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5월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고 늦지 않게 금리를 인상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지난 4월 신 총재 취임 후 가장 강한 긴축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다음 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인상은 거의 기정사실이 됐고, 연내 추가 인상 가능성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 총재는 12일 한국은행 창립 76주년 기념사에서 "통화정책은 정책 변수 간 상충 관계에 직면하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그러한 상충이 크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 총재는 "성장, 물가, 금융 안정 상황은 통화정책 측면에서 비교적 명확하게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도 했다. 앞서 신 총재는 지난달 28일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한 뒤 "이번에 금리를 올릴 당위성에 대해 사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었다고 본다"고 했었다.

이날 신 총재는 우리 경제가 AI(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예상보다 강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1분기 실질 성장률은 전기 대비 1.8%를 기록해 당초 예상을 크게 상회했고, 명목 성장률도 10.5%라는 "이례적인 확장세"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가 불안은 다시 커지고 있다고 봤다. 신 총재는 "5월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로 올라섰다"며 "그동안 안정세를 보이던 근원물가 오름세도 일부 개인 서비스 가격 상승 등으로 2%대 중반으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물가 상승률은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높아진 가계의 기대 인플레이션과 기업의 가격 인상 가능성이 추가적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우려도 잠재해 있다"고 밝혔다.

금융시장 과열에 대한 우려도 드러냈다. 신 총재는 "수도권 주택시장에서는 매매 및 전월세 가격의 높은 오름세가 이어지고 추가 상승 기대도 다시 높아졌다"고 말했다. 또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과정에서 레버리지를 활용한 이른바 '빚투'도 크게 늘었다"며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는 가격 조정 시 개인적인 손익에 큰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시장 변동성을 확대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금리 인상의 명분으로 서민 부담도 언급했다. 신 총재는 "물가 상승의 부담은 저소득층에서 상대적으로 더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선제적인 물가 안정 노력은 이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이번 발언을 사실상 금리 인상 예고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 중동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지면서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다시 긴축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11일 통화정책회의에서 3대 정책금리를 0.25%포인트씩 인상했다. 예금금리를 연 2.00%에서 2.25%로, 기준금리와 한계대출금리를 각각 2.40%, 2.65%로 올렸다. ECB의 금리 인상은 2023년 9월 이후 2년 9개월 만이다. 지난 2월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금리를 인상한 사례다.

오는 16~17일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도 주목된다. 시장에서는 금리 동결을 점치는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예상보다 강한 매파적 신호를 내놓을 경우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긴축 기조가 강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11일 발표된 미국의 5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동기 대비 6.5% 상승해 2022년 11월(7.4%) 이후 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역시 전년 대비 4.2% 상승해 4월(3.8%)보다 상승 폭이 확대됐다.

한편 신 총재는 기념사에서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늘어난 기업의 수익을 미래 투자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의 상황은 우리의 노력이 축적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은 외부 여건이 우호적으로 바뀐 데 따른 결과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확충된 재정여력과 기업 재무여건을 바탕으로 미래의 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한 투자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지역·세대·계층 간 양극화를 완화하는 노력도 지속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이를 최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서 시작된 대기업 성과급 논란과 연결해 해석하는 시각도 나온다. AI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수익을 단기 보상에만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 등 미래 경쟁력 확보에 활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