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제 사회 사상가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 그는 최근 출간한 저서 '회복력 시대'에서 효율성을 근간으로 한 진보의 종말을 선언했다.

‘공감은 존재하는 모든 순간에 필멸이라는 이 궁극적 부담이자 축복을 함께 짊어지고 있는 동지로서, 서로에게 보내는 지지의 심오한 표현이다’-제레미 리프킨의 ‘회복력 시대’에서

“한국 문화의 힘은 식민지 경험에서 키워진 강한 적응력과 회복력에서 나옵니다.“

“회복력은 힘이 아니라 일종의 취약성입니다. 새로운 경험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진보는 끝났습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 에너지 전환이 확 앞당겨졌어요.”

제러미 리프킨은 질주하는 전차처럼 엄청난 속도로 이야기를 쏟아냈다. 마치 인간 종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담은 거대한 오페라를 지휘하듯, 기다란 두 팔로 허공에 직선과 곡선을 내지르며. 스킨헤드에 콧수염, 행커 치프를 꽂은 노학자가 마른 목을 축이러 잠시 줌 화면을 떠날 때야, 간신히 이쪽에서도 숨을 돌릴 수 있었다.

2시간 동안 뿜어내는 에너지의 광량은 어마어마한데, 착석할 때 비치는 분홍 바지가 산뜻해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우아함, 간절함, 친절함. 석학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그는 자신은 작가도 학자도 아닌 활동가라고 했다. 공동의 이야기를 운 좋게 엮은 사람일 뿐이라고. 제러미 리프킨은 최근 역작 ‘회복력 시대’를 출간했다.

‘진보의 시대가 효율성에 발맞춰 행진했다면, 회복력 시대 시간의 안무는 적응성에 발을 맞춘다’라고 그는 쓰고 있다.

‘지구의 종과 생태계는 우리 몸 가장자리에 있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 몸 안팎으로 흐르기에’ 우리 각자는 ‘반투막’이라고 시적으로 기술하며. ‘생태적 자아는 저마다 흩어지는 패턴’이라는 리프킨의 발견은, 대퇴사 시대의 은유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의 통찰대로 젊은 세대는 이미 효율성에서 적응성으로, 생산성에서 재생성으로, 세계화에서 세방화로(Glocalization), 대의민주주의에서 동료 시민 정치로 전환을 시작했다.

이제 ‘자기다움’조차 안팎의 경계가 명확한 개성이 아니라, 계속 확장되는 네트워크 그 자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여러분을 위해, 석학을 심층 인터뷰했다.

동시대의 예민한 펜으로 인문 사회 과학 고전의 심장을 관통하는 제러미 리프킨의 ‘회복력 시대’는 현재 사회정치 분야 베스트셀러다.

경제학 분야가 살아남으려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자연계와 관계 설정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리프킨. 지구의 복잡성을 설명할 수 있는 더 깊고 통합적인 언어가 절실하다.

-먼저 선생이 말하는 회복력이란 무엇인가요?

“회복력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사회학, 심리학, 심리치료에서는 회복력을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난 뒤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힘’이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큰일을 겪은 후에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하게 만들기 마련이죠.

회복력은 힘이 아니라 일종의 취약성(vulnerability)입니다. 새로운 경험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 또한 회복력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어떻게 해서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합니다. 저는 그저 새로운 경험, 새로운 생각, 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지구가 겪고 있는 변화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열린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약해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즉 위험을 감수할 의지를 의미합니다. 타인과 나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매우 재미있고 흥분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끼죠. 화면 뒤의 세상에서 고립된 채로는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밤하늘을 수놓은 점처럼, 우리의 생태적 자아는 저마다 흩어지는 패턴이다. 이제 세계는 물질과 구조가 아닌 패턴과 프로세스로 존재한다.

-생태계의 회복력은 다른가요?

“생태계는 매 순간 변화하고 있어요. 사실 인류는 세상이 물체와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요. 또 이를 무자비하게 추출해서 활용하고 소비하다가 폐기할 생각만 했죠.

