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이 장기화되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점화되면서 글로벌 채권 시장이 휘청이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최근 3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데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가 심리적 저항선인 연 5%마저 웃돌 정도다. 서울 채권 시장에서도 국고채 금리가 연중 최고치에 바짝 다가서는 등 시장은 채권 금리 상승(가격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는 평가다.
◇美 소비자물가 3년래 최고 상승
지난 10일 미 노동부에 따르면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4.2% 올랐다. 지난 4월 기록한 3.8%보다 상승 폭이 커진 데다 지난 202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월 대비로는 0.5% 오르며 시장 예상치에 부합했다. 다만,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통화정책을 판단할 때 중시하는 근원 CPI는 지난달에 비해 0.2% 상승하는 데 그치면서 시장 예상치(0.3%)를 하회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근원 CPI가 예상보다 낮게 나오면서 미국 채권 금리가 한때 하락세에 접어들었지만, 중동 지역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다시 위로 방향을 틀었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서 "이란을 더 강하게 타격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도 맞대응 입장을 밝히면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재점화된 여파다. 11일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미국 국채 3년물과 10년물 금리는 지난 10일 전날보다 각각 0.036%포인트, 0.041%포인트 오른 연 4.213%와 연 4.569%를 기록했다. 국채 30년물도 5.044%를 기록하면서 심리적 저항선인 연 5%를 재돌파했다. 한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이란 전쟁으로 유가 쇼크가 겹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던 미 국채까지 매도 압력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위험 회피 국면에서 미 국채로 자금이 몰리며 금리가 내려갔지만, 지금은 유가 부담에 미국 재정적자까지 겹치면서 장기물 국채가 오히려 '팔리는 자산'이 됐다"고 했다.
◇韓 국고채 금리도 연중 최고치 근접
인플레이션 우려와 중동 지역 리스크는 국내 채권시장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실제로 서울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금리는 이미 연중 최고치에 근접한 상태인데, 글로벌 금리가 오르면 상승 압력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0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연 3.881%, 10년물은 연 4.273%를 기록했다. 각각 연중 최고치인 3.94%와 4.348%에 근접한 셈이다. 채권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대차 거래 잔고도 사상 최대 수준이다. 대차 거래 잔고는 지난 1월 2일까지만 해도 182조5380억원이었는데, 지난 10일에는 234조6373억원까지 치솟았다. 올해 들어 6개월 만에 52조원 넘게 불어났다.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 인상 기조도 채권 금리의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시장에서는 연 두 차례 금리 인상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김진희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출 서프라이즈가 진행 중인 가운데 물가 서프라이즈 초입 구간에 진입한 점을 고려하면 긴축 경계는 적어도 3분기까지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올해 2분기 말에서 3분기 초 미국과 이란 협상 진전으로 유가가 안정될 경우 일시적인 시장 금리 하락 전환이 가능하겠지만 추세 하락일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