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취소 문제를 둘러싼 교육청과 서울 8개 자사고 간 이뤄진 소송전에서 1심 법원은 모두 "서울교육청의 지정취소는 위법하다"고 판결하면서 자사고의 손을 들어줬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2014년 6개 자사고에 대해 지정취소를 했다가 무산됐는데, 2차 자사고 지정취소 역시 법원의 결정에 막힌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안종화)는 지난달 28일 경희고와 한양대부고 학교법인이 조 교육감을 상대로 제기한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교육청의 취소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올해 2월 배재고와 세화고, 3월 숭문고와 신일고, 지난달 14일 이화여대사범대부속고와 중앙고 소송 선고와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이다. 8개 자사고들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서울교육청은 법무법인 지평이 각각 소송을 대리했다.
◇쟁점은 '자의적 평가기준 신설 및 소급적용'
자사고 지정 취소처분이 법원에서 뒤집힌 배경에는 서울교육청이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에 따라 '자의적' 기준을 소급적용해 비례의 원칙과 신뢰보호원칙을 위반했다고 법원이 판단한 점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앞서 서울교육청은 2019년 시행한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교육청이 재량으로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을 신설했다. 감사로 '감점 처리' 할 수 있는 점수도 3점에서 12점으로 늘렸다. 서울교육청은 이러한 변경된 기준을 각 자사고에 2015년부터 적용하겠다고 했고, 2019년 4월 심사를 진행했다. 신설 항목이 포함된 변경된 평가기준을 평가기간 전체에 도입하면서, 이런 기준을 평가기간이 끝나갈 무렵인 2018년 12월에 공지한 것이다. 결국 새 평가기준에 따라 8개 자사고는 재지정 기준(70점)에 미달해 서울교육청으로부터 지정취소 처분을 받았다.
다만 이들 학교는 법원에 지정취소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행정소송도 제기하면서 '자사고 지위'를 어떻게든 유지해 왔다.
법원 판결을 보면 법원은 신설 항목 가운데 △학생참여 및 자치문화 활성화 △안전교육 내실화 및 학교폭력예방·근절 노력 △학부모 학교교육 참여 확대 및 지역사회와의 협력 등은 법원에서 자사고 지정목적 달성이라는 평가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감사 등 지적사례' 지표가 확대 적용되면서 감점 요소가 많아지고 감점 폭도 커졌다고 설명했다.
자사고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태평양은 이처럼 평가목적과 맞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평가기간이 끝나갈 무렵에 새로운 평가지표를 추가해 이를 평가기간 전체에 적용한 것은 서울교육청의 '재량권 이탈'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시험 범위도 모르고 시험을 치른 셈이다.
반면 서울교육청을 대리한 법무법인 지평은 신설된 지표는 문제가 없으며, 2015·2018·2019년 표준안을 통해 자사고 측이 2019년 평가계획의 내용을 미리 인지할 수 있었다며 맞섰지만 재판부를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법원은 "신설·변경한 평가지표들이 자사고 지정목적 달성 가능 여부를 심사하기에 적합하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평가지표 신설과 소급적용은 자사고들의 예측가능 범위를 넘어 평가결과에 큰 불이익을 줬다"고 판시했다. 이어 "서울교육청 측이 언급한 자료들은 교육부가 시·도교육청에 평가계획 마련을 위해 시달한 내부자료에 불과해 원고들에게 고지됐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사건을 대리한 법무법인 태평양의 유욱 변호사(사법연수원 19기)는 "교육청의 재량이라도 자사고 지정목적과 연관된 지표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항목들이 많았다"며 "서울교육청이 자의적으로 감점 요소는 추가하고 이를 평가기간이 끝나가는 시점에 소급적용한 것은 재량권 이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법의 대원칙은 비례의 원칙, 즉 정당한 목적 달성을 위해 적절한 수단을 써야하고 행정처분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며, 공익과 사익이 균형을 가져야한다는 점"이라며 "자사고 폐지라는 목적을 앞세운 나머지 절차적으로 무리한 지정취소 처분을 했고 이는 비례성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평양, 2014년부터 축적된 데이터·경험이 '승소 요인'
서울교육청과 자사고의 '악연'은 2014년 교육감 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교육감에 당선된 조희연 교육감은 경희고·배재고·세화고·우신고·이대부고·중앙고 등 6개 학교의 자사고 지위를 박탈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이를 직권 취소로 무산시켰고, 서울교육청은 교육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8년 교육 당국이 평가지표를 바꾼 것은 신뢰보호 원칙에 어긋난다며 교육부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태평양은 당시 소송에 보조 참가한 6개 자사고의 법정 소송을 대리했다. 당시 축적한 자사고 제도의 설립배경이나 취지, 근거법령 등에 대한 데이터, 신뢰보호원칙 위반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낸 경험이 이번 소송전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 됐다.