하지만 이 세상에 물체나 구조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패턴과 프로세스만이 있을 뿐이지요.”

패턴과 프로세스만이 있을 뿐이라는 선언이 가슴에 서늘하게 와닿았다.

-’회복력 시대’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저는 50년째 기후 변화와 관련된 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그 시작은 1973년, 보스턴 티 파티(Boston Tea Party) 2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터진 ‘1차 오일 쇼크’ 사건이었어요. 당시 저는 OPEC의 집단 이기주의에 반대하는 시위를 계획했어요.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도 수천 명의 사람이 ‘보스턴 오일 파티’라고 명명한 이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내년이면(2023년) 이 시위가 일어난 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회복력 시대’를 쓰면서 저는 활동가로서의 제 생각을 정리하고 싶더군요. 다 정리하는 데 9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는 자신을 학자가 아니라, 활동가라고 명명했다.

리프킨은 과거 화석 연료 중심으로 설계된 우리의 경제, 사회, 시설, 기업, 그리고 정부의 인프라까지 싹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로섬게임에서 네트워크 효과를 누려야할 때라고.

-활동가의 정체성을 앞세우는 이유가 있는지요?

“(미소 지으며)저는 진심으로 저를 학자가 아니라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저 자신, 개인의 소유가 아닌 공동의 이야기를 운 좋게 겪은 사람 중의 한 명일 뿐이죠.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저는 각국의 정부, 기업, 지자체들과 고민해 왔어요. 이론에서 실천으로, 실천에서 이론으로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서요.

이번 ‘회복력 시대’를 통해 제가 들려드리고 싶은 핵심은 한가지예요. 우리는 하나의 종으로서 인류의 역할을 재고해야 한다는 겁니다.”

새롭게 번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간절한 얼굴로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거라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실패할 경우 인류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종말은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의 예고편이 아니던가.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의 대히트로 선생은 한국에서 농담처럼 ‘종말론 학자’라고 불립니다. 어떻게 그렇게 분명한 끝을 선언할 수 있지요?

“저는 누구나 목격한 것을 알린 것뿐입니다. ‘노동의 종말’만 해도 제러미 리프킨 개인의 대단한 발견이 아니에요. 첫 상업 컴퓨터 출현한 1950년대부터, 기술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해가는 과정을 여러분도 목격하셨잖습니까(웃음).

‘노동의 종말’의 서문을 써준 경제학자 로버트 하일브로너, ‘노동의 종말’에 기여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바실리 레온티예프 또한 이를 예견했습니다. 저희는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어요.

그 당시 저는 3차 산업혁명 인프라가 인류의 경제활동을 크게 변화시킬 거라고 봤어요. 실제로 그렇게 됐죠. 기후 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후변화가 본격화된 지 50년이 됐죠. 여러분이 피부로 느끼는 그대로입니다.”

자연은 고도의 복잡성을 지녔고 스스로 끝없이 진화하며 재구성되는 존재다.

-지금은 무엇의 끝을 선언합니까?

“저는 확신을 갖고 ‘진보의 종말’을 선언합니다. 저는 각국의 수많은 기업가, 정부 관계자들과 협업하고 있어요. 이제 ‘진보’를 이야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진보’라는 말을 들으면 아련한 희미한 미소를 지을 뿐이죠. 이제는 진보가 아니라 회복력으로 주제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과거에 쓴 ‘유러피언 드림’과 ‘공감의 시대’ ‘엔트로피’도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고 봐도 되겠지요?

“말씀드렸듯이 저는 작가가 아니에요. 제가 쓴 책들은 각자 그 시기에 해야 할 이야기를 담고 있죠. 제 모든 글은 일상을 관찰한 것이고, 최근의 책들은 이전 내용의 증폭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마치 하나의 가족처럼, 그 구성원들은 시간이 지나며 진화합니다.

