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고 기록 행진을 이어가던 미국과 한국 증시에 급격한 제동이 걸렸다. 미국 고용 지표가 예상치를 크게 웃돌자 미 연방준비제도가 고강도 통화 긴축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되며 주식시장을 공포로 몰아넣은 것이다.
시장이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에는 최근 글로벌 증시 상승을 주도해 온 인공지능(AI) 투자 사이클이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의 AI 투자 랠리는 글로벌 저금리 환경과 막대한 유동성 덕분에 가능했다. 풍부한 자금이 AI 생태계로 집중되면서 산업 성장 기대가 커지는 동시에 증시에 대규모 자금이 유입됐던 만큼, 긴축에 따른 금리 상승은 기술주 중심의 증시에 직접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코스피 지수가 8% 넘게 폭락한 지난 8일, 우리나라 국채 금리는 올해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5.8bp(1bp=0.01%포인트) 오른 연 3.940%를 기록했다. 장중에는 3.971%까지 올랐는데, 이는 2023년 11월 이후 최고치다. 만기 10년 국채 금리 역시 9.4bp 오른 4.348%를 기록했다. 올해 최고 수준이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현재 기준금리는 연 2.50% 수준이지만 국고채 3년물은 이미 3% 후반에서 거래되고 있다"며 "이는 시장이 단순히 3~4차례의 금리 인상 가능성만 반영하는 게 아니라 향후 수년간 기준금리가 과거보다 높은 수준으로 유지될 가능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국채 금리도 급등하고 있다. 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다시 연 4.53%까지 올랐다. 지난 주말 발표된 미국 고용 지표가 호조를 보이면서 미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주식시장에 가장 큰 조정을 유발하는 이벤트는 긴축적인 통화 정책이었다. 금리 인상 사이클이 본격화되면 글로벌 자산 시장에서 자금의 흐름이 바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글로벌 증시 상승은 풍부한 유동성 환경뿐 아니라 초대형 데이터센터·클라우드를 운영하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막대한 AI 투자였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우려가 크다.
아마존·알파벳·메타·마이크로소프트(MS)·오라클 등 주요 5개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데이터센터·클라우드 운영사)의 올해 자본 지출 규모는 8300억달러(약 1205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년(4627억달러)보다 79% 증가한 수치로, 내년에는 AI 관련 자본 지출 규모가 1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문제는 이들의 AI 투자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커지면서 자금 조달 방식이 회사채 발행 등 외부 차입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빅테크들은 막대한 현금을 축적하고 있지만, 투자 경쟁이 치열해지자 보유 현금 활용을 넘어 차입도 확대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월가에선 아마존·MS·알파벳·메타 등 4개 하이퍼스케일러의 올해 3분기 합산 잉여현금흐름이 40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6년 전 코로나 팬데믹 이후 분기 평균 잉여현금흐름(450억달러)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잉여현금흐름은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과 배당 여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특히 하반기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재무 사정이 순현금 보유에서 순부채로 돌아설 경우 금리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승재 iM증권 연구원은 "기존 빅테크의 회사채 조달은 자사주 소각·배당 재원 마련에 국한됐고, 이마저도 발행 없이 충당 가능할 정도로 방대한 현금흐름을 축적했지만, 막대한 현금이 AI 관련 자본지출(CAPEX) 확대에 동원되면서 더 이상 내부 현금흐름만으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부채성 조달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하이퍼스케일러의 신용부도스와프(CDS)프리미엄이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CDS의 상승은 단순히 부도위험에 대한 베팅이 늘어난 게 아니라 부채 조달 증가에 따른 신용등급 변경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