, 호텔 거주비 및 개인 유상증자 대금 납부, 부실 계열사에 대한 자금 지원 명목으로 자신이 운영하던 6개 회사에서 총 2235억원 상당의 회삿돈을 횡령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공소사실에 대한 인정 여부나 증거에 대한 의견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해 검찰도 "(최 회장 기소 이후) 6개월이 지날 동안 공소사실 인정 여부도 정확한 의견 제출이 없다"며 "우리도 납득하기 어렵고 통상의 다른 사건과 비교하면 초유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최 회장의 이 같은 재판 지연 시도가 사실상 '재판 기피 행위'나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

이에 법원도 최 회장의 재판 지연 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재판부는 "검찰의 지적은 이유가 있다. 법정에서 평화로운 분위기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런 분위기 유지가 어느 쪽에 편든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며 "거듭 말하지만 계속 보류하면 의견 자체도 다음 재판부에서 밝힌다고 해석될 수 있어 매우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입장은 명확히 밝히고 어느 정도 선에서 반대 신문을 할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증거를 전부 부동의라도 하라"며 "의견 보류가 지금까지 유지되는 것은 매우 적절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12월 중순까지 8~10회의 공판을 진행한 뒤 최 회장 사건도 종결한다는 계획이다.

법조계에서는 최 회장이 재판부 변경을 노리고 지연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판부가 이미 한차례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최 회장의 보석을 기각한 것을 두고, 유죄의 심증이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법원은 매년 2월 정기 인사를 진행하는데, 이 사건의 재판장인 유영근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에 3년째 근무 중이라 내년 인사이동이 유력한 상황이다.

반면 조 의장 등의 변호인은 "신속하게 심리를 마치고 판결을 받고 싶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들은 지난 8월 12일 첫 공판에 출석한 뒤 현재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전문경영인인 조 의장 등이 매주 재판에 출석하는 것 자체가 경영정상화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라고 보고 있다. 조 의장 측은 '분리 선고를 해서라도 빨리 재판을 종결해 주길 원하냐'는 재판부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