1980년에 쓴 ‘엔트로피’가 ‘회복력 시대’의 발단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지만, 저는 수많은 사람의 뒤를 따랐을 뿐입니다. 노벨 화학상을 받은 프레더릭 소디는 20세기 초에 이미 ‘문명의 흥망은 열역학과 엔트로피 법칙에 좌우되는데, 경제학자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죠.

또 다른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일리야 프리고진을 비롯해서 저의 멘토였던 니콜라스 제오르제스쿠뢰겐 또한 ‘지구의 모든 활동들을 관장하는 열역학의 법칙을 경제학자들은 알지 못한다’고 했어요.

저와 같은 말을 했던 사람들은 이전에도 많습니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누군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뿐이랍니다.”

리프킨은 효율성에 대항하는 회복력의 본질로 중복성과 다양성을 제안한다.

-회복력의 핵심은 중복성과 다양성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왜 중요하지요?

“효율성의 반대편에 있기 때문입니다. 효율성의 핵심은 마찰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불필요한 재고나 노동력을 없애서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이윤이 돌아가도록 하는 거죠. 필요한 요소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없애 버리는 린(lean) 생산방식의 핵심이 바로 효율성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초기에 어땠나요? 인공호흡기, 마스크, 화장지는 다 어디 갔습니까? 린 생산방식은 이루었지만, 건강한 순환에서는 멀어졌어요. 자연에는 효율성, 생산성이라는 개념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대신 자연에서는 재생성, 반복과 중복성과 다양성이 중요합니다.

중복성과 다양성이 부족한 생태계일수록 무너질 확률도 높아요. 자연의 기본 요소들은 모두 인류의 시간 목표와는 반대의 지점에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표준 시간과 생체 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동안 저는 스스로를 실험군으로 관찰한 적응 전문가, 생물학자 등을 인터뷰했는데, 인간의 생체 사이클은 주변의 자기장에 맞춰 비슷하게 동기화됐다고 하더군요.

“하루 24시간, 주 7일 문화의 발상지인 일본을 보세요. 노동자들이 책상에 앉은 채로 죽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와중 산림욕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책상에서 일어나 숲속에서 걷기만 했을 뿐인데 상태가 호전된다고 느꼈어요. 문제는 뇌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생체 시계들이 주변 환경의 리듬에 다시 맞춰진 거죠.”

한 치의 군더더기 없이 위엄이 풍기는 우리 시대의 석학, 제러미 리프킨.

-오랜 세월 동안 효율성을 목표로 달려온 우리가 변화에 기민하게 적응할 수 있겠습니까?

“문화적으로 각성하면 결국 모두가 이 지구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한 명 한 명이 세계를 구성하는 동시에, 저마다 하나의 생태계를 품고 있다는 것을요.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도, 타인을 지배할 필요도 없어요.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서 털도 없고 힘도 약한 인간이라는 생물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핵심은 적응력이었어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제외하고는 인간이 가장 적응력이 높은 생명체였습니다. 적응력의 중심에는 인간의 두뇌, 강한 신피질, 그리고 지식을 전달하는 언어능력이 있어요. 신경회로에 내재한 공감 능력이 역지사지를 가능하게 했죠.”

-적응력의 핵심은 공감이었군요!

“맞아요. 공감은 정신 능력이라기보다 진화된 신체 능력입니다. 채집 수렵 시대에는 혈연에만 국한되었던 공감능력이 민족, 국가에까지 확장됐어요. 공감 다음 단계가 바로 생명애입니다. 인간을 넘어서 다른 생명체에 느끼는 연대감이죠. 이런 생명애가 청년들 사이에 뿌리내린다면, 인류는 공동의 목표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어요.”

-한편 생태 자본이 금융자본 질서를 앞지를 거라는 징후는 어디에서 찾으셨나요?

