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길우

법률에 따라 설립된 법인이라 해도 ‘일반투자자’인지, 아니면 ‘전문투자자’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자본시장법상 투자자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범주는 다르다. 전문투자자로 분류될 경우 투자자의 금융상품에 대한 검증 책임 등이 더 크게 적용돼 설령 금융기관의 불완전판매로 손실을 보더라도 대부분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 반면 일반투자자는 판매기관의 과실이 있으면 자본시장법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는 범위가 넓다.

한국도로공사 사내근로복지기금(복지기금)과 미래에셋증권·유진자산운용 사이에 불거진 ‘펀드 상품 판매' 소송의 법리적 쟁점도 도로공사의 사내근로복지기금이 자본시장법에 따라 ‘전문투자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복지기금은 법무법인 충정이, 미래에셋증권과 유진자산운용은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세종과 태평양이 각각 소송을 대리했다. 결과는 충정을 선임한 복지기금이 일반투자자 지위를 인정받아 손실금 56억원 중 70%를 보상받는 등 ‘부분 승소'로 마무리됐다.

◇”금융사들, 위험 상품을 정기예금처럼 팔아”

복지기금 직원 A씨는 지난 2013년 1월 “안정적인 투자 상품을 추천해달라”며 미래에셋증권을 찾았다. 이에 미래에셋증권 직원 B씨는 “정기예금과 같이 안정적이면서, 정기예금보다 높은 연 5% 수준의 수익”이라며 유진자산운용사가 만든 사모펀드 상품(3호 펀드)을 추천했다.

그러나 이 펀드가 투자하는 미국 생명보험증권 펀드(TP펀드)는 영국 금융감독청이 “복잡하고 높은 위험이 있다”고 경고할 만큼 위험한 상품이었다. A씨가 금융상품설명서에 기재된 위험성 부분을 묻자 B씨는 “통상의 설명서에 기재되는 내용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복지기금은 50억원 상당의 3호 펀드를 매수했다. 이후 이 사건 4~6호 펀드 역시 안정적인 금융투자상품인 것으로 알고 각각 36억원, 20억원, 36억원 상당을 매수하고 펀드에 가입했다.

그러던 중 2013년 4월 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했는데, 유진자산운용은 이러한 사실을 미래에셋증권에 알리지 않았다. 그러다 복지기금이 5·6호 펀드에 추가 가입한 후인 같은 해 8월에서야 미래에셋증권에게 환매중단결정 사실을 통지했다. 결국 복지기금은 투자 원금 142억원 중 56억여원의 손실을 보게 됐다.

이에 복지기금은 “이 사건 TP펀드는 전문투자자용 해외집합투자기구로 등록돼 일반투자자에게 판매될 수 없음에도 자산운용사들은 해당 펀드 가입을 권유했고 위험도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TP펀드 환매중단 결정을 알고 있었음에도 투자의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일반투자자에게 이를 고지하지 않는 등 기망했다며 부당이득금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원고가 펀드의 위험요인 등을 알았더라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인데, 미래에셋증권은 투자위험 고지확인서가 행정서류에 불과하고 염려할 일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등 기망했다”며 미래에셋증권에 원금 손실분을 모두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유진자산운용에 대해서는 복지기금과 직접 계약을 한 것이 아닌 만큼 책임이 없다고 봤다.

2심 역시 “자산운용사들이 공사의 투자 목적 등에 비춰 적합하지 않은 투자 권유를 한 사실은 인정된다”며 “이 사건에서 발생한 투자 권유를 하면서 자본시장법상 적합성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래에셋증권과 유진자산운용이 연대해서 피해액 70%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복지기금에도 “투자하는 상품의 내용이나 투자 위험성 등을 정확히 판단해야 하는 것을 게을리했다”며 손실분의 30%는 직접 책임지라고 했다.

◇항소심부터 전문이냐 일반투자자냐 전면전…대법원 “전문투자자 범위 한정적으로 해석해야”

복지기금이 ‘일반투자자’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법적 다툼은 항소심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다뤄졌다.

