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조선DB

내달 1일부터 공무원이 감사에 출석해 감사를 받을 경우 ‘변호인 입회’가 허용되지만 법조계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감사원 조사 문답과정에서 변호인 참여 제한에 관한 사유가 형사절차나 다른 행정조사보다 광범위하게 규정돼 있다는 점에서 피조사 기본권을 보호한다는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감사원은 다음달 1일부터 공무원 감사 과정에서 문답서를 작성할때 변호사 입회를 허용해야 한다. 지난 5월, 감사원이 사무처리규칙 제10조2항을 신설해 ‘출석 답변하는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문답서를 작성할 때에는 관계자 등이 신청하는 경우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참여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감사원이 변호인 입회를 명시적으로 허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감사 절차에서 공무원이 변호인으로부터 조력을 받을 권리는 ‘헌법상 인정되는 권리’라는 점에서 감사원 사무처리 규칙이 아닌 감사원법 개정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법 제27조는 감사에 필요한 경우, 출석답변·자료제출·봉인 등에 관한 조치를 내릴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 이 조항에 ‘변호인 조력권’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공무원 및 공공기관에 미치는 엄중함과 고압적 감사로 인한 인권침해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감사원 조사시 피조사자의 ‘변호인 조력 받을 권리’는 법률상 권리로 보장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특히 변호인 참여를 제한하는 사유를 규정한 ‘예외 조항’의 범위가 너무 넓다는 점에서 피조사자의 변호인 조력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 사무처리규칙 제10조의2(변호인 등의 참여) 제3항에 따르면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 등 비공개대상 정보가 포함돼 있어 알려질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이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하거나 특정한 사람이나 단체 등에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줄 우려 등이 있는 경우 △관계자 등의 증거인멸·도주 우려 등으로 문답서 작성의 시급을 요하거나 감사내용 공개 등으로 감사목적 달성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감사원이) 변호인 참여 없이 문답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법무법인 린의 노수철 변호사(前 국방부 법무관리관)는 “국가안전보장, 국방 통일 등 비공개대상 정보가 포함돼 있다거나 감사내용 공개 등으로 감사 목적 달성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로 변호인 참여를 제한하는 것은 변호사 제도의 본질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수긍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실제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는 형사철차 외에 검사징계법, 법관징계법, 공직선거법(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범죄 조사) 등 다양한 법률에도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는데다, 내란 외환죄에서도 변호인 조력 받을 권리는 허용된다.

뿐만 아니라 관계자 등이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로 문답서 작성이 시급할 경우, 오히려 감사원 감사절치가 형사절차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변호인 조력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 된다.

노 변호사는 “이러한 시급성에 비춰 감사절차라는 이유로 변호인 조력을 부정당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면서 “감사원 자료제출·답변 요구에 따르지 않은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규정을 감안하면 변호인 조력은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변호인 참여 신청이 거절당했을 때 피조사가 ‘이의 제기’ 할 수 있는 실질적 수단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감사원 조사의 경우, 헌법소원 외에는 마땅한 수단이 없는데 헌법소원 결론이 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

일례로 2017년 금융감독원 소속 공무원이 불공정거래혐의로 조사받는 과정에 동석하기 위해 변호인이 동석을 요청했다가 금감원이 “전례가 없다”며 거부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비판 여론이 거셌다. 금감원 조사는 향후 검찰 수사 의뢰나 행정처분의 기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수사기관의 조사와 다를 바 없는데도 입회를 금지하는 것은 변호사의 변론 조력권과 피조사자의 방어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대한변호사협회가 금감원에 변호인 참여를 허용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는 결국 헌법소원심판 사건으로 다뤄졌는데 2년 뒤인 2019년에나 결론이 났다. 그 사이에 금융위원회에서 ‘변호사 입회’에 관한 규정이 마련되면서, 헌재에서 당부를 가리지 못한채 각하됐다.

노 변호사는 “그 어떤 고위직에 있었거나 많은 재산을 가졌다 하더라도 피감인, 피조사자, 피의자의 신분으로 전환되는 순간 절차 앞에 무력하고 외로운 한 개인으로 전락하고 만다”면서 “이러한 피조사자가 상의하고 조력을 받을 수 있는 변호인을 갖는 것은 최소한의 인권 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본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