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주식선물(先物) 미결제약정 규모가 사상 처음 지수선물을 넘어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특정 종목에 투자자들의 베팅이 집중되면서 국내 파생상품 시장의 무게중심이 지수에서 개별 종목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와 개별주식 위클리옵션 확대에 힘입어 이런 흐름이 더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근월물과 원월물을 합산한 개별주식선물 미결제약정 규모는 60조100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시점 코스피200 선물과 코스피200 미니선물, 코스닥150 선물을 합산한 지수선물 미결제약정 규모는 59조8300억원이었다. 개별주식선물 규모가 지수선물을 넘어선 것은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처음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국내 파생상품 시장에서 지수선물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2024년 6월 지수선물 미결제약정 규모는 29조8700억원으로 개별주식선물(8조5800억원)의 3.5배에 달했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도 지수선물(28조원)이 개별주식선물(8조1800억원)을 크게 웃돌았다.
하지만 올해는 개별주식선물 규모가 60조원까지 불어나며 사상 처음으로 지수선물을 넘어섰다.
지수와 개별주식 선물이 역전한 배경에는 최근 반도체 대형주로의 극심한 쏠림 현상이 자리하고 있다. 7월물 기준 SK하이닉스 미결제약정 규모는 32조200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삼성전자가 17조330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두 종목의 미결제약정 규모를 합치면 49조5300억원으로 7월물 개별주식선물 273개 종목 전체 미결제 약정의 78.2%를 차지했다.
쏠림 현상은 상위 종목으로 갈수록 더 두드러졌다. 미결제약정 규모 기준 상위 20개 종목의 비중은 88.44%에 달했고, 상위 30개 종목으로 범위를 넓히면 90%를 넘어섰다. 사실상 개별주식선물 시장 대부분이 소수 대형주에 집중된 셈이다.
문제는 개별주식선물 규모 확대가 변동성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결제약정은 아직 청산되지 않은 선물 계약 규모를 의미하는데, 특정 종목에 미결제약정이 집중된 상황에서는 주가 급락 시 증거금 부족에 따른 반대매매와 선물 포지션 청산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며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한 증권사 파생상품 담당 연구원은 "과거에는 투자자들이 코스피200 등 지수 방향성에 베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특정 종목 중심의 투자 수요가 크게 늘었다"며 "개별주식선물 규모가 커질수록 특정 종목의 변동성이 시장 전체 변동성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개별주식선물 거래가 급증한 배경으로는 지난달 도입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꼽힌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기초자산 수익률의 2배를 추종하기 위해 주식선물 등을 활용하는데, 자금 유입이 늘어날수록 유동성공급자(LP)의 헤지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
실제로 지난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일주일 동안 SK하이닉스 주식선물 미결제약정 규모는 약 21조원에서 34조원으로 급증했고, 삼성전자도 같은 기간 13조원에서 16조원으로 늘었다.
여기에 한국거래소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등을 대상으로 위클리옵션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개별 종목 중심의 파생상품 거래는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위클리옵션은 만기가 1주일 단위로 짧아 단기 매매 수요를 끌어들이는 대표적인 파생상품으로 꼽힌다.
다만 개별주식선물 시장 확대를 위험 신호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관련 종목에 대한 투자 수요가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지수보다 특정 기업과 산업에 대한 투자·헤지 수단을 적극 활용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김지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개별주식선물 시장 확대는 투자자들이 반도체와 AI 공급망 등 특정 산업에 대한 노출도를 높이려는 수요가 반영된 결과"라며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시장 성장 과정의 일부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