“회복력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공유가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과거의 유물인 화석연료와 우라늄은 군사적 충돌을 야기했어요. 태양광과 풍력은 다르죠. 어떤 강대국도 태양과 바람을 통제할 수는 없어요. 저는 수소경제에 대한 책을 내면서 ‘글로벌 에너지 인터넷’을 예고했는데, 이 개념이 지금 현실화하고 있어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연금 펀드가 화석연료가 아닌 친환경 에너지 채권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석탄 산업의 파산을 예상하기 때문이죠. 태양광 및 풍력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를 바탕으로 이미 수백만 명이 전력 발전을 실행하고 있어요. 글로벌 에너지 인터넷만 있다면, 20년 후에 수십억 명으로 늘어나겠지요. 지구 한쪽에서 만들어진 전력은 지구가 공전하고 계절이 바뀌면, 다른 쪽에도 공유가 될 수 있습니다.”

태양광과 바람은 그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시지요.

“제가 이끄는 컨설팅 그룹은 유럽 연합과 중국에 이어 미국 정부의 회복력 3.0 인프라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이 계획에 따르면 풍력 및 태양광 발전의 절반은 국가 규모의 인프라로, 나머지 절반은 마이크로그리드 형태로 갖춰질 예정입니다.

케이블을 땅에 묻어 정전이 일어나는 순간 마이크로그리드로 전환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사이버 공격이나 기후 이변에도 전력 사용은 문제가 없어요. 이미 기술력도 있고 해저 케이블 작업에 착수한 기업도 있습니다.”

-생태 자본 시스템에서 문제가 되는 요소는 없습니까?

“문제는 토양이 급격히 유실되고 있다는 게 거죠. 탄소 저장 역할을 하던 토양과 숲이 유실되면서 수백만 년 동안 축적된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배출되고 있어요. 그 양이 인류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보다 3배나 많습니다. 걱정스러운 상황입니다.”

-하버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 O. Wilson)은 당장 지구의 절반을 재야생화해야 한다고도 주장하더군요. 현실 가능한 이야기인가요?

“물론입니다. UN은 지구의 1/3을 재야생화 목표로 설정했어요. 지구의 재야생화야말로 지금 당장, 그리고 앞으로 몇 세기 동안 인류가 달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일단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해요. 앞으로 새로운 일자리는 모두 첨단기술 분야의 중소기업 협동조합, 환경 책임 서비스 분야에서 창출될 것입니다.

이런 일은 지역 단위에서 이루어질 거예요. 다국적 기업은 불가능한 일이죠. 한국이 이 분야를 앞서 개척한다면 금융자본에서 자연 자본으로, 제로섬 게임에서 네트워크 효과로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한국과 같은 규모의 국가들에는 롤모델이 될 수 있겠지요.”

현재 Z세대는 자신들을 하나의 종으로 보고 있다. 생명 감수성이 탁월한 이들을 중심으로 지구 재야생화가 추진되고 있다.

-MZ세대는 천연자원에 대한 권리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십니까?

“현재 Z세대는 자신을 하나의 종으로 보고 있어요. 한 세대가 지금 같은 공통의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죠. 이 시점에서 인류는 기존 과학 교육의 기반을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인간이 자연을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자연이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선언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기계적 과학 철학에서 벗어나야죠. 자연은 고도의 복잡성을 지녔고 스스로 끝없이 진화하며 재구성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그런 자연을 이해하려면 이 모든 학문이 조화를 이루는 공통의 언어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다행히 동서양을 막론하고 젊은 과학자들이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시했어요. 바로 복합 적응형 사회·생태 시스템(CASES)입니다. 의학, 고고학, 지질학, 화학, 물리학 분야에서 이미 복합 적응형 사회 생태 시스템이라는 개념이 적용되기 시작했죠.”

-새로운 사회 생태 시스템이 플랫폼 경제의 인프라에 영향을 미칠 시점은 언제가 될까요?

“제 예상으로는 3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프라는 2040년이면 회복력 시대의 인프라로 전환할 겁니다. 새로 부상하는 인프라는 수직 분산형, 중앙집권형이 아니라 완전히 분산형 인프라가 될 거예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형태죠.”

