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명 vs 3명.
인구 1만명당 변호사 숫자다. 양극단에 서 있는 두 나라는 모두 우리가 선진국으로 부르는 곳들이다. 41명은 미국. 3명은 일본이다. 한국의 변호사 숫자는 1만명당 5명으로 일본에 가까운 중간이다.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놓고 논란이 거세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올해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1706명으로 결정한 법무부를 상대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변협이 주장한 적정 변호사시험 합격자는 1200명으로 500여명이나 차이가 난다.
◇법무부 "변호사시험 합격류 85%로 높여도 된다"
지난 3월말 기준 국내 등록변호사는 2만9724명이다. 미등록 상태인 변호사까지 합하면 3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법무부의 '적정 변호사 공급규모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인구 1만명당 변호사 수는 한국이 5.39명이었다. 정부와 변호사단체는 이를 두고 서로 '정반대 해석'을 하고 있다.
정부는 변호사 수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비교대상은 영미권 국가들이다. 미국의 경우 1만명당 변호사가 41.28명, 영국은 32.32명, 독일은 20.11명, 프랑스는 10.38명이다. 한국의 변호사 규모는 미국의 8분의 1 수준, 프랑스의 절반 수준이었다.
보고서는 "평균적인 선진국의 경우 인구나 경제규모 대비 상당히 높은 수준의 변호사가 공급되고 있다"며 "(국내) 입학정원 대비 합격률을 85% 수준으로 확대해도 해외 주요국과의 격차가 크게 감소하지는 않고, 65%로 낮추면 격차는 오히려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이 보고서를 사실상 법무부의 공식 입장으로 보고 있다.
이번 10회 변호사시험에서 법무부 산하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는 입학정원 대비 75%(1500명) 이상 범위에서 합격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입학정원 대비 85% 수준 합격이라는 기준이 지금도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법무부는 이 기준을 앞으로 낮출 생각이 없다.
법무부가 제시한 로스쿨 입학정원 대비 75%의 합격률을 유지하면 1만명당 변호사 숫자는 2049년에 11.06명까지 늘어난다. 여전히 영미권 국가와의 차이가 크지만 격차를 조금이라도 좁힐 수 있게 된다.
한국법학교수회는 "변시 합격자 정원을 자격시험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 법률 소비자인 국민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보다 많은 변호사의 법률서비스를 원하는 상황에서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 뜻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변호사 숫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사 단체는 "이러다 밥 굶는 변호사 나올 판"
변협 등 변호사단체는 정반대 입장이다. 1만명당 5.39명의 변호사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비교대상은 일본이다. 일본의 1만명당 변호사 숫자는 3.38명이었다.
일본은 경제규모가 한국의 2.5배에 달하지만 인구 대비 변호사 수는 2013년에 한국이 이미 일본을 추월했다. 일본의 2020년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는 1450명으로 한국보다 합격자 수가 적다. 변협에서는 사법제도와 법조인 인접 직역의 규모가 가장 비슷한 일본과 비교하는 게 맞다고 설명한다. 법무부가 변호사시장의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변호사 숫자만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변호사단체의 설명에 일정부분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로스쿨 도입 당시 법무사나 행정사 같은 변호사와 유사한 일을 하는 유사직역을 폐지하고, 늘어나는 변호사가 관련 업무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유사직역 폐지는 쏙 사라지고 변호사 숫자만 늘어났다는 것이다. 변호사끼리 저가 수임 경쟁이 붙을 뿐 아니라 법무사, 행정사, 노무사 등 다른 유사직역과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김신 대한변협 수석대변인은 "법무사는 파산사건 신청을 할 수 있게 됐고, 노무사들은 노무사건 행정심판에 대한 대리권을 달라고 하는 등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며 "미국은 굉장히 사소한 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변호사가 하는 등 변호사의 영역이 매우 넓고 소위 말하는 유사직역인 법무사가 없다. 유사직역만 없어진다면 매년 변호사를 1700명씩 뽑아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호사단체의 목소리를 '밥그릇 지키기'로 보는 시선도 많다. 로스쿨 도입 이후 9년 동안 국내 법률시장 규모는 2배로 커졌다. 2019년 기준 법무법인 및 개인변호사 부가가치세 과세표준 신고액은 6조3437억원으로 2010년 3조1041억원의 두배로 늘었다. 전체 경제성장률이 2~3% 성장하는데 그치는 동안 법률시장은 매년 8%씩 성장한 셈이다.
한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변호사 숫자가 늘고 법률시장이 커지면서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법률서비스의 수준이 높아지고 문턱은 낮아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이제와서 변호사 숫자를 줄이자는 건 대세를 거스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6대로펌 아닌 16대로펌으로 시장 키워야
조선비즈가 '변호사 3만명시대' 기획을 하면서 만난 로펌 관계자와 법조계 인사들은 '숫자'에 매몰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법무부와 변협이 '41′과 '3' 사이에서 자존심을 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숫자보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소수의 대형로펌이 시장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6대로펌으로 불리는 김앤장·태평양·광장·율촌·세종·화우는 글로벌 로펌들과 견줘도 경쟁력이 있지만, 나머지 로펌과 서초동의 소규모 법률사무소는 경쟁력이 낮아 법률시장의 부익부 빈익빈이 지나치게 심하다는 것이다.
대형로펌에서 일하다 나와 직접 부티크펌(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소형로펌)을 세운 한 로펌 대표는 "한국 법률시장만의 특징이자 단점은 소수의 대형로펌에 인력과 인프라가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는 점"이라며 "6대로펌이 아니라 16대로펌 정도로 대형로펌이 많아지면 변호사 숫자가 많아서 생기는 문제들도 어느정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변호사 숫자만을 놓고 공방을 벌일 것이 아니라 법무사, 행정사, 노무사 등 다른 직역과의 역할 분담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논의할 때"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