미래에셋증권과 유진자산운용 측은 복지기금이 법률에 따라 기금을 다루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인 만큼 전문투자자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전문투자자로 분류될 경우 피고 측이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부당권유금지를 위반했더라도 배상받을 수 있는 금액이 크게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복지기금을 대리한 법무법인 충정은 금융위원회의 해석, 자본시장법 시행령 등을 앞세우며 복지기금이 전문투자자가 아닌 일반투자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충정은 금융위가 ‘법률에 따라 설립된 기금’을 전문투자자로 정하지만, 국민연금기금 및 공무원연금기금과 같이 기금 관련 별도의 법률에 따라 설립된 것이 아닌 공익법인의 법률에 근거한 기금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을 내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근로복지기금은 근로복지기본법 및 고용노동부장관 인가에 의해 설립된 만큼, 전문투자자는 아니라고 봤다.

조치형 충정 변호사는 “속칭 기관투자자들은 전문투자자라고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국민연금기금을 꼽을 수 있다”며 “연기금은 투자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반면, 복지기금은 연기금처럼 전문적인 곳이 아니라고도 설득했다”고 했다. 근로복지기금의 이사회는 노사(勞社) 3명씩 6명으로 노조측 이사는 노동조합 집행부 임원들이, 사측 이사는 인력처 소속 직원이 맡는 등 연기금처럼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대법원은 이러한 충정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전문투자자의 범위는 자본시장법과 시행령에 따라 명백하게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어떤 기금이 법률에 설립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에서 전문투자자로 규정하는 ‘법률에 따라 설립된 기금’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법무법인 충정의 조치형(왼쪽) 변호사와 임치영 변호사

◇”전문·일반투자자 해석 기준 구성에 노력…투자자 보호의무 적용 선례 남겨”

도로공사의 복지기금이 일반투자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낸 주역은 법무법인 충정 금융·자본시장팀의 조치형(사법연수원 14기)·임치영(31기) 변호사다. 금융·자본시장팀은 은행, 증권회사, 투자신탁회사, 자산관리공사 등 사이에서 발생하는 각종 분쟁에 관한 종합법률서비스에 특화된 팀이다. 특히 펀드 투자와 관련한 투자실패, 금융투자 상품의 불완전 판매에 관련된 자문 및 소송 업무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충정은 기업자문, 의료·제약 분야 등에서 다국적 기업과의 국제거래 업무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금융, 송무, 조세, 제약의료, 공정거래 등 각 영역에 법학과 뿐만 아니라 외국대학이나 비법학과 출신으로 팀을 구성해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70여명 변호사를 보유한 중형로펌이지만, 10년 이상의 장기고객 비율이 50%가 넘는 등 ‘폭넓은 전문성’을 자랑한다.

조 변호사는 “‘법률에 따라 설립된 기금'이라는 부분을 넓게 해석하면 기관이 만든 기금은 모두 전문투자자에 해당하게 된다”며 “운영형태나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전문투자자’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면 안 되고 전문적인 투자를 위해 조직화된 단체여야 한다는 원칙적인 해석을 얻어내는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판례가 없었던 만큼, 자본시장법에 따른 전문투자자와 일반투자자를 해석하는 기준을 치밀하게 구성하는데 노력했고, 이를 법원이 잘 판단해준 것 같다”며 “근로복지기금이 일반투자자로 법적 인정을 받게 되었고, 투자자 보호의무를 적용 받는 선례를 남기게 된 점에서 향후 지침이 될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라 본다”고 했다.

조 변호사는 1998년 법무법인 충정에 합류하기 전 삼성그룹 비서실 법무팀에서 경력을 쌓은 기업법무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그는 기업의 조직, 운영, 투자, 금융, 국제거래 전반에 걸쳐 폭넓게 자문을 수행했으며, 자산유동화 등 구조화 금융과 펀드 투자 관련 손해배상소송에서 많은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임 변호사는 기업소송과 함께 의료, 제약, 금융 · 자본시장, 항공기 사고 관련 소송에서 활발하게 자문하고 있다.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공학도 출신 변호사로, 한국도로공사 등 국내 유수의 공기업과 대형병원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