-특별히 어떤 조직에 유리합니까?

“민첩한 최첨단 중소기업의 수가 계속 증가할 겁니다. 이런 중소기업들이 사회 생태 시스템 속에서 다양하게 중복되면서 회복력을 쌓고 있어요. 또한 미래 세상에는 현재의 건축과 거주 방식이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주하는 인구 비율이 늘어날 것이고, 일시적 도시(ephemeral cities)들이 대거 생겨날 거예요.

저는 미국, 유럽, 중국과 함께 공동 인프라를 개발했습니다. 그 인프라는 커뮤니케이션 인터넷, 전력 인터넷, 모빌리티와 물류 인터넷, 사물 인터넷의 융합에 기반을 두고 있죠. 이런 흐름을 기반으로 세계 노동 인구 전반에 걸쳐 거대한 전환이 일어날 겁니다.”

중세부터 포스트 모던까지, 인문 사회 과학의 종과 횡을 오가며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유려하게 재조정하는 책 '회복력 시대'. ‘

-지금의 디지털 노마드와는 다른 보폭의 대이동인가요?

“다릅니다. 머지않아 수십억 인구가 각자의 근거지에서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을 할 수 있어요.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숙련도의 노동자가 필요합니다. 토양을 재생시키고, 숲에 나무를 다시 심고, 야생동식물 보호구역을 지정하는 일에도 대거 인력이 필요하죠.

두고 보세요! 인간은 앞으로 지속해서 이주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따라 통신, 에너지, 모빌리티, 물류, 인프라, 건조환경뿐 아니라 생태계 서비스, 생태농업, 실내 수직 농업 등 많은 분야가 부상하게 될 겁니다.”

-여태껏 최전선의 석학으로 인류가 나아가는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역할을 하셨습니다. 양질의 데이터와 학문을 분석해서 미래를 내다보는 일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관해서 얘기해주시지요.

“(미소 지으며)어려움이 많아요. 하지만 괴로움보다는 즐거움이 더 큽니다. 지금이 인류 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중대한 시기인지는 강렬하게 인지하고 있거든요.”

-비관적인가요? 낙관적인가요?

“비관적이지도 낙관적이지도 않습니다. 낙관론자는 그저 앉아서 좋은 일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비관론자는 나쁜 일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요. 모두 자기충족적인 일들입니다. 저는 항상 신중한 마음으로 희망을 품고는 있지만 순진한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헤겔. 그가 말한 역사의 변증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확증된다.

-혹시 선생에게 충격을 준 과거의 사건이나 뉴스가 있으면 나눠주시겠어요?

“최근은 아니지만 40년 전 철학자 헤겔이 쓴 책의 한 문단을 읽었는데, 그날 이후로 매일같이 그 내용을 떠올립니다. “행복의 시기들은 역사의 백지에 지나지 않는다. 조화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세계사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는 끔찍합니다. 자연재해, 집단학살, 전쟁 등 역사에서 일어난 참혹한 일들만 기록에 남았기 때문이죠. 엄청난 트라우마가 남아 있습니다. 반면 헤겔이 말하는 역사의 백지, 조화의 시기는 공감 능력이 꽃피우는 시절입니다.

젊은 세대와 그 자녀들에게는 매우 고무적인 이야기입니다. 인류가 대전환을 이루고 다른 생명체들과 또 한 번 번영을 이뤄낼 수 있을지에 대한 열쇠를, 그들이 지니고 있어요. 모든 것이 교육에 달려 있습니다.”

-당장 자녀를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요?

“영미권 전통은 아이가 태어나면 자주적, 독립적인 존재로 기르려고 합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방식은 틀렸습니다. 인간은 더 큰 생태계의 일부분일 뿐이지요. 어린 아기의 운명은 독립적인 존재가 되거나 리비도를 억누르고 실용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아기들은 보호자와 공감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들의 공감 능력을 존중하고 문화, 사회, 교육방식에 적용해야 합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계속 교전 중이다. 그동안 에너지 전환이 더 빨리 일어날 것이다. 앞으로 군대는 사람을 죽이는 대신 기후 변화와 기후 난민을 관리하게 될 거라고.

