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장관/연합뉴스

추미애 전 법무장관 취임 직후인 지난해 1월 '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되면서 검찰 직접수사 부서 축소와 맞물려 폐지된 증권범죄합수단(합수단)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범계 법무장관이 "증권 범죄 대비 필요성을 말씀드린 것"이라며 톤 조절에 나선 가운데, 법무부의 합수단 부활 검토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 장관은 전날 정부과천청사에 출근하면서 자진해서 '합수단 관련 발언' 해명에 나섰다. 그는 "일부 언론에서 딱 박아서 '합수단 부활'이라고 했는데, 제가 합수단이라는 표현은 쓴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저는 수사권 개혁 구조하에서 치밀한 증권범죄 대비 필요성을 말씀드린 것"이라며 "수사권 개혁 구조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개혁의 후퇴가 아닌 범위 내에서의 정밀한 대응을 하자는 취지"라고 부연했다.

추 전 장관이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합수단 부활은) 그나마 한 걸음 옮겨 놓은 개혁마저 뒷걸음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음을 신중히 봐야 한다"며 경고한데 따른 '해명'으로 풀이된다. 현 정권에서 추진해 온 '검찰개혁'의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오해될까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합수단 폐지 이유를 '검찰개혁'과 연계시켰다는 점에서 부활시키는 것 자체가 법무부엔 '자충수'가 된 셈이다.

남부지검 합수단은 검찰개혁을 놓고 여권과 검찰의 '힘겨루기'가 계속되던 와중에 폐지됐다. 당시 법조계에선 합수단 폐지가 검찰개혁을 위해 그렇게 급한 일이냐는 반응이 나왔다. "여의도 주가조작꾼들만 가장 좋아지게 됐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의 불공정거래를 근절하기 위한 목표로 탄생한 합수단은 2000년대 초반 저축은행 비리와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했다. 2014년엔 '검사 전문화' 방안의 일환으로 서울중앙지검에서 남부지검으로 이관됐다. 대검 중수부가 폐지되고 특별수사 부서가 늘면서, 비대해진 중앙지검 권한을 분사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금융감독원, 국세청, 예금보험공사 등 유관기관 직원들과 주로 특수통 출신 검사들이 함께 손발을 맞춰 일하면서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렸다.

합수단은 주로 특수부 출신 검사들이 주도했는데, 이 때문에 동전의 양면처럼 '검찰개혁의 대상'이 되는 운명에 처했다. 합수단이 폐지되면서 전문검사들이 흩어졌고, 당시 라임·옵티머스 등 펀드 사기 사건이 활개치는 상황이라 검찰 내부에선 합수단 폐지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흘렀다. '수사 공백'이 생기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서민들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러한 점은 통계로도 증명된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의 증권범죄 사건 처리 비율은 지난해 급격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 검찰이 금융위원회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은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 접수·처리 현황을 보면 2016년 81건을 접수해 77건을 처리(기소 혹은 불기소)했고, 나머지 4건은 수사 중이다. 2017년엔 81건을 접수해 모두 처리했고, 2018년엔 76건을 접수해 63건을 처리했다. 2019년엔 56건을 접수해 33건을 처리했다. 하지만 지난해 58건을 접수해 8건을 처리하는데 그쳤다.

법조계에서는 박 장관이 합수단 부활 검토를 시사한 배경에는 국내 가상화폐 시장이 사실상 '정부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그간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고 LH사태 관련 수사 대한 비판 여론이 높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가상화폐 등 증권범죄 대응 및 수사역량 강화 필요성이 절실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등 국내 4대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약 450조원의 거래가 이뤄졌다. 지난해 1년간 누적 거래금액(356조2000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반면 관련 범죄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가상화폐를 이용한 사기, 자금 세탁, 시세 조작 등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실체가 없는 코인을 상장한 뒤, 고수익 배당금을 코인으로 지급하겠다고 투자자를 모집했다 도주하거나 거래소 사이트를 모방한 홈페이지를 만들어 '피싱 수법'으로 가상화폐를 탈취하는 신종 범죄들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가상화폐 거래소 중 한 곳인 A사의 경우 내부 계정끼리 코인을 사고파는 방식으로 거래량을 부풀리고 시세를 조작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 고액 체납자가 가상화폐로 재산을 숨기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이에 증권범죄 대응 및 수사와 관련해 '확실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지가 강해지면서 합수단 부활도 여러가지 방안 중 하나로 검토된 것으로 해석된다. 박 장관은 지난달 15일 조상철 서울고검장, 강남일 대전고검장 등 7명의 고검장들이 참석한 간담회에서 "부동산 투기와 함께 걱정되는 것이 증권·금융쪽 새로운 형태의 전문적 범죄에 대한 대응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하는 부분에 집중해 들었다"고 한 바 있다.

순천지청장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자신의 SNS에서 "프랑스 국가금융검찰(PNF)은 파리고등검찰청 소속이지만 고검장 지휘를 받지 않도록 독립성이 보장되고 대형금융경제범죄와 부패사건을 다룬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프랑수와 피용 전 총리도 수사를 받았다"면서 "합수단은 제가 2000년 실무연수때 겪어본 파리지검 금융범죄거점수사부 수준에도 못 미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디지털 환경에서 금융경제범죄에 대한 효과적 대응 없이는 국가와 사회 기반이 무너진다. 범죄조직의 개입과 자금세탁도 전부 금융경제범죄와 관련이 있는데 한가롭게 검수완박, 수사권 조정, 공수처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완전히 (사회가) 범죄자 놀이터가 됐다"면서 "프랑스 보다 20년 뒤쳐진 금융경제범죄 수사 시스템 문제가 무엇인지 깊게 공부해서 형사사법제도를 어떻게 선진국 수준으로 개혁할 것인지 고민 좀 했으면 한다"고 질타했다.

라임 사태의 피해자를 대리하는 김정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합수단 폐지로 증권범죄 수사 전문성과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전문 역량이 있는 검사들이 흩어진 탓에 집중 수사가 불가능해졌다"며 "주범들은 전문성을 갖춘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려 대응하는데, 이들을 상대하는 검찰은 보잘것 없다"라고 말했다.

야권을 중심으로 정치권에서도 합수단 부활에 시동을 걸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합수단 설치를 명문화한 검찰청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검찰청법에 금융·증권 관련 경제범죄의 수사 및 처리를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방검찰청에 합수단을 두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은 금융·증권 관련 사건의 수사 및 처리를 위해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에 따라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금융조사 제1부·금융조사 제2부를 두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