태평양 오정민(사법연수원 37기) 변호사는 "교육이라는 중대한 공익적 목적의 안정적인 달성을 위해 필요한 충분한 신뢰와 공감을 바탕으로 제도가 변해야 하는데, 그런 고려없이 교육제도에 대한 신뢰가 침해되는 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당시 대법원 판결 취지였다"며 "이는 이번 재판에서도 그대로 적용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오 변호사는 "당시 교육부와 서울교육청 사이에서는 평가지표를 놓고 다툼이 있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이번 재판에서는 교육부가 지적했던 지표가 똑같이 있었음에도 (교육부가) 문제 삼지 않았다"며 "앞선 법원에서 이미 지적받았던 부분이 그대로 나왔고, 이것은 잘못됐다는 점을 강하게 지적했다"고 했다.
앞서 2018년 대법원 판례나 부산 해운대고가 작년 12월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이번 행정소송도 자사고 측이 이기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태평양은 전국 시·도교육청의 평가지표를 수집·분석해 서울교육청이 제시한 지표들이 문제가 있었다고 법원을 설득하는데 노력했다.
이처럼 태평양이 결과적으로 4연승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8개 학교 사건을 4개로 나누고, 재판부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등 변수가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유 변호사는 "평가제도를 놓고 다툰 문제였던 만큼, 하나하나 사건들이 상당히 무거웠고 노력이 많이 들어갔다"며 "재판부마다 다르게 해석할 경우도 대비했는데, 다행히 대부분 재판부가 비슷한 관점으로 판단해줬다"고 했다. 이어 "교육청을 대리한 지평이 준비자료를 10건 넘게 준비하고, 서면증거는 우리보다 더 많이 제출하는 등 예상보다 더 강하게 나와 우리도 만전을 기해 준비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 "자사고 폐지 공약 위한 교육청의 무리한 지정취소 처분 막아낸 의미"
자사고측의 '4승 달성'은 태평양 행정소송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러 행정분야의 소송에 대해 풍부한 경험이 있는 변호사들과 다양한 정부 부처에서 재직한 경험을 가진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특히 규제 전문가인 유 변호사(왼쪽)와 오 변호사가 주축이 됐다. 유 변호사(19기)는 1993년 태평양에 입사해 주로 행정소송업무를 담당했고, 삼성자동차 인수합병(M&A), 국회 입법 및 정부 입법 자문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유 변호사는 "자사고 제도는 평준화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발전한 성격으로 우리나라 중등교육 역사에서 의미가 있는 제도로 13개 자사고 중 8개 지정취소는 사실상 '자사고 폐지'로 봐야 한다"며 "교육청이 공약을 위해 무리하게 자사고를 폐지하려는 걸 막아내 대한민국 교육제도에 있어서 의미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가 사실 자사고로 지정된 학교 중 한 학교 출신이라 더 충실하게 임한 것도 있다"며 "자사고 설립 배경이나 정부정책의 취지 등에 대해 아무래도 더 높은 이해도를 갖고 있어 이번 재판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오 변호사(37기)는 각종 불합리한 정부 규제에 대한 대응 업무, 규제 법령 개정 업무, 유권해석 등 규제 해소 관련 자문과 행정소송, 헌법소송 등 공법 소송을 담당했다. 법제처에서 주관하는 중앙행정기관 법무담당관 연수에서 행정소송 실무에 대한 강의도 하는 등 행정∙규제 분야 전문 변호사로 불린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이번 1심 판결 뿐만 아니라 앞선 사건들에 대해서도 모두 항소하기로 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