-자원과 주권을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어떤 결말을 향해 가리라 보십니까? 그 또한 회복력의 과정으로 보아야 할까요?

“맞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 국가들은 화석연료를 버리고 태양광 및 풍력 발전 도입을 이전보다 더 서두르고 있습니다. 이 두 에너지는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값싼 에너지원입니다. 원자력, 석유, 석탄, 천연가스는 경쟁상대조차 안되죠. 풍력과 태양광의 가격은 이미 가장 저렴한데, 고정비용은 더 빨리 하락하고 있습니다.

한계비용이 0에 가깝죠. 태양이 청구서 보내는 거 보셨습니까?

에너지 전환뿐만 아니라 이 전쟁은 인간의 서로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도 재고하게 만들었어요. 지정학에서 생명권 정치학으로 관점을 바꾸도록 만들었죠. 풍력과 태양광 발전이 있으면 군대가 필요 없습니다. 사람을 죽일 필요가 없어져요. 러시아는 현재 화석연료 확보를 위해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어요.”

-태양이 군대의 정체성을 바꾼다고요?

“그렇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현재 전 세계 국가에서 군대의 역할이 재정의되고 있어요. 산불, 가뭄, 홍수, 태풍에 대응하기에는 지역 경찰이나 지자체의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주 방위군이나 군대를 동원합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군대의 역할이 국방(Department of Defense)에서 회복력(Department of Resilience)으로 재정의되고 있는 거죠.”

-변화의 문턱에서 가장 절실한 질문은 무엇입니까?

“인류는 과연 이 전환을 늦기 전에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동양과 서양 중 어느 쪽이 이 전환기의 주도권을 잡으리라 예상하십니까?

“동양철학에서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여깁니다. 주변의 다른 생명들과 조화를 이루고 자연에 적응하는 것을 인간의 역할로 정의하고 있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는 이런 사상으로부터 멀어졌지만, 아시아의 문화는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동양은 서양에 비해 발 빠르게 변화에 적응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어요.”

-한국은 어느 방향으로 큰 걸음을 옮겨야 할까요? 전 세계가 한류의 흐름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이 어떻게 지금의 세계적 문화 허브가 되었는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어요. 오랜 식민역사로 인해 적응력과 회복력을 길러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은 이미 대전환에 필요한 디지털 역량도 갖추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아태지역에서 회복력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중국 및 유럽과 힘을 합칠 수도 있고요. 지금은 한국이 크게 도약할 때입니다.

한국에는 제가 말씀드린 모든 것을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많습니다. SK, 현대, 삼성 등의 기업들은 인프라의 대전환을 이룰 수 있는 기술과 지식을 갖고 있어요. 한국에는 민첩한 첨단 중소기업도 많죠. 한국의 연금기금 또한 규모가 큰 축에 속하고, 이 기금의 투자가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단언컨대 진보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한국인들이 회복력 시대를 선언하고, 효율성에서 적응력으로, 생산성에서 재생성으로, 세계화에서 세방화로, 가장 유연하게 치고 나갈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클래식한 분위기의 리프킨. 한 인간 안에 이토록 많은 학문의 체계가 엉키지 않고 들어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마지막으로 르네상스적인 통찰력을 키우고 싶어하는 보통 사람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합니다.

“여러분이 실망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입니다. 시카고 남부의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공립학교에 다니는 특별할 게 없는 학생이었어요. 학창 시절을 그저 평범한 학생으로 보내다가 1960년대에 사회운동에 뛰어들었죠.

그 당시 저희 세대들은 뚜렷한 직업도 없었어요. 제가 하고 있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습니다. 현재 자신이 하는 일에 헌신적으로 임하고,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은 열린 태도로 받아들이고,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결정만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